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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27. 2015

세상의 모든 책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스톡홀름, 현대미술관과 도서관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붓과 펜의 흔적들


붓과 펜의 흔적들.


고틀랜드에서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니 호스텔 대부분이 풀부킹이라 결국 중앙역 옆 비지니스 호텔로 급히 예약을 하고 숙소를 옮겼는데 덕분에 교통은 한결 수월해 졌다. 특히 오늘은 셉스홀멘 섬을 갈 예정이었기에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게 어찌나 편리한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늦잠을 자고 아침도 점심도아닌 애매한 시간에 버스를 타고 작은 다리를 건너 셉스홀멘 섬에 도착했다. 셉스홀멘 섬에는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이 있고, 그 미술관이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였다.

“여기도 알렉산더 칼더네?”


한동안 많은 미술관 앞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이란 대형 거미 작품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선 매번 미술관 앞에서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을 만난다. 하긴, 마망이 있던 리움도 작년에 아니쉬 카푸어전을 한다고 마망을 철거했고, 또 알렉산더 칼더의 회고전을 진행했으니 이젠 주요 미술관=루이스 부르주아가 아니라 알렉산더 칼더가 된 것같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들 옆에는 니키드 생팔의 괴기스럽고 화려한 작품들이 풀밭에 놓여있다. 두 작품들이 함께 있으니 마치 팀버튼의 영화 ‘비틀쥬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미술관 앞 작은 뜰을 돌아본 후 미술관에 안으로 들어갔다.


심플한 외관과는 달리 미술관 내부는 천장부터 계단까지‘나는 미술관이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 설치된 설치 미술품들과 미술책자들, 계단 하나하나 세심하게 붙어있는 장식들.


미술관 1층에는 1930년데 스웨덴이 가장 사랑했던 작가 닐스 다르델(Nils Dardel)의회고전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안쪽에는 오늘날의 현대 미술을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한지하에는 마르쉘뒤상과 초현실주의에 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우선 1층부터 차근차근 미술관을 돌아 보았다.  


닐스 다르델의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확실히 언제라고 규정짓기힘든, 아마 닐스 다르델이 활동했던 1920~30년대 음악이아닐까 짐작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마치 호러무비의 배경이 되었을 법한 불안정한 음악. 음악의 흐름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닐스 다니엘의 그림들 속에 이미 내가 서 있다.


사실 닐스 다르델이란 이름이 조금 낯설어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는데 이름만큼이나 작품도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얼핏 보곤 달리 풍의 나르시즘이 바탕으로 된 초현실주의 작품이려니 했는데 전시를 다 보고 나니 왜 그가 스웨덴의 대표 작가인지 알 것 같다. 스웨덴 최고의 댄디, 모던보이 닐스 다르델은 북유럽 작가 특유의 음울함과 괴기스러움을 세련되고 멋스럽게 표현한다. 그는 정신병, 죽음, 이상하고괴상한 미친 사람들, 그리고 그 보다 더 흉악한 인간의 실체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겨울이 길고 밤이 긴 북유럽의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를 극대화 시킨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스웨덴의 여름’이란 작품에서 그 스타일은 더욱 극대화 되는 듯 하다. 너무 짧아 더욱 소중한 북유럽의 여름에 대한 향수와 함께 깊고 긴 겨울 밤에 발현된 광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북유럽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우울과 음울함, 공포를 그림자처럼 끼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재능에 환희 하면서도 언젠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지 모른다는 허무감에 슬퍼했던 닐스다르델은 밤이 길고 겨울이 긴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이토록 아름답고도 우울하고 괴기스럽게 표현했다.


닐스 다르델이 북유럽 작가들의 우울함을 표현했다면 그옆의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관한 전시는 재기 발랄함과 신선함에 계속해서 감탄했다. 현대미술의 거장부터 주목할만한 신진 작가들까지 펄떡이는 활어처럼 신선한 아이디어와 표현방식은 닐스 다르델의 겨울을 끝내고 다시 북유럽의 여름날을 선사해 주는 듯 했다. 또한 한 쪽에선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상영하여 ‘현대’미술관이란 의미의 정점을 찍는 듯 했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

