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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Oct 31. 201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아침 일찍 일어나 마트에 들려 아침을 사고 가영언니와 나는 코펜하겐에서 3~40km 떨어진 흄레백으로 갔다. 흄레벡에 내리니 조용하고 한적한 교외 풍경이 보인다.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가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집 안에서 맛있는 케이크라도 나눠 드시는지 동네 주민조차 보이지 않는다.


햇살이 병풍처럼 이 마을 곳곳을 둘러 싸 도로에는 그늘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알록달록하지만 무지개 같이 화려하지 않고 풀숲에 피어난 가지각색의 풀꽃처럼 은은하게 어울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는 전원주택들. 길가에 진열된 무인 마멀레이드 상점. 달콤한 파운드 케이크의 향기.

“진짜 이 길이 루이지애나로 가는 길 맞을까?”

“어, 언니 저기 표지판이 있어요.”


<Louisiana>

표지판을 따라 종종 걸음을 걷는다. 처음으로 소풍을 나온 유치원생처럼 한껏 신이나 양팔을 앞뒤로 크게 휘젓는다. 루이지애나. 덴마크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이자 세상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미술관중 하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 불리는 그 곳. 벅찬 가슴이 온몸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나는 좀 더 발 끝에 힘을 주어 미술관 앞 까지 걸어갔다.

“여기가 진짜 미술관 맞지?”

사진 속에서 보던 미술관의 풍경만이 머리 속에 입력된 우리 앞에 나타난 루이지애나는 낯설기 그지 없었다. 시골 집 앞마당 같은 작은 문과 낮은 건물, 전원적인 느낌이 강한 이 곳. 미술관 보다는 옛 귀족이었으나 이제는 늙고 명예도 돈도 많이 잃어 매 순간 그 순간을 추억하는 어느 노인의 집 같다. 미술관 문 앞에는 이미수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이 개장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10분. 우리는 미술관 앞마당을 살피며 이 평범한 시골 저택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믿고 기대를 놓치지 않았다.

“입장한다.”


우리는 조금의 불안함과 설렘이 뒤엉킨 미묘한 감정을 품은 체 그 시골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의 작은 기대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초라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부엌데기 아가씨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부인이 되어 눈부시게 하얗고 한 땀 한 땀 빛나는 드레스와 화려하기보다 은은히 고급스레 빛나는 주얼리를 착용하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크림색 장갑을 낀 체 춤을 아름다운 춤을 춘다.

루이지애나는 우아하고 고상한 귀부인의 수준 높은 취향으로 무장한 응접실이자 서재 같다.


언니는 오늘 일찍 비행기를 타고 뮌헨으로 떠나야 했고, 나는 매우 천천히 미술관을 돌아보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Emil nolde의 작품을 잠시 본 후 점심을 먹고 돌아와 미술관을 따로 관람하기로 했다. 미술관에는 Emil nolde와 구스통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져 있었다. 두 작가 다 약간은 생소하다.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며 안내 브로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미술관을 가볍게 한바퀴 돌아 건물을 구경한 후 맛있고 신선하기로 유명한 루이지애나의 카페테리아로 걸어갔다.

가영언니가 찍어준 나와 왠 멋진 할아버지



미술관을 돌아 카페테리아로 가는 길은 마치 또 다른 세계로 떠나는 마법의 통로 같았다. 가는 길은 숲 속 처럼짙은 녹음이 뿜어내는 시원 씁쓸한 풀향으로 가득했고 잠시 뒤를 돌아보면 미술관은 온대 간데없고 나무들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미술관을 지키기 위해 마법에라도 걸린 듯 다시 찾아 가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무들이 몸을 뭉쳐 미술관을 숨겨 버리기라도 하는 걸까?



작은 시내와 다리를 건너 푸른 공기를  몸속에 담다 보니 어느 새 눈 앞에는 푸른 잔디의 언덕과 그 보다 더 짙고 푸른 바다가 있다. 눈 앞에는 그 어떤 예술작품 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풍경이 완벽한 액자처럼 자리 잡아 눈 앞에 펼쳐졌다. 우린 지금 마법에 빠져 작품 속에 들어온 것일까?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에 눈을 비비다 저 멀리 헨리 무어와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과 머리칼을 흔드는 소금 섞인 바닷바람에 이 곳이 미술관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진짜 너무 아름답다. 나, 이 풍경이 담긴 사진을 보는 순간 루이지애나를, 덴마크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었어.”

