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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10. 2015

8월 1일 어느 맑은 날, 스톡홀름행 야간기차를 타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소녀시대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방법으로 나는 야간기차를 택했다. 야간기차를 타기 위해선 코펜하겐에서 30분 거리인 스웨덴의 말뫼란 도시로 가서 야간기차로 갈아 타야만 한다. 

나는 6시 반 말뫼행 기차에 탑승했다.


20키로 남짓한 캐리어를 한 손으로 들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길 15분, 마침내 눈앞에 나타난 말뫼행 기차 플랫폼, 시간은 이미 6시 28분. 저 멀리 빨리 뛰어오라고 손짓하는 역무원을 보니 안도감이 밀려온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말뫼를 가는 플랫폼이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을 줄 몰랐다. 나는 얼굴을 뒤덮어 흐르는 땀의 짭짤함을 입술로 느끼며 겨우 자리에 앉았다. 잠시 숨을 돌리며 나의 캐리어를 바라보았다. 

“역시 배낭을 메었어야 했을까?”


여행을 떠나기 전 새로 구입한 25인치 초경량 캐리어는 이미 새 것이 아닌 모습이었다. 한 도시에 일주일 정도씩 묵을 예정이라 배낭보다는 캐리어가 나을 것 같아 캐리어를 선택했으나 우려대로 계단은 언제나 나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특히 조금 전, 육교를 수없이 오르내렸던 계단 위에서 보낸 15분은 정말이지 팔이 끊어져 나가는 듯한 힘듦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캐리어를 들고 오르내리며 캐리어에 몸이 얼마나 부딪혔던지 나의 팔과 다리, 어깨엔 보랏빛 피멍이 가득했다. 


‘Malmö’

30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잠시 캐리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나의 몸은 이미 국경을 넘었던 것이다. 말뫼역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락커에 집어 넣었다. 스톡홀름행 야간 기차는 10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동안 식사도 하고 말뫼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역에서 밖으로 나가자 황금빛 햇살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내린다. 친환경도시라는 말 때문인지 공기도 너무 상쾌한 것 같다. 

“스웨덴이구나.” 


천천히 역 앞 다리를 건너 말뫼 시내로 걸어가 동네를 둘러보았다. 말뫼는  오래전엔 조선으로 유명했고 유명한 조선소 코쿰스가 이 지역의 경제를 책임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중국 등의 아시아 국가들에게 밀리다 결국 코쿰스 조선소는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보유하고 있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을 처분할 비용조차 없었던 조선소는 현대중공업에 1달러에 그 크레인을 팔았다고 한다. 


스웨덴 방송국에서는 이를 ‘말뫼의 눈물’이라 불렀고 그렇게 말뫼의 조선사업의 영광은 쓸쓸히 1달러에 팔려 쓸쓸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말뫼 스웨덴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잠시 동네를 걸어보니 매우 조용한 소도시인 것 같았다. 거기다 이미 6시가 넘어서 인지 대부분의 숍들은 굳게 닫혀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세 말뫼가 좋아졌다. 황금빛 햇살에 닿아 깨진 유리조각처럼 빛나는 넓고 광활한 바다, 그 바다에서 불어오는 이국의 바람에서 나의 고향 부산이 느껴졌다. 나는 백야로 길어진 태양에 감사하고 노랗게 내려쬐는 햇살에 다시 한번 반가움을 표하며 천천히 동네 구석구석을 걸었다. 한바퀴를 돌고 나니 문득 말뫼에 가면 꼭 봐야 한다는 ‘터닝토르소’가 떠올랐다. 나는 인포메이션 맵 앞에 서 터닝토르소를 찾아보았으나 론리플래닛에서 말한 북유럽에서 가장 큰 빌딩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결국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기 고운 얼굴이 빛나는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간다. 하얗게 센 머리 위에 비치는 노란 햇빛이 그녀가 젊은 시절 저리 밝고 빛나는 금발이었을 거란  추측하게 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터닝토르소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네요.”

“음, 여기 오늘 왔어요?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여기서 매우 멀어요.”

“정말요? 아… 저 그럼 꼭 그 곳에 가지 않아도 돼요. 그냥 근처에서, 아니 좀 멀리 서라도 그 건물을 한번 구경하고 싶어요.” 

“그래요? 음… 그럼 날 따라올래요?”



영어가 조금 서툰 할머니는 스웨덴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나에게 설명을 해 주신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녀에게 질문을 하고 답하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여기 길을 건너서 쭉 올라가야 해요.” 

그녀는 커다란 횡단보도 반대 쪽 먼 곳을 가리킨다. 신호등이 바뀌고 그녀는 나의 팔을 한번 툭 치더니 횡단보도를 건넌다. 나는 그녀의 왼팔 바로 옆에 꼭 붙어 함께 길을 건넜다. 

“혹시 바삐 가시던 길은 아닌가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닌지.”

“아직 버스 시간이 남았어요. 괜찮아요. 그런데 코펜하겐에서 온 거예요? 학생? 거기서 공부하는 거예요?”

“코펜하겐에서 온 건 맞아요. 그런데 전 여행자예요.”

“여행? 혼자? 친구는?”

“혼자예요.”


그녀의 미간에 자리 잡은 우아한 주름 하나가 살짝 찌푸려지고그녀는 파란 눈동자가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본다. 몇 초였지만 나와 눈을 마주한 그녀의 눈동자가 어린아이의 눈동자처럼 맑고 투명해 내 속을 훤히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부모님은?” 