지하에는 마르셀뒤상과 여러 작가들의 초현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그림이나 설치 미술뿐만 아니라 시대적 반항을 일으킨 초현실주의 단편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었다. 특히나 눈에 뛰는 건 당연 살바도르 달리와 루이스 브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 좁은 장소에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에 집중하고있었다. 영화들까지 감상하고 보니 오늘 하루가 다 간 것 같았다. 시계는미술관 클로징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체 미술관을 나와 버스를 탔다.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호텔이 아닌 옛 호스텔이 있는오덴플란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오덴플란 역에 내려 피아노 건반 같은 계단을 밟고 올라 밖으로나와 다시 앞으로 걸었다. 걷다 보니 눈 앞에는 신전 같기도 하고 굽기 전 도자기 같기도 한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도서관 중 하나인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 스웨덴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의작품인 이 도서관은 책의 정령에게 바쳐진 신전이란 명성답게 깔끔하고 심플한 외관과 신전과 같은 원통의 형태가 눈에 뛴다. 나는 스톡홀름 시립 도서관이란 글자가 적힌 외벽을 바라보며 계단을 올랐다. 그리곤도서관에 들어간다. 원통의 벽에 둘러진 수많은 책들과 천장 창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자연광과 내부 조명이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숨이 턱하고 막혀올 만큼 순식간에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쏟아지는 빛들이 책 한 권, 한 권에 반사된다. 세상 모든 책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걸 지금이 순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세계 유명 도서관 학자들은 아름다운 도서관의 존재는 국민들이 더 많은책을 읽는데 큰 기여를 한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이런 도서관이우리 동네 있다면 왜 나의 오후와 주말을 이 곳에서 보내고 싶지 않겠는가란 생각이 든다. 나는 동그랗게 벽에 둘러진 책들을 둘러본다. 언어별로 진열된 책들은 깨끗하고 단정하게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원형의 구조 덕분에 계속 책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나는 처음 시작했던 그 지점에 다시 돌아온다. 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고 있다. 바닥에 주저 앉은사람, 책상에 자리를 잡은 사람. 나는 또 한 명의 바닥에주저 앉은 사람이 되어 책 한 권을 뒤적인다. 스웨디쉬로 적혀 읽을 순 없지만 독특한 삽화가 눈을 끄는책이다. 나는 삽화 위로 쏟아지는 빛을 보며 내가 이 자리에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붓과 펜의 흔적들로 오늘 나의 하루가 채워졌다. 나는눈을 꼭 감고 나 역시 누군가의 하루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꿈꾼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귀여운 동화책?! 신데렐라를 비튼 신 신데랄라 (왕자님은 뮤지션 프린스! ㅋㅋ)


호텔로 돌아가는 길, 보랏빛으로 멋스럽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본다. 오늘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내일 하루는 어떠할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다 새삼 내일 무얼 하든 지금의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 웃음을 터트린다.

우리는 종종 계획할 수 없는 미래를 계획하려 노력한다. 내일은 더 재미있어야지, 행복해야지와 같은 보이지 않고 추상적인 무형의 감정을 계획한다. 한편으론 우리는 그러한 계획과 이미지에 지배를 받곤 그 계획과 일치하지 못할때 큰 실망감과 허무함을 얻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어떠하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지금의 감정에 충실해야지, 특히여행지에선 말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제이미 올리버도 종종 찾는다는 Ostermalm saluhall에 들려서 간식을 먹었다 ;)

예전에 나는 미리 짜둔 여행 계획에 어긋나면 초조했다. 미리 예상한 이미지 보다 조금이라도 달리 느껴지면 크게 실망했다. 나는종종 어떤 도시는 별로였고 실망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저 내 스스로 만들어 둔 계획에나를 가두고 그 도시를 가두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젠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롭게, 미래를 계획하지 말아야지.


그럼 모든 곳이 기대 이상일 테니까.


머리를 비우자. 여행, 그러려고 온 거 아닌가?

나는 또다시 혼자 웃음을 터트린다.


*에릭 군나르 아스플룬드 [Erik Gunnar Asplund]

스웨덴의 건축가. 스톡홀름왕립공과대학 건축과를 졸업,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고전적인 단순성을 강조했으며, 후에 유리와 철 등 다양한 재료를 참신하게 사용하여 스톡홀름 박람회(1930)에서스웨덴 신건축운동을 선보였다. 스칸디아 영화관, 스톡홀름시립 도서관, 스톡홀름 숲의 화장터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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