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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11. 2015

아침 6시, 스톡홀름에 도착하다.

스톡홀름에서 일주일

아침 6시, 스톡홀름에 도착하다.

아침 6시,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STOCKHOLM이란 글씨를 보니 기분이 묘해진다. 진짜  또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스톡홀름 기차역은 무척이나 크고 모던한 느낌이다. 아침 6시인데 이미 역 안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선 스톡홀름카드를 사야 해서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으나 Open  9:00라고 적힌 팻말이 야속하다.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 그럼 우선 지하철 표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매표소에 있는 무인 발권기를 두들겨 본다. 아무리 두드려도 내가 예약한 호스텔이 있는 지하철 역의 이름이 검색되지 않는다. 한참을 다시 검색하고 검색해도 역 이름 대신 없는 역이라는 문구가 뜬다. 당황스러움에 나는 크게 한숨을 쉬고 눈을 비빈다. 조금 전 까지 졸려왔던 정신이 번쩍 뜨이는 것 같다. 왠지 등 뒤에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고 나는 발권기에서 살짝 물러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뭐야, 기차 표 끊는 거였어?”

바보 같게도 그 기계는 기차 표만을 끊을 수 있는 기계였다. 나는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지하철용 발권기를 찾아야 한다. 이번엔 지하철 발권기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린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아 저 멀리 24시간 오픈이라고 적힌 기차 회사 서비스 센터에 들어갔다.


“저기 죄송하지만 지하철 표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지하철은 아래 층으로 내려가야 해요. 여기는 기차역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지하철 역이에요.”

아아. 그렇다. 여기는 기차역이었지. 이런 단순한 실수를 하다니. 아니다, 이 역이 너무 커서 나는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을 뿐이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1층으로 내려가 매표소 창구를 발견했고 마침내 스톡홀름 카드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예약한 호스텔을 찾아가는 일은 예상 보다 너무 쉬웠고 딱 아침 7시에 호스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엔 호스텔 입구의 벨을 아무리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벨을 수십 번을 눌렀으나 벨은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문을 두드려도 보고 다시 한번 주소를 확인해 본다. 그러다 바로 옆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안내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리셉션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합니다. 예약을 했는데 일찍 도착한 분들은 아래 번호로 전화 주세요.’

이럴 수가…… 아침 9시는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거기다 이 시간에 내가 갈 수 있는 곳도 없다. 나는 아래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스웨덴어 안내방송. 이럴 수가.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우선 전화를 끊고 호스텔 계단에  주저앉아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길 5분, 나는 다시 전화를 전화를 걸어본다. 이번에도 연이어 흐르는 스웨덴어 안내방송. 다시 전화를 끊는다. 다시 건다. 이걸 한 5번 정도 반복했을까, 드디어 안내방송이 아닌 신호가 갔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저기, 제가 예약을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했어요. 혹시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실 수 있나요?”

“죄송하지만 전 호스텔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화만 받는 사람이에요. 담당자에게 물어보게 이름이랑 예약번호를 알려줄래요?”

그는 나의 이름과 예약번호를 조회하더니 조회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당황해서 분명 나는 예약번호를 가지고 있다고 바로 어제 예약을 했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그럼 어제 예약을 해서 예약번호가 여기로 안 넘어온 모양이라고 그럼 문을 열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전 이 시간에 뭘 해야 하죠?”

“오, 미안하지만 그냥 거기서 기다려요.

이럴 수가.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스톡홀름이 싫어지려고 한다. 야간 기차에서 깊은 잠을 자지 못했던 지라 눈은 계속 감기고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끝없이 요동쳤다. 나는 현관 계단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다리를 안고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저기, 저기요!”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눈을 뜨니 잠옷 차림의 갈색머리 소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는 호스텔 1층에 묵고 있었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 창가의 커튼을 살짝 걷고 날씨를  확인하려다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나는 여기 계단에서 30분 정도를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 마냥 몸을 말고 잠에 빠져 있었다. 덕분에 호스텔 안으로 들어 오고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소녀는 나에게 사탕 몇 개를 쥐어주며 “고생 많으셨네, 이거라도 좀 먹어요.” 라며 말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아, 스톡홀름에서 일주일을 잘 보낼 수 있을까? 나는 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호스텔에 비치된 스톡홀름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다 또다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마침내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짐을 맡긴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스톡홀름 어디 두고 보자!”



