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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08. 2015

왕국을 꿈꾸는 부자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

덴마크, 코펜하겐의 마지막 날

왕국을 꿈꾸는 부자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 


아침 일찍 이젠 익숙해진 룸메이트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누군가 창문을 열었고 창문 너머 사람들의 소리와 새소리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불을 털고 일어나 눈을 마주친 아르헨티나인 룸메이트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샤워실로 간다. 아직까진 아침에  눈뜨자마자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부끄럽고 어색하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와 물에 젖은 머리칼을 털어낸다. 오늘도 참으로 맑다. 하늘이 푸르고 방 안까지 밖의 데워진 공기가 들어와 살에 닿으니 오늘 하루도 더울 것이 틀림없다. 방의 맞은편 건물의 창문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눈이 부시다. 맑고 눈부신 아침. 참으로 완벽한 코펜하겐의 마지막 날의 시작이다. 



나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호스텔 문을 나섰다. 첫날 이 곳에 도착했을 때 투명한 유리문에 문이 없다고 착각하고 그대로 걸어나가다 코와 이마를 쌔게 부딪혔었는데. 그 바보 같은 실수가 어느새 매우 오래 전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기차를 타고 중앙역으로 갔다. 그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중앙역 반대 편의 뉘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뉘 칼스버그 미술관은 맥주로 유명한 칼스버그 재단과 창립자 칼 야곱센의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지난달 뉘 칼스버그 미술관에 대해 구글링을 하다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 이 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얕은 신음을 하며 벅차 오는 기쁨을 다스렸었다. 나는 코펜하겐에서의 마지막 날을 이 곳에서 보내기로 덴마크에 오기 전부터 마음을 정해두었고 최대한 여유롭게 마지막 날을 머물고 싶었기에 다른 곳을 갈 계획 같은 건 구깃구깃 구겨 체크아웃을 하며 함께 두고 왔다. 

뉘 칼스버그 미술관에 들어오자마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1층의 풍경은 마치 칼 야곱센, 그가 그만의 왕국을 가지고 싶은 꿈이라도 있었던가 싶을 만큼 거대한 하나의 왕국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스 식 화려한 기둥들, 그 사이 이 왕국의 백성들처럼 그리스와 이집트, 그 옛날 로만의 조각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 수가 어쩌나 많은지 이건 전시됐다는 표현보다는 쌓여있다는 표현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안쪽에는 그가 수집한 엄청난 양의 로댕의 작품들이 늘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작품을  보유했는지 흡사 로댕 컬렉션이라 불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작품들은 파리의 로댕미술관에 있는 작품과 일부 많이 겹쳐 작은 로뎅미술관처럼 느껴졌다. 중앙에 자리 잡은 정원이야말로 이 미술관의 화려함을 극으로 치닫게 했다. 옛 로마시대의 왕실의 정원을 엿보는듯한 신비롭고 화려한 정원과 조각들을 보니 컬렉터로서의 욕심을 넘어 집착까지 느껴져 그 중압감에 온몸이 저릿해왔다.

엄청난 조각 컬렉션을 돌아본 후 위층을 향한 미로 같이 뒤엉킨 계단을 올라갔다. 위로 올라오니 다양한 프렌치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에드워드 드가.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에 붙어있던 르느와르의 ‘피아노 치는 두 소녀’가 내 인생에 있어 명화에 대한 첫 기억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르느와르가 누구인지, 이 그림 이어 떤 작품인지 조차 알지 못했고 사실 큰 인상을 받기 보다는 그냥 피아노 학원의 그림 정도로만 인식했다. 허나드 가는 달랐다. 그 시절 나는 발레리나가 주인공인 하이틴 소설을 읽고 있었고 그때 그 책에서 언급한 작가와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드가’와 그의 발레리나 작품들이었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주인공 소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작가가, 발레리나를 그린 그 작가가 누구인지. 그 후 중학생이 된 나는 우연한 기회로 드가를 온전히 알게 되었다. 


10대 시절, 나는 컴퓨터로 프린트한 드가의 작품들을 벽에 부쳐 놓았다. 그리고 20대 대학생이 되어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오르세에서 드디어 그의 작품과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글썽여 오는 눈물을 참느라 손 부채질을 하며 꽤 오랜 시간 그 작품들 곁을 머물렀었다. 특히 나에게 있어 발레리나를 그린 그림이 아닌 14세 소녀 댄서의 조각은 어린 시절 항상 꿈을 꾸던 모습을 조우한 듯 아련함과 애잔함이 마음에 서려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 할 정도였다. 그 작품을 나는 덴마크에서 다시 만났다.     

