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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22. 2015

스톡홀름에서 마주한 마법 같은 공간

LGBT축제 스톡홀름 퍼레이드와 눈시울이 붉어지는 스톡홀름의 풍경

스톡홀름 프라이드

한동안 그 벤치에 앉아 오래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그리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온 길을 걸어간다. 아까 보다 많이 익숙해진 길 위에 서니 자신감이 붙어 더 빨리 출발점에 도착했다. 하나 오전과 달리 너무나도 시끄럽고 부산하다.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길을 걷고 있다. 저 쪽 다리에서는 시끄러운 댄스음악소리가 여기까지 닿아 내 귀를 멍멍하게 한다. 나는 일단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기사에게 카드를 내민다.


“미안하지만 오늘 이 버스는 운행을 안 해요.”

“네? 그럼 어떤 버스를 타야 하죠? 다른 정류장, 아니 다른 번호를 타야 하나요?”

“아니, 오늘 버스 노선 대부분이 운행을 하지 않아요.”

“왜죠? 파업인가요?”

“오늘 스톡홀름 프라이드라고 퍼레이드가 있거든. 그래서 저쪽 다리로 넘어가는 길이 모두 통제됐어요. 여기 이 길을 지나가는 버스도 오늘은 모두 다 운행하지 않아요.”

“스톡홀름 프라이드요?”

“저기 무지개 깃발 보이죠?”


아, 그랬다. 스톡홀름 프라이드. 


이 세상에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에 가장 관대한 나라 스웨덴은 1994년에 동성애를 합법화했고 1998년부터 이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스웨덴의 동성애자들은 법적으로 성을 바꿀 수 있고, 아이를 입양할 수 있으며 군복무도 가능하다. 동성애자를 괄시하고 모욕을 줄 경우 처벌도 가능하다. 


말로만 듣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톡홀름 프라이드가 지금 내 눈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섹시한 모습으로 스톡홀름을 뒤흔들고 있었다. 나중에 신문을 보니 이날 퍼레이드에 6만 명의 동성애자가 참석했고 60만 명의 군중들이 이 퍼레이드를 관람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다리 위를 수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퍼레이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환호를 한다. 


‘드디어 두려움을 없이 이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됐어요. 오늘은 제 인생의 첫 번째 퍼레이드입니다.’ 란 문구를 든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떨림이 아직 남아있는 듯한 여린 초록빛 눈동자 속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득 담고 있다. 그의 입은 하얀 이를 보이며 빛나게 웃고 있다. 나는 손을 들어 박수를 친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향해 환호하며 멋지다고 소리친다. 그의 입술이 좀 더 크게 벌어진다. 마침내 그의 눈에서 두려움이 사라져간다. 쿵쾅쿵쾅,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댄스음악 때문인지, 퍼레이드에 참여한 사람들의 떨림 때문인지 내 몸이 뒤흔들리는 것만 같다. 



스톡홀름 프라이드는 말 그대로 축제였다. 트럭마다 콘셉트를 달리하여 락, 힙합, 댄스음악에 맞춰 복장을 갖추고 춤을 추는 LGBT들과 노멀 하게 스톡홀름 프라이드를 응원하는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는 그룹, 화려한 코스츔을 입고 춤추는 그룹, 스트립쇼 수준의 섹시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그룹 등 엄청난 규모의 행사였다. 사실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아, 이게 문화충격일까? 나는 호모 포피아는 아니지만 딱히 LGBT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뭐 그런 사람들도 있지 정도랄까. 부정보다는 긍정에 > 표를 줄 순 있지만 딱히 그들의 인권 이라던지 삶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국가적인 행사로 이런 퍼레이드를 펼치고 즐기는 것을 보니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었다. 


거기다 각 편의점마다 그들의 퍼레이드를 응원한다는 포스터와 물품을 팔고 모든 버스와 택시들은 무지개 깃발을 달고 있다. 꼬마도 할머니도 무지개 색 깃발을 흔들며 환호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너그럽다던지 관용적인 게 절대 아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그들을 평등하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베푼다던지 관대하다 같은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좀 더 상위에 놓는 듯하다. 이 나라는 동성애자들에게 너그럽다라던지 관대하다라고 하는 말은 이 곳에서 틀린 것이다. 스웨덴은 그 어느 나라보다 더 동성애자를 동일하고 평등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의 퍼레이드는 응원이 아닌 다 함께 즐김이었다. 나는 소리 높여환호성을 질렀다. 힘껏 박수를 쳤다. 나 역시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이 퍼레이드를 즐기기 위해 더욱 크게 몸을 흔들었다.     