아침부터 나를 고생시킨 스톡홀름에 듣는 이 없는 분노의 소리를 지르며 나는 지하철을 탔다. 사실 버스를 타 보려고 동네를 20분 정도, 몇 바퀴나 돌아보았으나 도통 정류장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아침부터 더운 날씨에 땀 범벅이 되어서야 그냥 처음부터 지하철을 탈걸 이란 후회가 밀려왔다. 스톡홀름의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니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쳤던 수 많은 그래피티 아트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스톡홀름에선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지하철 역 벽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놓았다는 글을 일전에 본 것 같다. 힐끔힐끔 그림을 살펴보다 감리스탄 행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감리스탄’ 중세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스톡홀름의 올드타운. 역에 도착하자마자 감리스탄의 골목 골목을 걸어본다. 가이드 책에 나온 감리스탄 관광 순서 따위 잊은 지 오래였다. 아침부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던지라 반나절 정도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싶었다. 그냥 발길이 닿는 데로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건물인지도 모른 체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만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빠는 인간, 엄마는 마녀, 꼬마숙녀 키키는 13살이 된 만월의 밤, 자신이 살아야 하는 마을을  선택해야 하는 마녀의 운명에 따르기 위해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집을 떠나 여행을 떠난다. 하늘을 날던 도중 키키는 바닷가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발견한다. 높은 시계탑과 우아한 차림의 새침데기 여자들, 멋진 차림의 군인들과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는 곳. 키키는 빗자루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단번에 그 마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이 살아야 할 마을로 선택한다. 그 마을은 바로 ‘스톡홀름’이다.


키키가 날아 다녔던 스톡홀름의 맑은 하늘, 마치 장난감 마을처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감리스탄. 한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환희 웃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니 최근 영화 ‘렛 미인’과 ‘밀레니엄’의 서늘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떠올렸던 스웨덴의 이미지가 키키를 반겨주던 정 많고 흥겨운 빵집 주인 부부와 상냥한 손님들의 이미지로 순식간에 내 머리 속에 자리 잡았다. 한 걸음 걷고 골목 하나를 지날  때마다 시공간을 이동하듯 세월의 조각이 맞춰져 간다. 오래된 벽돌의 냄새와 타국의 흙냄새, 뜨거운 공기 사이로 비껴 들어오는 바닷바람의 서늘함과 냄새는 같은 북유럽인 코펜하겐과는 확연히 다르다. 코펜하겐이 빨강, 노랑, 주황색이라면 스톡홀름은 보라, 자주, 남색이다. 코펜하겐이 반짝였다면 여긴 은은하게 빛난다.


노벨박물관의 노벨 아이스크림

여기저기를 걷다 보니 노벨 박물관이 나와 박물관 안을 한바퀴 돌아보고 동양인 관광객들만 주문한다는 노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역시나 카페테리아 안의 나를 비롯한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은 모두 이 값비싼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 먹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동양인 관광객들만 이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관광가이드 혹은 여행책들 때문인가? 박물관에서 나와 또다시 여러 레스토랑과 카페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우렁차고 웅장한 관악기 연주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타악기와 사람들의 소리, 발구령 소리가 들려온다. 앞을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 건너편 골목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 근위병 교대식 시간이구나!”

분명 근위병 교대식을 볼 생각이 없었었는데도 나는 마치 피리 부는 소년을 따르는 생쥐처럼 저 멀리 울려오는 타악기의 소리에 발맞쳐 폴짝폴짝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골목골목 가득 찬 사람들 사이를 다람쥐처럼 빠져나가 순식간에 궁궐에 다다랐다.  

