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Dec 05. 2015

물 위에서의 하룻밤

스톡홀름에서 탈린으로 가는 배, 탈린크

스웨덴?! 이케아!!


오늘은 스톡홀름을 떠나는 날이다. 오후에 에스토니아로 가는 탈린크에 탑승해야 하는데 아직 시간 적 여유가 있다. 중앙역으로 와 근처 쇼핑가를 구경했다. 국내엔 이제 막 들어온  H&M home이라던지 스웨덴 대표 브랜드 COS를 둘러본다. 그러다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 이케아!!”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실용적이고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학생 때 영국 어학연수를 갔던 그 시절, 졸업 후 직장 때문에 홀로 자취를 한 이후로 나는 언제나 이케아를 애용했다. 내 방의 침대도 책상도 책장도 캐비닛도 모두 이케아이다. 이케아의 나라 스웨덴에 왔으면서 이케아를 가지 않았다니. 나는 급히 호텔 립세션으로 뛰어가 스톡홀름에 있는 이케아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다행히도 중앙역 근처에는 이케아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30분 마다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 교통카드도 만료된 상태였던 지라 나는 좀 더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이케아로 향했다.


이케아 거울 앞에서  한 컷... 매우 피곤해보인다 ㅎㅎ

이케아는 스톡홀름 시내에서 30분 정도 벗어난 Kungens Kurva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이케아 매장이라고 한다. 1945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5세의 캐딜락 자동차가 이 구간을 지나다 긴 커브에 미끌려 진창에 빠졌는데 그 날 이후로 이 길을 ‘왕의 커브길’ Kungens Kurva라고 부른다고 한다. 셔틀버스 창가에 앉아 스톡홀름 전경을 바라본다. 빽빽이 들어서 있던 건물들이 하나씩 줄어들더니 어느새 내가 도시가 아닌 외각에 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눈 앞에는 IKEA라는 수많은 깃발들이 형형 색색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이케아에 처음 도착한 소감은 ‘크다’였다. 역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이라서 그런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나중에 매장을 빠져나올 땐 출구를 찾는 길이 미로처럼 이어져 나오는 데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돌아가는 셔틀버스 1대를 놓치기 까지 했다.

이케아 매장에 들어가니 역시나 당장이라도 살고 싶은 거실, 침실, 서재, 화장실, 부엌 인테리어가 주르륵 펼쳐진다. 마치 3D로 된 미래의 인테리어 잡지를 보는 기분이다. 잠시 걷다가 피곤하면 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고 침대에 머리를 뉘어 본다. 다양한 의자에 몸을 맞춰본다. 최소 반년? 혹은 일 년 동안 앉을 의자의 종류는 다 앉아본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우리 주변에는 꽤 다양한 스웨덴 브랜드들이 조용히 다가와 우리의 삶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케아, H&M부터 마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끈 에그팩과 칩먼데이 스키니진. 구스타브 베리의 아름다운 찻잔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사회주의 국가 스웨덴에서 이뤄낸 훌륭한 브랜드들이다. 물론 너무 많은 세금을 내야 해서 본사를 해외로 옮긴 브랜드들도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니, 현재 스웨덴 정부는 이런 공룡 같은 기업들의 이전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치를 썩고 있을 것이다.

이케아를 한 바퀴 둘러만 보았는데도 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이제 어서 빨리 탈린크를 타러 선착장으로 떠나야 한다.


중앙역으로 돌아온 나는 짐을 찾아 나와 탈린크를 타는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는 스톡홀름 시내 곳곳을 돌아 나가 다시 한번 스톡홀름에서의 나날들을 눈으로 정리하고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쉴 새 없이 창 밖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모두들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떠나는 탈린크
내가 타야하는 배 탈린크 옆에는 핀란드로 떠나는 실자라인이 서 있다.