호스텔로 돌아와 처음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뜯었다. 호스텔 부엌에서 홀로 라면을 먹으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야간 기차를 타서인지 몸이 무겁고 목이 뻐근하다. 

“흠, 그냥 방에 가서 일찍 잘까?” 

하지만 이대로 숙소에 있자니 스톡홀름에서의 첫 날을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라면 국물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고 설거지를 하는 중 갑자기 스톡홀름에 유명한 사진갤러리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스톡홀름 관련 자료를 찾다 우연히 들어간 스톡홀름의 한 사진갤러리 홈페이지에는 갤러리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스톡홀름의 뷰, 그리고 저녁에도 개장을 한다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나는 급히 방으로 달려가 가방에 넣어두었던 스톡홀름 카드 가이드를 꺼내 펼쳤다.    


“Fotografiska… 아, 여기 있다.” 

스톡홀름 카드로 무료 입장이 가능하며 밤 11시까지 운영한다고 적혀있다. 나는 급히 카디건을 들고 호스텔 문밖으로 달려나가 곧장 지하철에 탑승했다. 감리스탄 바로 아래 Slussen역에 내려 지도를 폈다. 

“Fotografiska가 이 쪽 아래로 쭉 내려가면 되는 건가… 어? 여기에 카탈리나 히센이 있네?”


카틸리나 히센에서 바라본 스톡홀름


카탈리나의 엘리베이터라고 불리 우는 전망대. 그래, 스톡홀름의 첫날이니 스톡홀름 전경을 한번 내려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오늘 탑도 입장하지 못했으니 여기라도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높은 층에 내렸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니 웬 야외 레스토랑이 있다. 


“오, 카탈리나 히센에 온 건가요? 지금 카탈리나 히센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았어요. 하지만 레스토랑 안 쪽 난간에서 구경하는 건 무료이니 들어와요.” 

레스토랑 웨이터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재빠르게 카탈리나히센의 상황을  설명해 준다. 아마 수 많은 관광객들이 나처럼 공사 중인걸 모르고 이 곳에 도착했고 그는 수십 번이고 이 상황을  설명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 내고 레스토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꽤 고급 레스토랑이었던지 화려하게 차려 입은 수많은 남녀들이 칵테일을 들고 웃음을 터트린다. 청바지에 운동화, 티셔츠 차림인 나는 괜히 쭈뼛쭈뼛 난간으로 걸어갔다. 난간 쪽은 테이블과 많이 떨어져 있어 꽤나 조용했다. 난간에 홀로 서서 도시를 살핀다. 



“와, 어쩜 이리 아름다울까?”

야간 기차로 인한 피로도, 아침에 숙소 문제로 길에서 2시간을  주저앉아 전화를 돌린 고생이 모두 사라진다. “스톡홀름에 오길 잘 했다.” 홀로 기쁨을 문장으로 읊는다. 눈 아래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타나는 수많은 인파들이 보인다. 나는 오가는 인파 위에 홀로 서서 오랜 시간 스톡홀름의 하늘을 기웃거렸다. 그때였다. 한 모자가 다가와 일회용 카메라를 건 낸다.


“사진 쫌 찍어주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정말이지 참으로 오랜만에 만져보는 일회용 카메라다. 어느 어린 날, 유원지에서 이 것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잠시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다 모자에게 카메라를 건넨다.

“정말 아름답지?” 

어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건네주길 기다렸던 걸까? 나는 이 곳에서 외로웠던 것일까? 부끄럽게도 나는 괜히 감상에 빠져 앤 셜리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삶은 참 놀랍고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렇게 순간순간 예고치 않게 마법 같은 공간에 서 있네요.”

아들이 웃음을 짓고 어머니는 온화한 표정으로 나의 말에 대답을 건 냈다. 


“즐기렴, 우리의 삶은 짧으니까. 여행자니?”

“네, 혼자 여행  중이에요.”

“좋은  여행되렴.”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등을 진다. 그녀의 아들은 나에게 손을 흔들곤 곧 그녀를 따라 눈 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는 다시 홀로 도시 아래를, 도시 위의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광고용 애드벌룬 2개가 두둥실 떠올라 하늘 높이 날아간다. 잠시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 난간이 애드벌룬의 바구니라는 상상을 한다.  온몸이 두둥실 떠오른다. 등 뒤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소리가 어느새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눈을 떴다. 나는 하늘 위에서 스톡홀름을 바라본다. 하늘을 날며 이 도시를 바라보던 마녀 키키처럼, 나도 이 도시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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