“하나도 안 보이네. 다 끝나 가는 건가?”

코펜하겐 때와 마찬가지로 궁궐 안은 이미 사람들로 포화상태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며 서로의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말의 갈기와 그 말을 타고 있는 근위병의 얼굴 정도 만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를 떠다니는 머리라니. 나는 까치발을 들어도 보고, 몇 번을 더 자리에서 힘껏 뛰어 올라도 보았으나 이내 구경하길 포기하고 궁궐을 떠났다.

“나중에 궁궐 안이나 구경 와야겠다.”


나는 다시 감리스탄을 헤집듯 돌아다닌다.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지도도 보지 않고 무작정 동네를 빙빙 돌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결국 길에서 산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조금의 허무함을 안고 감리스탄을 유유히 빠져 나간다. 시청사와 탑을 가 보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다. 사실 오전에 숙소에 론리플래닛도 지도도 모두 두고 나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동네를 아무 정보 없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저 왼쪽에 보이는 게 시청인가요?”

감리스탄을 살짝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다 만난 사람에게 나는 길을 물었고 그녀는 걸어가면 한 2~30분 정도 걸릴 거라고 답한다. 2~30분 쯤이야. 나는 귀에 이어폰을 꼽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찻길주변을 걸어가며 저 멀리 보이는 뾰족한 탑을 향해 정처 없이 걸어갔다.



귀에는 비틀즈, 벨엔 세바스찬의 나른 나른한 음악이 흘렀고 나는 곡을 바꿔 스웨덴 출신 세계적인 가수 ‘아바’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아바의 신나는 반주가 흘러나오자 어깨가 절로 들썩거린다. 나는 홀로 길에서 춤을 추듯 어깨를 흔들며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마침내 다다른 시청과 탑. 하지만 하얀 종이 적혀있는 문구.

‘오늘 결혼식 때문에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


아아… 30분 걸어왔는데. 시청 안 역시 내부 일정 때문에 오늘은 열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약간의 분노와 울적함이 밀려와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환히 웃고 있는 아름다운 신부와 신랑,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의 이니셜이 적힌 풍선을 들고 서 있다. S와 E. 아름다운 신랑 신부의 이름은 S와 E이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글자가 겹쳐졌다 떨어졌다, 멀리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를 반복한다. 마치 그들 앞에 펼쳐질 황홀한 결혼생활처럼 두둥실 하늘 위에 떠올라 은빛 고운 빛을 내며 예쁘게 뒤엉퀴는 풍선들. 그 모습을 보니 방금 전까지 차오르던 불만 불평들이 조금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다.



나는 시청 앞 바다가 보이는 정원벤치에 앉아 저 멀리 하늘 속에서 반짝이는 은색의 헬륨 풍선의 몸짓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좋다. 꼭 어딘가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그냥 이 곳에 왔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축복이고 행운인가. 내가 꿈꾸던 나라의 공기를 마시고 내가 그리던 도시의 땅을 밟고 그 곳의 사람들이 실제로 내 곁을 스쳐가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의 의미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단 한 번도 앉아 본 적 없는 공원의 벤치, 단 한 번도 타 본 적 없는 버스, 몸을 하늘 위에 올려놓고 밥을 먹고, 구름 속을 걸어보고,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을 부딪히고, 아무 곳에 나가 방을 던져놓고  주저앉아 웃어보고, 나는 이방인이란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무언가를 보고 들어가는 게 크게 중요할까? 그저 여기 있다는 것 만으로도 벅차오르는 설렘과 떨림을 천천히 느끼자. 그래, 여행한지 4주가 되면서 나는 벌써 그 느림의 미학을 살짝 잊은 것 같다.


나는 벤치에 앉아 눈을 감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뺨을 대어 본다. 이어폰을 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소리, 옷이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크게 숨을 들이쉬어본다.

“와, 스웨덴이다.”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내가 그토록 오고 싶었던 스웨덴의 낯선 얼굴이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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