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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03. 2015

소녀시절, 나의 소중한 벗들과의 조우

덴마크 안드레센의 도시 '오덴세' , 그리고 레고레고레고 레고랜드!

동화나라 안드레센 뮤지엄

소녀시절, 나의 소중한 벗과의 조우


코펜하겐에서 1시간 반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도시 ‘오덴세’. 아침일찍부터 9시 10분 ‘오덴세’행 기차를 타기 위해 헐레벌떡 전속력으로 달려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했다. 무려 9시 9분. 나는 기차 옆에 서 있는 역무원에게 오덴세? 오덴세! 라며 참새처럼 소리쳤고 역무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바로 출발하니 당장 탑승하라고 손짓한다. 겨우 기차 안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고르며 스칸디나비아패스를 꺼냈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기차의 바퀴가 굴러가는 느낌이온 몸으로 느껴진다. 귀 뒤로 뒷걸음치며 스쳐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나는 안데르센의 도시 오덴세로 떠났다. 


잠깐 졸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 더 흘렀고 나는 오덴세에 도착했다. 오덴세에 도착해 역에 있는 지도를 하나 빼들어 펼친다. 그리곤 핑크색 형광팬으로 몇 군대를 동그란 점으로 표시했다. 

“자, 이제  출발해 볼까?”

나는 지도를 따라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이제 지도도 볼 줄 알고, 길 이름도 확인할 줄 안다. 엄청난 발전이다. 나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좌회전을 했다. 안데르센 뮤지엄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시간을 확인한다. 

11시!  

“이제 곧 뮤지컬을 할 시간이야!” 

나는 급히 뮤지엄 입장권을 구입하고 잔디마당으로 다시 뛰어 나왔다. 이미 수많은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옹기종기 돗자리를 펴 자리에 앉아있다. 북유럽에는 금발이 많더니 아이들 대부분이 금발이라 초록 잔디밭은 가을의 논처럼 빛나는 금빛으로 너울거린다. 그 사이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 온 ‘어른’은 나 혼자 뿐인  듯하다. 나는 그 엄청난 사실에 홀로 낄낄거리며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칭찬받는 물개처럼 박수를 쳤다. 

안데르센 뮤지엄에서는 오전 11시에 어린이 뮤지컬을 한다는 안데르센 뮤지엄 홈페이지의 안내 문구를 보는 순간 이게 어떤 내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여길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눈 앞에는 수많은 어린이 배우들이 안데르센 동화 주인공코스튬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리고 몇몇 어른 배우들이 악역을 자처해 익살스러운 웃음과 과장된 행동을 취한다. 옆에는 까만 정장과 모자를 쓴 안데르센 역의 아저씨가 덴마크어와 영어로 내용을 설명했다. 주변 꼬마들은 흥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기저귀를 찬 아기부터 공주, 왕자 옷을 차려 입은 아이들까지 모두 신나게 춤을 춘다. 이 곳에 혼자 온 유일한 ‘어른’ 이나 역시 어느 순간 어깨를 들썩이며 음악에 맞춰 율동을 따라 했다. 그렇게 20여분의 뮤지컬이 끝나고 나는 무척이나 흡족한 마음으로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데르센. 인어공주, 엄지공주, 눈의 여왕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동화를 쓴 작가. 아마도 그의 동화를 읽지 않고 자란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그는 동화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물론 그의 동화와 함께 자란 나와 같은 수많은 어른들이 이 작은 동네를 찾는다고 한다. 나는 안데르센 뮤지엄을 둘러보곤 안데르센이 태어났다는 생가를 찾아 떠났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만만하게 지도를 펼쳐 들고 앞으로 앞으로 걱정 없이 길을 걸어갔다. 


“여기가 어디지?”

그런데 아무리 앞으로 걸어가도 안데르센의 생가처럼 보이는 집은 커녕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텅 빈 거리만이 내 시야 고정되었다. 나는 지도를 오른쪽으로 돌려보고 왼쪽으로도 돌려봤으나 아무리 봐도 이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걸어온 길을 돌아가기 위해 몸을 틀었으나 텅 빈 거리는 낯설기 그지 없어 내가 걸어왔던 길이 맞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왼쪽 골목으로 나온다. 마치 미로처럼 이쪽으로 들어가면 저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더워서인지, 긴장을 해서 인지 인적 없는 이 거리는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혹시 한국사람이에요? 아니면 일본 사람?”