물 위에서의 하룻밤

탈린으로 가는 길


커다란 여객선 ‘탈린크’에 탑승한다. 스톡홀름에서 에스토니아 탈린을 잇는 탈린크. 나는 4인용 캐빈을 예약했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 한 분, 또래로 보이는 2명의 여자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우리는 이제 약 16시간의 긴 항해를 떠나야 한다. 우리는 마치 참전 용사처럼 힘을 주어 자신의 이름과 신원을 밝히고 악수를 했다.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승선 감은 꽤 좋았다. 나는 약 16시간의 긴 항해를 대비해 미리 사온 주전부리들을 꺼내 입에 주섬주섬 집어넣는다. 그리곤 얼마 전 까진 이 곳에 가게 될 줄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미지의 나라 에스토니아에 대해 상상한다. 가볍게 몸을 씻고 따뜻한 외투를 걸친 후 선상으로 올라가 바다를 구경했다. 어느새 배는 스톡홀름 시내를 저 멀리  떠나보냈고 곁에는 크고 작은 섬들과 그 속의 작은 그림 같은 집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 뒤로 끝없이 흘러가는 바다를 보니 마음이 차가워진다. 후텁지근하기만 했던 북유럽에서 처음으로 추위가 느껴져 옷섶을 부여잡았다. 나는 안으로 들어와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다가 보이는 창가 앞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흐르는 바다를 묵묵히 몇 시간 동안 바라보니 정말 오랜만에 외로움이 밀려온다. 새삼 바다의 사나이들이 왜 강한지를 알 것 같다. 바다의 사나이들은 매일같이 이 고독과 사투를 벌릴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강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초코칩 하나를 입안에 오물거리며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노력해야 한다던 작가 김연수의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 조금 전 객실 안에서 만난 할머니는 쿨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편은 작년에 죽어서 이젠 좀 홀가분하게 여행을 하는 길이야.

그가 미웠다거나, 그의 죽음이 다행이라는 게 절대 아니란 걸 나는 그녀의 흐려진 시선으로 알 수 있다. 그녀는 말 그대로 가벼워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너무나도 사랑해 노력하고 아파했던 시간을 놓은 사람의 초탈한 표정.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집으로 갈 때 헤어지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 모닝키스를 나누고 싶어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을 하니 어릴 때부터 꿈꿨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그 다름에는 나쁨도 있고 더 좋음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놀라운 건 내가 알아왔던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나의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 상대를 완전히 알고, 나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 듯, 상대는 내가 단편적으로 알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함께 삶으로 인해 우리는 상대가 살아온 인생을 다시 되짚어가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가 30살이라면 나는 아마 1년에서 길게는 5~6년 정도의 삶을 알고 있고 그것도 100% 로가 아닌 일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결혼하고 함께 살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 + 내가 몰랐던 그와의  데이트하던 시간의 모습 + 그가 살아온 삶을 다시 한번 되짚어가며 거의 90프로 이상 다른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에 사랑은 항상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다.


노년에 접어선 그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노력했을까? 사람을 100%로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최대한 맞춰가려, 양보하려, 설득시키려 노력한다. 그녀는 수십 년을 그를 위해 노력했고 그의 죽음을 통해 ‘노력’을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끔, 아니 아직은 매 순간 그녀는 그가 떠올라 그의 행동, 그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모든 걸 다시 한번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며 마음은 무거울 것이다. 그래도, 이젠 진짜  홀가분하시겠지.



어두운  밤하늘, 타국의 바다 한 가운데를 떠돈다. 배 위에는 몇몇의 연인들이 저 멀리 어둠 속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불빛을 찾아 헤맨다. 지금 이 배 위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또 어떠한 이야기가 있을까?

홀로 배를 타니 참 외롭다. 이 외로움이 좋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참 미묘하다. 평소엔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궁상을 떨어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다와 웃음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하다가도 이내 시끄러움이 싫어 인상을 찌푸린다. 배, 바다, 그리고 밤과 술. 이 얼마나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드는 것들인가. 흔들리는 배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마음이 떨리고 몸이 흔들려온다. 내 옆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빈 객실에 홀로 앉아 저 멀리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탈린크 안 침대실


‘에스토니아.’

사실 이번 여행 이전엔 부끄럽게도 나는 이 나라를 알지 못했다. 탈린, 탈린이란 도시조차 몰랐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 흔한 가이드 책 하나 없이 넙죽 배에 오르곤 그 나라, 그 작은 도시에 대한 상상을 한다. 분명 예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으리. 꾸미지 않아도 이목구비가 뚜렷해 좀 더 크면 대단한 미녀가 될 것임에 틀림없는 그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맥주 한 캔을 거의 1시간 동안 마셨다. 벌써 12시다. 밤바다를 한번  둘러본 후 이제 잠을 좀 청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책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