“언니, 저도요. 덴마크에 온 이유가 여기에요. 어쩜, 여기 이 장소가 그냥 작품 같아요. 하늘의 구름도, 바닥의 풀도, 옆에 늘어 선 나무도.”



우리는 식사를 해야 하는 것도 잊은 채 잔디밭에  주저앉아 바다 위로 지나가는 하얀 돛 단 배와 잔디 밭 위에 들꽃처럼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두리뭉실한 구름과 구름처럼 둥근 바위들, 이 곳을 액자처럼 둘러싼 나무들이 이 공간을 더욱 초현실적으로 만든다. 옆에 기다란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바람에 흔들려 이리로 저리로 몸을 튼다. 오즈의 허수아비처럼 생각하는 머리를 가진 듯 군중 속에 고독히 깊은 생각에 잠겨 바람에 몸을 흔든다.


루이지애나의 카페테리아 음식들


우리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 곳에 너무 오래 머문 바람에 식사를  끝내자마자 나와 언니는 이별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꼭 다시 만나기로 손가락 걸어 약속했고, 이 아름다운 덴마크에 언젠가 다시 올 수 있길, 남은 여행은 더욱 빛나길 기도했다.



언니가 떠난 후 나는 홀로 Emil nolde와 구스통의 작품을 둘러보았다. 인상주의 대가인 Emil nolde의 작품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지만 그 아래 구스통의 작품은 나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구스통의 후기 그림들은 모던아트이면서도 우리 시대의 ‘시’ 같았다. 작품의 색과 터치 하나마다 함축된 의미가 담겨있었다. 마치 조용하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루이지애나미술관 같았다. 구스통의 작품을 둘러 보고 나오다 옆을 바라보니 우리나라의 7첩 병풍처럼 나눠진 유리창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이 보인다. 마치 미디어 아트처럼, 이 창문이 화면이 되어 움직이는 자연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나는 이 마법 같은 공간에서 약 5시간을 머물렀다. 미술관을 떠나려니 발길이 차마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미술관 입구를 다시 보니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설립한 크누드젠센의 초상화가 보였다. 예술이란 행복을 불행과 거래하는 것이라던 구스통의 말은 실로 옳았던 것일까?


설립자 크누드젠센은 루이스란 이름의 여인을 사랑했으나 그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 또 다른 루이스를 사랑했고, 새로운 루이스를 사랑했다고 한다. 루이스란 이름의 3명의 여인을 사랑했다고 하는 그는 이 미술관의 이름을 루이지애나라고 지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이런 아름다운 미술관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눈인사를 건넸다.


뒤를 돌아 내부를 다시 바라보았다. 창문 밖 정원의 풍경이 내부로 쏟아져 나는 아직 미술관이 아니라 정원에서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 듯 오늘 하루 어느 때 보다 맑은 정신으로 미술관을 빠져나갔다.


나는 또다시 뒤를 돌아본다. 숲 속의 작은 저택의 형태를 한 미술관의 입구가 보인다. 나는 5시간을 넘게 이곳에 있었지만 미술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다. 머리 속에는, 그리고 아직 눈 앞에는 아련한 잔상처럼 빛나는 햇살과 푹신한 구름, 높디높은 구름, 푸른 잔디, 그리고 그 사이 띄엄띄엄 걸린 작품들만이 떠 오른다.

피라미드 형태의 루브르나 굴뚝이 떠오르는 테이트 모던과는 달리 루이지애나는 세계적인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 또는 이미지가 없다. 아마 누군가는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있는 잔디와 바다를, 누군가는 낮은 나무 지붕을, 하얗고 둥근 계단을 떠올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르게 기억하는 미술관, 하지만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루이지애나.


나 역시 하나의 장소가 아닌, 서정적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이곳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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