그때였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동그란 안경을 낀 동양인 아주머니가 나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한국사람이에요. 한국 분이신가요?”

나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나의 사정을 듣더니 그 곳이 어딘지 알고 있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파란 구두가 멋스러운 이 아주머니는 30년 전 덴마크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 곳으로 시집왔다고 했다. 


“우와, 30년 전이요?”

“그래요, 30년 전. 그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덴마크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었어요. 뭐 지금도 가족들이나 조카들한테 놀러 오라고 해도 덴마크는 재미없다고 안 오려고 하네요. 아가씨는 어떻게 여기 왔어요? 혼자?” 

조카들 이야기를 하며 입술을 귀엽게 삐죽거리시던 아주머니는 내 가 혼자 여행을 하는 중이란 말에 환희 웃으며 역시 젊음!이라며 크게 박수를 한번 친다. ‘젊음’. 마치 어느 운동경기의 구호처럼 언제 어디서 들어도 무척이나 힘이 나는 단어이다. 아주머니를 따라 꼬불꼬불 다리를 건너 공원을 지났다. 내가 이렇게 많이 걸어왔던가?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제가 이렇게 많이 걸어왔는지 몰랐어요.”

“원래 혼자 다니면 아무 생각 없잖아. 안 그래요?”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사람들로 가득한 길이 열렸다. 아주머니는 여기저기 상점들을 신나게 설명한다. 오덴세에서만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오셨다는 아주머니는 이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신 듯했다. 


“자, 저기,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정말 작은 집이 나올 거예요. 노란 지붕인데, 거기가 안데르센이 태어난 곳이에요. 너무 작아서 아마 도착하면 내가 여기 왜 왔나 할걸? 어쨌든 잘 찾아가요! 남은 여행도 잘 하고! 젊음!”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젊음이란 단어에 맞춰 크게 한번 박수를 친다. 나는 웃으며 아주머니에게 손을 흔든다. 

“젊음!” 

내가 젊음이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을 땐 아주머니는 이미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가고 계셨다. 나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인사를 한 후 아주머니가 알려준 길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불과 1~2분 만에 노란 지붕의 정말 작은 건물을 발견했다. 아주머니 말 대로 도대체 여길 왜 찾아왔을까 싶을 만큼 작고, 내부도 매우 좁아 불과 5분도 안되어 모든 곳을 둘러보았다. 안데르센은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 곳이 바로 이 작고 허름한 집이다. 안데르센은 이 집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이 이 곳에서 태어난 것을 부인했다고 한다. 나는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져 그 집을 나오자마자 오덴세 중앙역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젊음!”

나는 젊음이란 단어와 함께 박수를 치시던 아주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젊음’이란 단어를 조용히 곱씹었다. 그리곤 이름마저 동화 같은 오덴세를 뒤로 한 체 베일레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베일레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계속 기차를 탔더니 약간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두통에 신경 쓸 시간도 없이 기차역 앞 ‘빌룬드행’이라고 크게 적힌 버스를 보곤 부리나케 달려가 버스 앞에서 있는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 버스가 레고랜드로 가는 버스인가요?”

“레고랜드 가는 버스 맞고,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 당장 타세요!” 

하얀 수염이 멋진 운전기사는 산타 할아버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버스 유리창에 작은 글씨로 레고랜드라고 적힌 스티커를 가리킨다. 내가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문이 닫혔고 약 1시간 후 창 밖에는 ‘LEGO LAND’라는 팻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순간 똑같이 동요한다. 


“레고랜드야!” 

웅성웅성, 중얼중얼, 그동안 조용했던 버스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버스는 슬라이딩하듯 빠르게 정차했다. 

레고랜드. 어린 시절 아빠와 남동생, 셋이서 경쟁하듯 만들던 집들이 떠오른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종종 레고나 나노블록을 구입해 무언가를 만들곤 했다. 어린 시절 재미 난 친구였던 레고는 어른이 된 후 회사생활,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망각제로 내 곁에 항상 존재했다. 내가 레고랜드를 갈 거라고 했을 때 레고가 덴마크꺼였냐고묻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레고는 나무로 만들어진 블록에서 출발해 지금의 플라스틱 모양이 되었다는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기사도 떠오른다. 입구부터 레고로 만든 모형들과 동물들로 가득한 문을 지나 드디어 레고랜드에 입성했다. 


