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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Oct 26. 2015

반짝이는 티볼리의 불빛

매혹적인 코펜하겐의 밤


나와 가영언니, 호스텔에서 만난 귀여운 단발머리 선생님 가영언니 :) 

뉘 하운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뉘 하운을 떠나 다시 길을 걷다 보니 내 안에 있던 열기를 앉아있던 벤치에 벗어 두고 온 듯하다. 여전히 태양은 뜨거웠으나 나의 몸은 아까보다 많이 식어 온몸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로젠보르 성을 한바퀴 돌고 공원에 잠시  주저앉아 풀냄새를 맡으며 사람 구경을 하고. 원형탑에 올라가 코펜하겐 전경을 둘러보고. 새삼 코펜하겐 시내가 그리 크지 않는구나 싶다. 다행이다. 모두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시계를 보니 6시가 넘었다.  어제저녁 가영언니와 저녁 약속을 한 시간이다. 나는 숙소에 돌아가 언니를 기다렸다. 잔뜩 붉게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가영언니의 표정이 매우 밝다. 분명 언니도 코펜하겐이 마음에 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기쁘 고행복 하다. 나는 기쁜 마음을 담아 언니의 손을 잡는다.

“언니! 뭐 맛있는 거 먹을까요? 그래도 제대로 된 첫끼인데 맛있는 거 먹어요. 우리!”


스트뢰에 거리


코펜하겐의 쇼핑가이자 메인스트리트인 스트뢰에 거리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우리는 여기 힐끔, 저기 힐끔 가게들을 염탐하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생물시간 관찰일기라도 쓰듯 매우 진지하게 사람들의 접시에 놓인 음식을 바라보았다. 

“연어 먹을까요, 언니? 덴마크는 연어 오픈 샌드위치가 유명하데요.”

“그래? 그럼 그거 먹을까? 난 안 그래도 내일 떠나니까 여기 음식 한번 먹고 싶어.”

“그런데 어딜 가면 그걸 팔까요? 그냥 다 팔려나?” 


우리는 여기저기 레스토랑에 놓인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글자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가 않는다. 이럴 때면 내가 천리안을 가졌으면 싶다. 우리는 얼핏 봐도 연어로 보이는 음식을 먹고 있는 손님들이 있는 사람 많은 레스토랑이 노천파티오 아래 앉았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이게 웬일일까, 영어가 없고 모두 데니쉬이다. 우리는 당황한 체 메뉴판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다가 살몽이란 발음과 흡사한 단어를 발견하곤 정신없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테이블 위에는 오픈이 아닌, 꾹꾹 빵 사이에 눌린 일반 샌드위치가 놓여있다.

“이거… 맞아?”

“아…닌거 같은데요? 예전에 사진으로 봤던 거랑 달라요. 그…래도 연어는 들어있어요.”


연어 샌드위치이긴 한데.....?!


우리는 잠시 멍하니 접시를 바라보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곤 위에 덮인 빵을 덜어내곤 이것도 오픈 샌드위치라며 깔깔 웃으며 유쾌하게 식사를 끝냈다. 그리곤 뉘 하운으로 돌아가 오늘의 마지막 카날투어 보트를 탑승했다. 

“언니 따라 이거 타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바다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온 동네가 노을을 입어 버터를 발라 구운  것처럼  노릇노릇해지더니 곧 시럽을 부은 듯 검지만 무척이나 달콤해졌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코펜하겐의 전경과 빛나는 하늘의 별. 바다는 별빛을 받아 빛이 나고 그 사이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는 외계의 생명체처럼 밤 하늘 위에 항해한다. 저 멀리 인어공주상이 보였다. 어둠을 걸친 가련한 그녀의 뒷 모습은 하늘의 별자리 같다. 

‘인어공주 자리’ 

그녀는 물거품이 아니라 별이 되어 이 곳에 박혔다.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에 박수 치며 웃기도 하고 조금 쌀쌀한 밤 공기에 손을 불어가며 매혹적인 코펜하겐의 밤바다를 즐겼다. 그토록 눈부시던 낮의 코펜하겐은 서정적이고 감상적으로 변모했다. 항구를 오가는 배처럼, 그러한 아련한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카날 투어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블랙다이아몬드(도서관)


카날투어를 끝내고 배에서 내린다. 사람들이 빠져나가 홀로 떠있는 보트가 빈 집처럼 쓸쓸하다. 우리는 우리의 환희와 기쁨을 그 배 위에 조금 남겨 두고 길을 떠났다. 


