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Nov 07. 2015

나른하고 한적한 미술관과 젊음으로 빛나는 페스티벌

코펜하겐의 A day in the life 

나른하고 한적한 미술관의 A day in the life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일어났지. 겨우 빗으로 머리를 빗었다네.
계단을 내려와 커피 한잔을 하고, 고개를 들고 내가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코트를 찾아 걸치고 모자를 움켜 쥐며 재빠르게 버스를 잡아 탔지. 
계단을 올라가 담배를 피웠어. 누군가 말을 걸었지만 난  꿈속에 빠져버렸다네.


아침부터 비틀스의 Aday in the life를 들으며 흥얼흥얼 가사를 되뇌었다. 아니, 늦은 아침으로 정정한다. 나는 늦잠을 잤고 아침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시간에 눈을 떴다. 

팔 하나는 침대 밖으로 삐죽 튀어 나와 물기를 다 짜내지 못한 빨래처럼 축 처져 있었고 이불 자락을 벗어난 다리 한 짝 역시 바닥을 향해 널브러져 있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니 모두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간 모양인지 6인실 룸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거울을 보니 솜사탕처럼 뒤엉켜 부푼 머리를 한 누르죽죽한 톤의 양배추 인형이 서있다. 

“얼굴이 이게 뭐야.”


오늘 따라 너무나도 무거운 몸을 달팽이 집 마냥 억지로 끌고 나가 겨우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키친으로 걸어 내려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건 무리는 무리였나 보다. 빗을 꺼내기가 귀찮아 손가락으로 아직 물기 가득한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어느새 12시가 지나가고 있다. 원피스에 몸을 쑤셔 넣고 호스텔 계단을 뛰어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아 비틀스의 노래를 듣고 흥얼거린다. 한 손엔 방금 전에 구입한 커다란 베이글 치킨 샌드위치,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위태로운 곡예 길을 걷는다. 커피 한 방울이 손등에 튄다. 순간 균형이 무너진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나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휘 청이며 길을 걸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마니악’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필름박물관이나 가볼까? 아니다, 그 전에 숙소 근처국립미술관을 먼저 가야겠다. 나는 ‘띠링’하는 자전거의 경고소리에 겨우 혼자만의 생각에서 빠져 나와 정신을 차린다. 이미나의 발은 며칠 전 스쳐 갔던 국립미술관으로 향하는 익숙한 길을 걷고 있었다.  


사실 어제 너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이 들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지금 묵고 있는 호스텔은 로젠보르 궁 바로 근처이다. 그리고 어제 로젠보르 궁의 정원에서는 ‘오픈 에어 시네마’를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진행했다. 무엇보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 이유는 바로 그 ‘시네마’ 때문이었다. 오픈 에어시네마에서 상영한 영화는 무려 스탠리 큐브릭의‘샤이닝’이었다. 오, 마이 갓! 공포영화를 무서워하는 나로선 포스터의 잭 니콜슨 표정만 봐도 가슴이 뛰는데 새벽까지 이어지는 영화 속 음산한 대사와 음악, 비명소리는… 아아, 무엇보다 덴마크어로 더빙까지 해서 이게 무슨 소린지도 모른 체 끝없이 비명소리를 듣고 있으니 소름이 끼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소름 끼치는 비명으로 피폐해진육신을 끌고 들어온 국립미술관에서 만난 첫 번째 작품은 규칙적인 소음과 반복되는 비명으로 이뤄진 사운드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계속해서 보고 듣는 내 정신이 살짝 아찔하게 육신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헤드셋을 내려놓고 존 케이지의 ‘4분 33초’스런 이 작품에서 자리를 떠났다. 


국립미술관의 1층은 모던, 신진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고, 2층부터는 시대순으로 차례차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흥미로운 건 2층부터는 한 시대 혹은 한 스타일을 대표하는 국적과 상관없이 유명 명화 한 점과 동시대 덴마크 작가들을 함께 전시를 하여 시대적 이해를 도와주고 있었다. 또한 고전 작품의 경우 작품들 사이에서도 주제를 나눠 전시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 시대의 여행자, 어떤 사람이 이 시대의 ‘좋은 사람’인가? 등 다양한 주제에 맞춰 작품이 나눠져 있고,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대학의 미대생들과 작품을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토론한 스크립트를 옆에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전 작품을 소개하면서 한편으론 덴마크의 현대작가들이 그 시절 작품을 풍자하거나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을 함께 비치해 둔 점도 재미가 있었다. 