“한국이요. 부모님도 한국에 계세요. 전 독일에서 덴마크를 지나서 여기에 왔어요.”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다 다시 굳게 닫힌다. 그녀는 다시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곤 우린 말없이 길을 걸었다. 그리고 1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자한 웃음을 짓는다.

“참 용감한 소녀네.” 

“네?”

갑작스런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어색하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내 어깨를 토닥여준다. 


“나도 언젠가 그런 꿈을 꾸곤 했어요. 혼자 여행을 떠나는 멋진 꿈. 어머나, 신호가 바뀌었네. 어서 가요”

어느새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길을 이끌었다. 

“자, 저기 보이죠? 저 멀리 긴 건물이 터닝토르소예요. 앞으로 쭉 걸어가면 될 거예요. 난 이제 버스를 타러 가야 해서 더 이상 같이 가 줄 수가 없네요.”

할머니는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나의 손을 붙잡는다.

“안전하게 여행 잘 해요.”

“감사합니다.” 



나는 할머니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곤 나는 다시 앞으로 걸었다. 터닝토르소. 책의 설명에 비해 매우 소박한 느낌이 드는 건 내가 이미 수십, 수백 층의 고층빌딩에 익숙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허무함이 들어 나는 그 앞 다리 위에 서서 멍하니 하얗고 길쭉한그 빌딩을 바라본다. 앞에는 4명의 가족이 옹기종기 물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옆에 선 연인은 키스를 하고 있다. 저 멀리 다리 건너편에서 노부부가 자전거를 끌고 걸어온다. 


터닝토르소는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지만 그 곁에는 그 보다 더 황홀하고 놀라운 우리의 삶이, 우리 인생의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참 용감한 소녀네.’ 할머니의 말을 되뇌어본다. 나는 용감하고 더 씩씩하게 남은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잠시 들린 이 곳에서 얻어간다. 





스톡홀름의 소녀시대

정말 오랜만에, 아마 거의 7년 만일 것이다. 야간열차의 침대칸을 타고 이동하는 것 말이다. 기차의 번호를 확인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우 좁은 공간에 3층 침대가 양 쪽에 서 있다. 그리고 1층에는 이 칸의 첫 번째 탑승자인 작은 몸집의 동양인 소녀가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안녕?”

“안녕?”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각자의 국적과 이름을 밝혔다. 소녀의 이름은 메이코, 일본에서 왔다. 짧은 단발머리를 겨우 끌어 모아 묶은 위태로운 머리끈처럼 마냥 어리고 여려 보이는 소녀. 그녀 옆에는 엄청나게 큰 배낭이 보인다. 그녀 역시 배낭여행자 인 것이다. 크기만 봐선 그녀의 몸집과 똑같아 보인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계속 웃음을 짓는다. 유럽을 횡단 중이라는 그녀는 커다란 안경을 잠시 벗어 옆에 둔다.


“스톡홀름엔 얼마나 있어?”

“하루.”

“너무 짧아!”

“그러게 말야, 그런데 다른 기차표를 끊어놔서 바꾸지도 못해. 내가 왜 그랬을까. 넌 얼마나 있어?”

“난 일주일.”

잠시 후 중국인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며 북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소녀와 스톡홀름에서 학교를 다니는 스웨덴 소녀가 닸다. 6개의 침대가 있지만 방에는 4명이 자리를 잡았다.


“이 방엔 사람이 더 안탈껀가봐.” 

한 칸의 방, 6개의 좁은 침대, 그 속에 들어가 누운 우리들. 작고 좁지만 우리는 그 안에 각자의 부푼 기대를 품고, 한편으론 여행자의 노곤함의 무게를 느낀다. 각자의 꿈과 피로, 설렘과 두려움이 뒤엉켜 방을 가득 채운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모두 놀라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여기는 여자 칸이다. 그런데 문 밖에는 남자들이 이 방을 계속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문이 열린다. 문 밖에는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2명의 소년이 서 있다. 우리는 빤히 그들을 바라 보며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레이디들, 미안해요!”

언제 온 건지 역무원이 다가와 우리 방 안에 소리친다. 

“무슨 일이에요?”

역무원은 이 소년들이 기차 예약을 잘 못 해서 여자칸을예약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기차가 만석이라 그들이 바꾸거나 머물 곳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레이디들, 혹시 괜찮으면 이 소년들을 재워주겠어요?”


역무원은 정중히, 그리고 위트 있게 우리가 소년들을 받아주길 요청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내밀어 서로의 표정을 살핀다. 스웨덴 소녀와 중국 소녀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 소녀의 낯빛이 매우 흐려졌다. 


“음… 그럼 내가 1층으로 내려가서 네 옆에서 자면 어때? 낯선 남자 얼굴 보고 자는 것 보다 내가 좀 덜 무섭지 않아?”

나의 말에 소녀들은 웃음이 터졌다. 나는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문은 아직 열러 있고 소년들은 아직도 우리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어색하게 서있다. 나는 쿡쿡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을 불렀다. 


“Hey, Girls! Come on in!”

우리는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불을 껐다. 하나 나는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심하게 흔들리는 기차 때문인지, 좁은 침대 때문인지, 혹은 또다시 새로운 나라에서 일주일을 보낸다는 사실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것인지. 침대 아래로 바퀴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칙칙 폭폭 이 기차 소리를 듣다 보니 이 기차가 세상 끝까지도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기차를 타고 세상 끝까지 달려가는 상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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