 


14세 소녀 댄서의 작품은 사실 1개가 아닌 여러 개다. 그렇기에 파리와 덴마크는 물론 미국 여러 미술관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소녀는 실제로 가난한 벨기에 이민자 가족의 딸이자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했던 발레리나 Marie Van Goethem를 모델로 삼았다. 처음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 드가는 이 조각상을 자신의 ‘딸’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예쁘진 않지만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작은 새와 같은 조그만 소녀 댄서, 그녀의 눈빛에서 어른들에 대한 상처와 세상으로부터의 버림을 초탈한 듯한 투명한 영혼이 보이는  듯하다. 

내 발길이 그녀의 그림자 아래 섰다. 소녀의 여리지만 곧은 허리 아래로 나의 기쁨이 차 올랐다. 

“7년 만에 다시 만났네.”

나의 걸음은 오랜 시간 그 곳에 멈췄고 손과 발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오래전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그렇게 서글프게, 반갑게, 그리고 미안하게 소녀를 꼭 안아주는 꿈을 잠시 꿔 보았다. 


이 미술관에는 흘러 넘치는 야심과 씁쓸한 좌절감 혹은 과한 성취감과 불우한 집착, 화려하지만 무언가 빠진 듯 엉성한 공간이 주는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너무 많은 작품들이 숲의 나무처럼 빽빽이 들어서 있어서 일까? 나는 기쁘면서도 미묘하게 숨이 막혀오는 이 분위기에 살짝 두통이 오는 듯했다. 어느새 꽤 오랜 시간을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미술관을 나와 중앙역 안 스타벅스로 갔다. 



스타벅스 안은 수많은 여행자로 이미 가득 차 있었지만 다행히 창가 구석에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니 직원이내 이름을 묻는다. 하나 내가 여러 번 내 이름을 발음하고 스펠링을 불러주어도 직원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를 외쳤고, 나는 그냥 나의 성 ‘Jo’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요요, 요요씨? 조조? 조?”

설마 했는데 내 이름이었다. 직원은 내 이름을 JoJo라고 적었고 다른 직원은 내 이름을 요요라고 발음했다. 나는 어이없지만 우습기 그지 없는 이 상황에 깔깔 웃으며 커피를 집었다.

“요요, 조조 씨? 혹시 이름이 잘못 적혔나요?”

“괜찮아요. 재밌는 이름이 생겼네요.”


자리에 돌아와 차가운 커피를 입술에 문지른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이 흐르는 코펜하겐 중앙역 스타벅스 안. 요요 혹은 조조 씨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옆 자리에 앉아있던 금발머리 커플도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여자는 가사를 읊고 남자는 휘파람을 분다. 이렇게 평온하고 나른한 오후라니. 코펜하겐의 요요 혹은 조조 씨로서의 마지막 날이 무척이나 흡족하다.


 코펜하겐을 떠나는 기차를 타기 전 나는 잠시 다시 밖을 나가 중앙역 입구 맞은 편의 티볼리 공원을 바라보았다. 마치 반짝이는 황금의 별 같았던 티볼리 공원. 마치 내일이 되면 황금이 흙으로 변하는 밤의 황홀한 마법처럼 코펜하겐에서의 시간이 너무나도 황홀한 꿈같이 느껴져 내일이면 이 곳에서의 기억을 잊어버릴까 두렵다.


 매 순간순간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친절한 이곳의 사람들과 황홀한 햇살. 미술관에서 나의 마음을 뒤 흔들던 수많은 작품들과 내 인생을 뒤 흔들 많은 생각을 만들어준 공간들. 이제 진짜 모두 안녕이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스웨덴 ‘말뫼’행 플랫폼으로 간다. 나는이제 또 다른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덴마크에 최대한 평범히 작별을 고한다. 평범한 작별은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친구이자 이웃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평범히, 슬퍼하지 않고, 기쁘게 기차에 탑승했다.  



*칼스버그

1847년에 창업한 칼스버그 맥주 회사는 덴마크 맥주를 대표하는 맥주 회사다. 4개의 맥주 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덴마크 맥주 시장의 7할을 점유하고 있다. 또한 23개 나라에 합병 회사를 가지고 있고 25개 나라에서 라이선스 맥주 생산을 하고 있으며, 140여 개 나 라에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칼스버그는 1883년 최초로 라거(하면 발효) 효모의 배양균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 맥주 회사. 칼스버그 비어는 1904년 처음 만들어진 맥주다.

출처. 칼스버그비어 [Carlsberg Beer] (한눈에 보는 세계맥주 73가지 맥주수첩, 2010.10.20, 우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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