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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30. 2015

무엇이든 될 것 같았던 우리의 20대, 안녕!

홀로 앞으로 싸워가야 할 외로움과 전진해야 할 새로운 세계

 왼쪽부터 나, 토마스, 콜롬비아 여인 비비아나,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토마스의 랜드로드 엠지


진짜 비가 내리긴 했으나 금방 그쳤다. 대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고 우리는 에를랑겐에 도착하자마자 축축한 길을 뛰어 ‘말리부’란 이름의 폅에 갔다. 펍은 캘리포니아 말리부가 아닌 라틴 어느 바닷가에 있는 바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 라틴 뮤직까지 흐르고 이동네 남미 사람들은 다 모인 듯 독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가득 찼다. 거기서 우리는 엊그제 펍에서 만났던 토마스의 친구 알레한드로와 다시 마주쳤다. 멕시코 출신인 알레한드로는 한 손엔 맥주를, 한 손은 자신의 몸을 쓰러 내리며 춤을 추고 있다.


“알레한드로!!!... 으이 술냄새!”

“혜림!! 다시 만났구나!”

알레한드로는 격하게 나와 포옹을 한 후 손을 내밀며 춤을 추자고 한다. 평소 클럽과는 거리가 멀고 몸치이기까지 한 나는 붉고 어두운 조명에 가려져 다행일 만큼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 진짜 춤 못 춰! 됐어!! 괜찮아! 진짜 괜찮아!!”

“내일 여기 떠난다며, 마지막 밤은 춤과 함께해야지! 여긴 유럽이야!”

“유럽보단 남미 같은데, 여기.”

“그럼 더 춤을 춰야지!”


그는 나의 손을 이끌고 나간다. 난 진짜 춤을 저질로 춘다. 사실 춰 본적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멕시코의 춤 ‘굼비아’를 나에게 가르쳐 준다.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그 춤은 굼비아는 살사와 탱고의 중간 정도 되는 춤이라고 했다.  

“괜찮아! 춤은 그냥 파트너가 리드하는 데로 따라가기만 하면돼!”

결국 나는 그의 품에 안겨 굼비아를 한 곡 췄고, 내일 이 곳을 떠나는 또 다른 사람 키텔의 손에 이끌려 살사까지 췄다.

나는 땀을 닦으며 구석에 앉았고 토마스는 계속해서 피식피식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춤은 잘 췄어?”

“아, 몰라. 그냥 계속 끌려다녔어. 재밌긴 한데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좀 잘 추면 좋을 텐데.”

“괜찮아. 나도 춤 엄청 못 추는데 이런 곳에 오면 먼저 나서서 춤추는데 뭐.”

“그런데 넌 스페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그냥 독일인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억양도 달라지고, 표정도 달라지는 거 알고 있어?”

“다들 그  소리하던데. 맞아. 스페인어를 좋아해서 배우기도 했지만 스페인어를 하면 뭔가 너무 신난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좋아져. 너도 스페인어를 배워. 우리가 오늘 스페인어 사전도 사줬잖아.”

오늘 밤베르크를 가기 전 역 근처 헌책방에서 토마스와 키텔은 나에게 스페인어 사전을 사 주었다.


토마스가 스페인어 사전을 사주었던 에를랑겐의 서점


“일단 영어부터 더 잘하게 되면.”

“다른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 그냥 스페인어도 배워.”

“스페인어라. 언젠가 스페인어를 배워서 남미를 가고 싶긴 하다. 나, 오래전부터 아르헨티나랑 쿠바를 가보고 싶었거든. 너 치코와 리타란 영화 본 적 있어?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은? 쿠바에 가서 멋진 바에 앉아 농도 짙은 목소리의 보컬이 있는 공연을 보고 싶어. 그리고 언젠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서 탱고 클라스도 등록해보고 싶어.”

“그러니까 스페인어를 배워야 해! 그럼 곧 바로 네 소원이 이뤄질 거야.”


마지막 날 밤 주방에서 기차 표를 확인하는 키텔 :)

어느새 우리 옆에 다가온 키텔이 말한다. 독일에서의 이국적인 마지막 밤이 저물어간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지기에 나는 다시 알레한드로를 불러 춤을 췄다. 에를랑겐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과 맑은 공기, 그 사이 빛나는 찬란한 별들과 숲 길. 나는 좀 더 열심히 춤을 췄다. 그리고 더 많이 영어를 말하고 스페인어를 따라 했다. 수 많은 타국의 언어 속에서 나는 자의도 타의도 아닌 불가항력으로 밀려오는 외로움을 떨치려 더욱 환하게 웃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엠지, 비비아나, 키텔


Goodbye, Tomas!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떠나는 키텔을 배웅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고 1층으로 내려갔다. 키텔은 이미 토마스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 혜림! 고마워, 이렇게 일찍 일어나 줘서!”

“당연한 거 아냐? 당연히 널 배웅해야지!”


우리는 양 팔을 크게 뻗어 서로를 껴안곤 몇 초간 말이 없었다. 우리는 안다. 우리의 여행이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홀로 앞으로 싸워가야 할 외로움과 전진해야 할 새로운 세계, 그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새로운 사람들. 우리는 텔레파시를 보내 듯 서로를 마음 깊이 응원하고 마지막 종착지란 고지를 기쁘게 점령하길 기도했다.

그렇게 키텔과 이별하고 나니 내가 독일을 떠난다는 것이 온몸으로 실감이 났다.


“혜림, 넌 짐 다 쌌어?”

“응, 씻고 옷 갈아입고 나가면 돼.”

“아직 몇 시간 여유 있으니 좀 더 쉬어. 그리고 아침도 먹고.”


매일 매일의 시간은 그리도 느리게, 게으르게 흐르더니 막상 이별의 순간, 떠나는 날이 되니 너무나도 바삐 시간이 흐른다. 어느새 나는 공항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에 서 배웅을 하겠노라 고맙게도 함께 길을 나서 준 토마스와 마주했다. 이 눈 마주침을 또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마주 서기까지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앞으론 또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늘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워 다녔던 토마스의 뒷모습... 안녕...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20대 초반의 우리. 7년 전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목청 높여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하지 못 할까 봐 불안해한다. 전공을 바꾸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타지로 훌쩍 떠나왔다. 7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7년 안에 다시 볼 수 있겠지?”

“당연하지. 다음엔 7년이 아니라 5년, 아니 3년으로 하자.”

“비현실적이지만, 곧 보자!라고 말하고 싶다.”

“곧 보자, 나의 한국인 누나!”

“정말로 너무 보고 싶을 거야. 내 잘생기고 어린 독일동생!”

“기차 도착했다. 어서 타!”

“응, 건강하고, 자주 연락하자! 네 행복을 빌게! 안녕!”

“나도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길, 그리고 앞으로의 빛나는 여행을 기원할게!”


“안녕!”
“안녕!!”


기차의 문이 닫히고 나는 토마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창문에 이마를 대고 멀어지는 철로를 바라본다. 왠지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덜컹이는 기차에 기울어진 몸 밖으로 몸에 담긴 물이 흘러 넘치는  듯하여 나는 최대한 몸의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반짝 빛이 났다.


 유난히 뜨거웠던 독일에서의 나날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떠들고, 양팔을 높이 펼치며 크게 소리쳤던 아이 같은 우리들. 친구들을 두고 홀로 전학을 가는 아이처럼 떼를 쓰며 울고 싶었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성인이기에 나는 이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꾹 꾹 눌렀다.


 곧 다시 올게. 나는 30대가 된 나와 토마스가 독일에서 다시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 독일! 좀 더 빛나는 모습으로 곧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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