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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Oct 21. 2015

북유럽,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떠나는 보물 찾기

끝없이 웃음이 흘러 넘치는 코펜하겐

편집증을 앓고 있는 병약하고 아름다운 왕 크리스티앙 7세와 시대를 비껴간 혁명가이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독일인 의사 요한, 그리고 마음속 깊이 개혁을 꿈꾸는 젊고 아름다운 영국인 왕비의 비극적인 이야기 ‘로열 어페어’. 덴마크 왕실에 관한 이 영화를 몇 년 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이후로 나는 참 오랫동안 덴마크 앓이를 했었다. 영화 속 내용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제 역사였고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바이킹의 후예이자 북유럽 전체를 통치했던 덴마크의 왕실 이야기는 숨 막히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 같은 음울하면서도 유니크한 치명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있고, 가구 디자인 회사 헤이하우스, 가구 디자이너 핀 율, 고급스러운 로열 코펜하겐 이 있는 이 나라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똘똘 뭉친 꿈의 나라 중 하나였다. 거기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안데르센과 레고의 나라이니, 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하나 내가 처음 덴마크에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거기 뭐가 유명해?”

“덴마크 요구르트!”

“덴마크가 유럽 어디야?”


아직까진 북유럽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북유럽은 그저 ‘비싼’나라 일 뿐이며 ‘자연’ 그 이상의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내가 신나게 저 위의 것들을 설명하면 그제야 다들 입을 모아 말한다.

“아, 그게 덴마크 꺼였어?”

“레고 미국 꺼 아니었어? 안데르센은 유럽 사람인 줄 알긴 했지만 영국이나 독일 뭐 그런 줄 알았어.”

“그래서 난 덴마크를 갈 거야!”  


뉘른베르크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드디어 코펜하겐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내 옆에 앉은 혼자 비행기를 탄 용감한 독일인 초등학생(8살 정도)과 비행기가 땅에 닿자 하이파이브를 했다. 비록 영어를 할 줄 몰라서 대화는 나눌 수 없었지만, 나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 꼬마를 보니어찌나 귀엽고 대견스러운지 나는 비행 내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고 꼬마는 승무원의 손을 잡고 비행기 밖으로 나갈 때 까지  계속해서 손은 흔들었다.


귀여운 녀석. 나는 혼자 피식 웃으며 그 꼬마를 나의 덴마크 여행의 즐거운 시작을 알리는 마스코트로 삼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코펜하겐 시내를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표를 결재하며 첫날부터 엄청난 물가에 깜짝 놀라 자동발권기를 다시 누르고 확인하고 누르고 확인했다.

북유럽에 오긴 왔구나.

엄청난 물가에 벌써부터 기가 눌린 것 같았지만 나는 다시 가방을 바로 메고 지하철 역에 섰다. 무척이나 깨끗하고 모던한 공항과 지하철. 그리고 조금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 먼저 다가와 길을 알려주는 ‘미남’경찰과 ‘미녀’시민 덕분에 나는 쉽게 지하철을 타고 코펜하겐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북유럽은 미남, 미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유명한 배우들과 모델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고 예전부터 많은 미국 남자들이 북유럽 여자를 만나보기 위해 북유럽에 여행을 온다고 할 정도다. 덴마크의 경우 잡지 같은 곳에 코펜하겐을 소개하며 꼭 빼놓지 않는 것이 커다란 멋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미남, 미녀를 많이 볼 수 있다고 소개한다. 실제로 코펜하겐은 그랬다. 수많은 미남, 미녀들이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달리고 있었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많이 본 이동 수단은 자전거였다. 실제로 국회위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으로 유명한 덴마크는 차량을 보유할 경우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친환경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선호한다고 했다.


 북유럽 대부분이 수입의 50프로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건 유명한 사실이자, 들을 때마다 놀라운 이야기다.  거기다 소득에 따라 세금을 더  징수받기도 하고 벌금 같은 것도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한다. 소득이  많을수록 엄청난 비용을 내야 하기 때문에 소득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특정 직업을 무시하거나 존경하는 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시민들 모두가 서로를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인터뷰와 기사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 깊이 큰 감명을 받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만 진지하게, 진심으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이게 진정한 복지국가의 성공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부럽다고 해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북유럽식 교육,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 북유럽식 사고를 바로 따라가기란 너무 힘들 것 같다. 우리에게 당장 50프로의 세금을 내라고 하면 우린 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당장 소득에 따라 벌금을 메긴다면 사람들은 바로 수긍할까? 이미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다른 방향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들부터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저들의 스타일만 겉핥기 식으로 따라 하다 번번이 실패할게 틀림없다.


북유럽이 더 낫다기보다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해결점과 절충점을 찾는 게 시급하다고 느껴진다. 덴마크에 오기 전 읽었던 북유럽에 관련된 책들과 기사를 곱씹으며 하나 몸은 여전히 뒤뚱뒤뚱 두리번 거리며 잠깐의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호스텔에 도착했다.



“한국사람이죠?”

호스텔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있는데 단발머리의 귀여운 인상을 가진 여자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맞아요. 우와, 북유럽엔 한국사람이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한국사람을 만나네요!”

“반가워요! 사실 전 덴마크 경유해서 독일가요.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탔더니 덴마크를 경유하더라고요. 북유럽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경유로 들렸어요. 혼자 여행 중이에요? 직장인? 학생?”


백수예요. 하하. 회사 그만두고 여행 왔어요.

30대 초반, 초 동안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가영언니는 학교 방학이 돼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행 중 몇 번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다들 방학을 맞이한 설렘과 개학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방학이란 것은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모두 비슷한가 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여름방학을 떠나온 나 역시 너무나도 행복하고 기쁘면서도 마음 한편엔 한국에 돌아가 현실과 마주해 야한 것이 벌써부터 부담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설레발 같으면서도 마음 한편에 쉽사리  내려놓기 힘든 깊이 박힌 돌이었다. 더 신나하고  즐거워해서 그 돌을 아예 덮어버리던가, 좀 더 나의 정신을 강하게 길러 확실히 그 돌을 뿌리체 뽑아 버리던가. 사람이란 생각보다 더 변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후자는 쉽지 않을 것이 눈에 보여 전자를 택하기로 했다.



우리는 잠시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 후 다음 날 함께 저녁을 먹고 야경을 구경하기로 약속하곤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6인실이지만 여자 전용실이어서 그런지 모두가 매우 조용했다. 뮌헨에서 브라질 남자 아이들 4명과 함께 5인실을 썼던게 생각나 갑자기 웃음이 났다. 덩치도 크고 짐도 엉망으로 널려 놓은, 땜냄새 가득했던 소년들. 허나 걱정과 달리 무척이나 친절했고, 나보다 5살이나 어렸고, 무엇보다 새나라의 어린이 만큼이나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예의 바른 그 소년들은 내가 뮌헨을 떠났던 그날 베를린으로 떠났다. 멀리 브라질에서 유럽여행을 위해, 다 함께 의기 투합해서 배낭을 쌌을 5명의 해맑은 소년들.  친구들끼리, 그것도 5명이서 같이 움직이는 게 혼자 여행하거나 1명의 동행을 선호하는 나로선 상상도 되지 않는다. 허나 5명이서 짓궂고 풋풋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인사하던 모습을 떠올리니 이도 참으로 즐거울 것 같긴 하다.


그렇게 독일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미소를 짓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그렇게 코펜하겐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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