레고랜드는 다양한 나라의 도시들, 영화 속 장면들을 레고로 만들어 전시한 레고 마을과 레고 놀이공원, 레고스토어로 구성되어져 있었다. 코펜하겐의 뉘 하운부터 노르웨이의 베르겐 어시장, 트랜스포머 의한 장면 레고로 만들어진 섬세한 작품들은 다시금 나의 손이 좀 더 많은 레고를 조립하길 응원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탔을 때 까진 조금 흐린 날씨가 아쉬웠는데 막상 레고랜드 안에서 흐린 하늘을 보니 마치 간유리를 끼운 렌즈처럼 레고랜드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더욱 꿈꾸는 듯 환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허나, 이러한 설렘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수많은 꼬마들 사이에 끼어 두 눈과 양 어깨 가득 피곤을 업고 길 위를 허덕이고 있었다. 


혹시 어린이날 혼자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가 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마음을 100%로 이해할 것이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곳 없이 가득 찬 사람들에 1차로 놀랐고 그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동반한 가족임에 놀랐다. 혼자 온 사람, 아니 성인끼리 온 사람조차 없었다. 나는 잠시영혼이 빠져나간 듯 수천 명의 아이들 사이에 멍하니 섰다. 나는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이 된 듯몰려오는 피로감과 당황스러움을 애써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여긴 레고랜드야! 놀자! 으아!”


거기다 동양인 하나 없는 이 곳에서 나는 한국말로 큰소리를 내며 혼잣말을 했다. 레고랜드가 얼마나 큰지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미니어처 레고 마을을 지나니 레고 놀이공원이 펼쳐졌다. 이때 이미 나의 체력은 완전히 바닥이난 듯했다. 수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기력을 빼앗겨 가는 것 같았고 급히 레고 스토어로 들어가 심슨 시리즈와 스타워즈 시리즈를 구입하곤 부리나케 레고랜드를 빠져나갔다. 

“그래도 3~4시간이나 있었네. 이 정도면 됐어.”


레고랜드가 얼마나 큰지, 놀이기구를 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걸어 돌아다니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하루에 두 도시를, 그것도 어린이들로 가득한 곳을 도는 것은 나에게 살짝 무리였나 보다. 나는 퀭한 눈으로 핫도그 하나를 사서 코펜하겐 행 기차에 탑승했다. 

안녕! 레고랜드 ㅠㅠ


“중국사람? 일본 사람? 아니면 인도?”

핫도그를 입에 문 체 자리에 앉으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건다. 뒤를 돌아보니 키가 매우 큰 금발의 남자가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 사람인데, 왜요?”


그는 덴마크의 대학도시 오르후스에 사는 학생이었다. 그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고 특히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 북한, 그리고 일본 만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거기다 그는 밀리터리분야의 마니아였다. 그는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며 가자고 말하며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처음 그가 꺼낸 만화 이야기나 정치, 사회 관련된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 경청하며 듣고 대답을 했으나 10여분 후부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이지 말이 많았다. 거기다 내가 잠시라도 눈을 피하면 더 큰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겨우 한입 베어 문 불쌍한 나의 핫도그는 내 손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살땐 따끈따끈 했는데 ㅠㅠ 

 나는 정말 미안하게도 그가 어서 내리길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그의 이야기는 점점 더 심각해졌고 옆 자리에 앉아있던 미국인 커플은 계속해서 “저 애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란 말을 반복했다. 1시간 반쯤 흘렀을까,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내민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같이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더니 크게 포옹을 하곤 자신은 이제 여기서 내린다고 말했다.


“남은 여행 재미있게 해. 네가 덴마크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네가 나보다 6살이나 많다니 아직도 충격이야. 아시아 사람들은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니까. 뭐 어쨌든 남은 여행 안전하길 나도 기도할게! 안녕!” 

“뭐야, 나보다 6살이나 어렸어?”

나는 기차 밖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 어느 곳에나 특이한 사람은 많고 외로운 사람, 심심한 사람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비포 선라이즈 같은 로맨틱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여행 중 이런 황당하고 우스운 기차 안의 해프닝은 언제나 환영이다. 식어버린 핫도그가 아쉽고조금 피곤하고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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