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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30. 2015

잉크처럼 퍼져가는 흐린 색의 하늘

독일의 베니스 밤베르크

키텔, 나, 토마스.... 이때  벌써 너무 많이 탔다... 여행 초반인데!!! 


독일의 베니스 밤베르크

온몸이 찌뿌둥하다. 이제 경우 여행 10일 차인데 벌써 몸이 무겁다. 가벼운 속과 달리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이 야속하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닫힌 창 밖에 부는 바람을 상상한다. 서늘한 밤의 바람은  온몸 구석구석을 스쳐 간다. 몸을 분리해서 차갑게 씻어 레몬처럼 시린 달빛에 말리고, 아침 밝은 햇살에 새로이 끼워 맞추고 싶을 지경이다.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었다.


“혜림, 아직 아직 자고 있는 거야?”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린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벌써 낮 12시다. 난 도대체 얼마나 잠을 잔 걸까. 쿵쾅 이는 소리와 나의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의 콤비네이션은 나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미안, 미안. 이 제 일어났어.”

“네 샌드위치까지 다 만들었어. 아침에 따끈한 슈니첼도 사왔어.
그러니 어서 씻고 나와! 밤베르크 가자!”

밤베르크 역에 도착하니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냥 평범한 도시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음? 이게 밤베르크야?”

“어, 이거 어제 검색한 거랑 너무 다른데.”

“잘못 내린 거 아냐? 내가 구글맵  검색해 볼게.”

당황한 표정의 우리 셋은 쭈뼛쭈뼛 길가에 서서 핸드폰을 두드린다. 토마스는 역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고, 키텔은 구글 맵을 검색하고,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표지판을 향해 뛰었다.



“여기 밤베르크 맞네!”

밤베르크 역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니 그제야 우리가 인터넷에서 봤던 그 풍경이 나온다. ‘리틀베니스’ 밤베르크의 별명이다.

“에이, 베니스는 아니지.”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토마스가 역에서 가져온 지도에 적힌설명을 반박한다.

“왜, 베니스가 훨씬 좋아?”

“그렇다기보다, 너무 달라. 여기도 너무 예쁜데, 뭐랄까 아름다운의 기준이 달라. 베니스는 정말 온동네가 물이잖아.”

“하하, 리틀베니스 말고 하나뿐인 밤베르크로 하자.”

“그래, 그게 훨씬 좋아. 우리가 가이드북을 만들어야겠네!”



산책하듯 천천히 우리는 길을 걷는다. 동화 삽화같이 수채화처럼 펼쳐진 풍경에 우리는 계속해서 감탄한다.

“독일 하면 소시지밖에 몰랐던 나를 용서해, 독일인 토마스.”

“술 많이 마시고 축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서정적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어.”


키텔과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토마스에게 우리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토마스는 껄껄 웃으며 저 멀리 건물마다 장식된 붉은 꽃 화분을 가리킨다. 마치 엄마 몰래 정원에서 꺾어온 생화 다발을 인형의 집에 가져다 놓은 듯, 무언가 실제 같지 않은 귀여운 느낌이다. 그 사이 골목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마치 장난감 같이 느껴진다.


사실 밤베르크는 라우흐비어(훈제맥주)로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훈제맥주라는 것이 매우 생소했던지라 우리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야, 넌 독일인이잖아! 용감하게 먼저 마셔봐!”

“아냐, 아냐. 우리 한 잔만 시켜서 나눠 마셔보자.”

우리는 밤베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중 하나라는 ‘스페치알’로 가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냄새부터 알싸한 훈제맥주가 우리 눈 앞에 담겨있다.


문제의 라우흐비어!!! 으으으


“뭔가, 햄 냄새가나.”

맥주에서 숙성된 햄, 소시지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혹은 포르투갈에서 종종 맡았던 삭힌 대구의 냄새랄까. 여러 향이 복합된 맥주는 기네스를 처음 잔에 따를 때 같은 검붉은 빛을 낸다. 우리는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맥주를 목 안에 쏟아 붓는다. 탄산처럼 살짝 입 안을 쏘는 듯하더니 고깃국물처럼 입안에 맛이 벤다. 거기다 안주를 먹지 않았으나 얼굴 가득 스모크 햄 냄새가 폴폴 풍겨 났다.

“음, 음.”

“흠.”

“음?”

내 입맛엔 잘 맞지 않고, 키텔에겐 딱이었다. 토마스는 나쁘진 않지만 일반 맥주가 더 좋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한 잔만 시킨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우린 입맛이 싼가 보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밤베르크를 쏘다닌다. 딱히 목적도 없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작고 예쁜 이 곳을 쏘다니며 밤베르크의 햇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돔광장과 대성당을 지나 우리는 좀 더 속력을 내 길을 걸어 가파른 미하엘 언덕을 올라 수도원까지 다다랐다.


이 곳의 공기가 바람소리 외 모든 소리를 삼키기라도 하는 걸까? 서늘한 언덕 위의 공기가 경건한 수도원은 우리가 낮고 작게 발음하도록 주문을 건 것 같았다. 소곤소곤, 우리는 밤베르크 전경이 내려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어느새 하늘은 흐려졌고 흐린 구름이 찬 바람을 흘려보낸다. 우리 가아무리 작게 발음해도 바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상대의 귀로 옮겨주는 것만 같다. 바람에 섞인 우리의 목소리가평소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내일이면 독일을 떠나는구나. 이상해. 11일을 독일에서 머무는데 벌써 한 달은 지난 것 같아.”

“시간이 빠른 게 아니라 하루하루가 엄청 길어진 것 같지 않아? 물론 아쉬운 건 똑같지만.”

나와 키텔은 내일 토마스의 집을 떠난다. 아침 일찍 다시 베를린으로 떠나는 키텔,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떠나는 나.


“그러게. 거기다 여기오니 우리 말고 다른 곳은 시간이 멈춘 것 같지 않아?
바람도  아래쪽 보다 느리고 말야.”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역시 수도원이 있어서 그런가. 명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우리는 조용히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아까보다 공기 자체도 무거워진 느낌이다.

“비가 올 것 같지?”

“내려가자.”

우리는 무거워진 공기와 번진 잉크처럼 퍼져가는 흐린 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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