모던 작품들, 특히 80년대 덴마크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살과 폭력, 포르노,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전 작품들 중에도 유독죽음과 해골, 병마에 관한 그림이 많았다. 북유럽의 짧은 여름과 길고 긴 밤을 가진 추운 겨울의 정서와 연관이 있겠지? 가련하고 창백한 얼굴의 외로운 사람들의 초상을 보고 있으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중 ‘멜랑꼴리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두운 밤 달을 향해 달려가는, 혹은 도망치는 아름답고 창백하며 우울한 신부의 이미지.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이자 부자 나라인 북유럽의 국가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자살률을 보여주는 우울한 이면이 이러한 작품들에게서 증명되는 것 같아 갑자기 겨울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선 나그네가 된 듯 몸을 떨었다.   


5시간 넘게 미술관에 머물렀다. 아니 5시간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미술관 폐관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계단을 내려와 로비로 왔다. 


1층 계단에 긴 선처럼 누운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놓친 작품인가 했는데 그냥 일반 관람객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오랜 시간 미술관에 머물며 피로감을 느끼고자 곳에 누운  듯했다. 계단과 벽과 함께 선이 되어 미술관의 일부로 흡수된 사람들. 그들은 곧 이대로 벽 안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본다. 5시 40분. 나는 미술관에 흡수되어가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저녁 약속을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Hay house 내부


북유럽의 디자인, 그리고 트레일러 파크 페스티벌.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알게 된 분을 만나기로 했다. 마침 숙소도 같은 ‘Generator hostel’이라 우리는 호스텔 로비에서 7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동행을 구한다는 그분의 글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함께 페스티벌을 갈 것을 권했고  그분은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허나막상 함께 페스티벌을 가기로 했는데 이 분의 이름도, 직업도 잘 몰라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묘한 긴장감이 얼굴에 감돌았다. 

“유랑에서 연락하신 분 맞죠?” 

저기 소파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을 발견하고 나는 반가움에 크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건축인 K씨.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처음 만났음에도 따로 통성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이름은 그가 덴마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K씨는 29살로 나와 동갑이었다. 그는 훌륭한 건축 디자이너가 많고,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북유럽에 항상 관심이 많았기에 이번 여름 휴가를 북유럽에서 보내게 됐다고 했다. 

“우와, 건축인이셨군요! 그럼 당연히 헤이하우스랑 일룸스 버리 백화점도 다녀오셨죠?”

“안 그래도 내일 가보려고요. 로열 코펜하겐 아웃렛을 들릴지 그냥 스트뢰에 거리에 있는 매장을 갈지 고민이에요.” 

친환경 가구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헤이 하우스. 그리고 코펜하겐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 디자인, 소품 디자인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일룸스 버리 백화점, 그 바로 옆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식기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로열코펜하겐. 뱅엔 올룹슨과 핀 율, 코펜하겐 스트뢰에 거리는 하나의 디자인 전시관으로 느껴질 정도다. 나의 전공 역시 디자인이었던 지라 우리는 한동안 북유럽의 디자인과 건축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역시 건축 전공자라 다르네요. 좀 추천할 만한 곳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블랙다이아몬드는 가봤죠? 스웨덴도 스웨덴인데 핀란드에 가면 정말 건축적으로 볼 것이 많을 거예요.”   

K씨도 나도 여행에서 도서관을 구경하길 좋아했다. 그가 말한‘블랙다이아몬드’는 코펜하겐의 아름다운 왕립도서관으로 멀리서 보아도, 낮에 보아도, 밤에 보아도 보석처럼 우아하게 빛난다. 나 역시 며칠 전 그 곳에 들려 내부를 돌아보고 도서관 밖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배들에게 손을 흔들며 점심을 먹었었다. 