내일 이 배를 타는 사람은 더 황홀한 꿈을 꿀 수 있으리. 

우리는 투어의 여운을  온몸으로 품은 채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인 티볼리 공원으로 걸어갔다. 여름이지만 밤은 늦가을처럼 차갑다. 우리는 바람에 우리의 여운을 놓치지 않게 온 몸을 꼭 껴안고 티볼리로 빠르게 걸어갔다. 유모차를 밀던 아기 아버지와이 곳에 사시는 일본인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겨우 티볼리 공원에 도착했으나 공원 관리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공원이 문 닫을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즉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안돼요. 제발, 어떻게 잠시만 둘러볼게요. 놀이기구를 타려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티 볼 리 공원의 불빛을 보고 싶어요. 저희는 정말 먼 곳에서 덴마크에 왔어요. 이 공원을 보길 정말 오랜 시간 꿈꿨어요. 잠시만 둘러보면 안될까요? 제발…”

우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관리자를 바라본다. 마침 우리 말고 다른 외국인 가족이  어린아이들을 앞세워 우리와 함께 간절한 눈빛을 쏘아 됐다. 

“아이고, 어서 들어가요. 진짜 몇 분 안 남았어요!”

“표는…?”

“표안 사도 돼 되니까 어서 들어가요! 들어가서 빨리 구경해요!”

상냥한 관리자는 우리가 빛나는 꿈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문이 열리자 전속력으로 달려갈 준비자세를 취했다. 허나, 몇 초 후 우리는  온몸에 힘을 풀고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티볼리 공원이다!!!!!

안데르센을 비롯 많은 소설가와 시인이 사랑한 공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롤러코스터가 있고 코펜하겐 시민들의 최고의 휴식 공간인 티볼리 공원. 저 멀리 TIVOLI라고 적힌 황금빛 글씨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치 알라딘의 양탄자를 탄 듯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껏 부푸러 오른 마음에 이끌려 둥 둥 공원 안을 떠다녔다. 번뜩이는 조명들과 반짝이는 건물들, 여기저기 웃는 소리와 놀이기구의 행복한 비명소리가 뒤엉켜 공원만의 특별한 소리를 만들었다. 고소한 팝콘 냄새가이 곳이 놀이 공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잔디밭에 설치된 선베드에 몸을 누인다. 긴장이 살짝 풀리고 피곤이 밀려온다. 꿈을 꾸는 듯 눈 앞의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일렁인다. 마치 야외 영화관에 온 듯 빠르게 돌아가는 놀이기구들과 불빛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을 본다. 아아. 세삼스래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체 아무 계획 없이 이 곳에 뚝 떨어진 게 너무나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진짜 행복하네요.”

“그치, 너무 아름답고 너무 행복해. 아, 아쉽다. 내일 덴마크를 떠나야 한다니.” 

“언니 며칠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응, 그래도 내일 루이지애나는 갔다 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같이 가는 거지?”

“당연하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을 어떻게 안 갈 수가 있겠어요? 벌써부터 너무나도 기대가 돼요.”


우리는 내일에 대한 기대와 오늘의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시간이 가는 것은 아쉽고 새로운 날이 다가오는 것은 기쁘고 설렌다. 하지만 한국에서 하루하루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나는 그 당연한 감정조차 잊고 있었다. 오늘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내일이 오는 것이 싫은 날이 많았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운 적도 있었다. 아쉬움과 설렘이란 그런 행복한 기분을 나는 정말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앞으로 무엇이 하고 싶은지. 우리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 썰물이 빠져나가 새로운 백사장이 생기고 밀물이 밀려와 새로운 바다를 만들 듯, 썰물 같은 아쉬움과 밀물 같은 설렘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반짝이는 티볼리의 불빛 속에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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