“벌써 7시 반이네요, 어서 출발하죠.” 



우리는 부리나케 호스텔을 나와 버스를 탔다. 코펜하겐 중앙역을 지나 좀 더 외각으로 가야 하는 트레일러 파크. 사실 나는 덴마크 최대 뮤직 페스티벌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스티벌인 ‘로스킬데’를 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덴마크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 페스티벌은 끝이 났고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다 찾아낸 페스티벌이 바로 이 페스티벌이었다. 


아트와 뮤직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축제를 표방하는 트레일러 파크 페스티벌. 페스티벌에 도착해 페스티벌 팔찌를 받아 팔목에 감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그 실망이 무색하게 이 곳에 온 화려한 패션의 덴마크인들은 무척이나 즐겁고 신나 보였고 우리 역시 금세 이 분위기에 녹아 들었다. 락, 일렉트로닉, 데니쉬팝, 힙합 등 다양한 분야의 데니쉬 뮤니션들이 공연하고 젊은 데니쉬 아티스트들은 부스 사이사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페스티벌 부스들과 설치물들이 어찌나 특이하고 예쁘던지 나는 연신  환호하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뭐랄까, 영화 속에 나오는 유럽의 대학 축제, 그런 느낌 나지 않아요? 규모는 작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여기 동양사람이 저희 둘 밖에 없네요. 뭔가 엄청 특별한 느낌이에요, 여기. 엄청나게 신나는 느낌이라기보다 다들 행복하고 즐거운 밤을 보내기 위해 친구들끼리 약속을 잡고 자기들만의 아지트에 모여든 느낌이랄까요?  우와, 저기 여자분 패션 좀 봐요. 모델 같아요.”

“저기 남자들도 잡지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데요? 여기 계단이랑 의자는 직접 만든 건가 봐요. 특이하다.” 



본격적으로 뮤지션들의 공연이 시작되고 길에는 술에 취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맥주 한 캔을 끝내고 인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춤을 추고 알아들을 수 없는 덴마크 어에 깔깔 웃고, 낯선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다 보니 어느새 새벽 1시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심야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사장을 빠져나 와야만 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아니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머물고 있다. 누군가 자신은 3일 동안 이 곳에서 밤을 새울 것이라며 소리친다. 여기저기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린다. 발 구르는 소리와 살과 옷이 부딪히는 춤추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한 체 행사장을 나왔다.  



“예상보다 더 괜찮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오늘 같이 와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저 헬싱키에서도 뮤직 페스티벌 가는데, 그땐 혼자예요. 여기 다녀오니 거기 혼자 가는 것에 걱정이 되지 않네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르죠, 그때도 저 같이 새로운 동행을 만나게  될지.”



*트레일러 파크 페스티벌(Copenhagen TrailerparkFestival) 

2007년부터 매년 7월 마지막 날 3일 동안 진행되는 페스티벌. 덴마크의 예술가, 디자이너, 웹 개발자, 영향력 있는 트렌드 블로거 및 덴마크의 핫한 뮤지션들이 모여 연례모임처럼 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페스티벌은 매년 코펜하겐의 로열 스케이터 공원에서 진행되며 오후 6시부터 아침 6시까지 다양한 밴드와 DJ 공연이 이어진다. 이 페스티벌은 매년 5,000여 명의 코펜하겐의 힙스터들, 아트전공자들, 그 외 페스티벌 마니아들을 관객으로 Art+Music을 접목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페스티벌 장은 아기자기한 부스들과 독특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3일 내내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작가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다른 뮤직 페스티벌 보다 더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로스킬데 페스티벌(Roskilde Festival) 

1997년부터 시작된 북유럽 최대의 록 페스티벌. ‘이것이 북유럽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코펜하겐에서 조금 떨어진 로스킬데 지역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매년 6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시작하며 8일 동안 진행되는 이 페스티벌은 무조건 ‘텐트’에서 지내야 한다. 또한 페스티벌 8일 중 4일은 그냥 캠핑과 파티 나머지 4일 은공연을 하는 특이한 룰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유일 합법적 누드 달리기가 허용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녀시절, 나의 소중한 벗들과의 조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