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Dec 08. 2015

기억을 잃게 하는 '시련의 묘약'을 파는 약국

친절함으로 무장한 중세의 도시 탈린

탈린의 알록달록한 소녀들


친절함으로 무장한 중세의 도시 탈린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짐을 꾸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꿈에도 그려본 적 없는 그 곳, 에스토니아 탈린에 도착 해 있었다. 혹자는 시간여행을 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에스토니아 탈린을 추천하곤 했으나 나는 도통 어떤 곳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배에서 내려 올드타운으로 가려고 하니 선착장 위치가 애매하다. 나는 친절한 선착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 올드타운 근처로 가는 트램 역을 알게 되었고 짐을 끌고 구비구비 늘어선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걸었다.


통통하고 붉은 뺨이 귀여운 선착장의 여직원은 스톡홀름에서 배를 타고 탈린을 오는 동양인은 많지 않다며 나에게 굿럭을 외쳐 주었으나 친절한 그녀의 바람과 달리 겨우 도착한 트램 역은 ‘금일 운행 정지’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래도 지도에 그림까지 그려준 그녀의 친절이 헛되지 않게 근처에서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았으나 오늘은 모두 운행하지 않는단다.


결국 나는 지도를 따라 캐리어를 끌고 터덜터덜 올드타운을 찾아 나섰다. 더운 날씨는 나를 지치게 했지만 그보다 더 힘겨운 건 올드타운으로  다가갈수록 사라지는 아스팔트 바닥과 하나 둘 고개를 내미는  돌바닥 이었다. 이 바닥을 지나다 보면 캐리어 바퀴가 부서질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나는 계속해서 한숨을 쉬며 짐을 끌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새 공기도, 분위기도 확연히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지도만 보다 무언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 용수철처럼 머리를 튕겨 올려 주변을 살펴본다. 처음 도착한 도시는 언제나 나에게 낯설기 짝이 없다. 그 곳이 도시이든 시골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처음 몇 분은 그들이 웃고 있든 손을 흔들어 주든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에 그 누구도 믿을 수도 없고, 웃음마저 경계가 된다. 하지만 잠시 후  그것이 의미 없는 불안과 경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달콤하게 익은 과일과 흐트러지게 만개한 꽃들이 가득한 좌판, 고소하게 콧속을 자극하는 아몬드 냄새와 번쩍번쩍 빛나는 미스터리 한 앤티크들이 나를 뒤 흔들어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하얗고 부드러운 린넨으로 머리를 감싸고 한 손으론 아몬드를 볶는 여자와 칭얼거리는 아이들의 손을 끌고 아직 허리를 곧게 필 수 있는 건강하고 혈색 좋은 노인들, 대 낮부터 술판을 벌리고 얼큰하게 취해 목청껏 소리치는 남자들, 방금 전 까지 나의 팔목을 부술 것 만 같던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이 동화 같은 도시를 써 내려가는 빈 종이처럼 느껴진다. 나는 드디어 탈린의 올드타운에 도착했다.


막상 올드타운에 도착해도 숙소를 찾지 못해 길 위에서 한참을  쩔쩔맸다. 겨우 찾아간 호스텔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스텔. 일본인이 운영한다고 해서 이 곳에 산지 꽤  오래되는 터줏대감 느낌의 할아버지를 상상했으나 나를 맞이한 사람은 젊디 젊은 마른 일본 남자였다. 나의 무거운 짐을 3층까지 들어주며 나를 반갑게 맞이한 호스텔 주인 ‘타로’는 여행 중에 만난 에스토니아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후 탈린에 호스텔을  오픈했다고 한다.



로맨틱하시네요!

나의 조금 과장 섞인 미소와 손동작에 그는 쑥스러운 듯웃음을 터트리며 이 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잠시 후 나는 타로에게 조금 있다 다시 보자고 인사하곤 빠르게 짐을 맡기고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사실 탈린은 헬싱키에 가기 전 잠시 들리는 일정으로 내 여행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머문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 하루를 온전히 잘 사용해야 한다는 무언의 굳은 다짐을 하며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 길로 구시가지 광장으로 걸어갔다. 탈린이 다른 구시가지들, 예를 들어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라하라던지 두브로브니크와  차별화되는 이유는 바로 핑크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건물 벽의 색깔 때문일 것이다. 발트해의 진주라는 별명답게 연분홍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벽들과 붉은 지붕들이 펼쳐진 구 시가지는 옛 시절의 옷을 입고 호객하는 레스토랑 직원들로 분주했다. 나는 그들에게 “나중에요.”라고계속 거절의 인사를 하며 곧장 광장 아래 작은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이유는 바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가장 오래된 약국 RAEAPTEEK

1422년부터 10대째 운영 중이라는 약국 ‘RAEAPTEEK’. 가장 오래된 약국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곳에서 파는 독특 한약들이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기에 나는 그 특별한 묘약들을 구경하기 위해 탈린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 곳에 도착했다.


약국에는 그 옛날 신비의 묘약을 만들 때 사용했을 법한 재료들을 여전히 판매하고 있었는데 말린 두꺼비라던지 박쥐, 고슴도치, 개똥들도 이 곳 약재 리스트에 적혀 있어 두 눈이 휘둥그래 해졌다. 이제는 일반 신약들도 판매하고 있지만 한 켠에는 여전히 이 곳에서 직접 만든 특별한 묘약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예쁜 유리병에 담긴 진 녹색의 열매라던지, 아몬드를 품은 과자라던지, 말린 붉은 꽃잎 같은 알 수 없는 것들은 저마다 배탈약, 수면제 등의 효능이 적혀 있었고,  그중 당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시련의 묘약’이었다.


시련의 묘약을 들고 약국 앞에서~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사라지게 해준다는 이 약은 마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시킨다. 약사에게 물어보니 이 약이 이 곳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약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재미로 기념품 삼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진실로 간절한 마음에 이 약을 사 갔을 시련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려 본다. 마치 영화 속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그들은 이 약이 아몬드를 품은 작은 과자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시간에 흐름에 옅어지지만 영원히 피부에 붙어 사라지지 않을 흉터 같은 그 기억을 지운다는 생각에 온 몸을 떨었을리라. 순간 내 귓가에는 몸을 들썩거리며 숨죽여 터트린 울음 같은 흐느낌이 들리는  듯했으나 금세 약국 안을 가득 채운 관광객들이 만들어낸 웅성이는 소음에 정신을 차렸다.



약국에서 나와 어여쁜 카타리나 골목을 한번  돌아본 후 다시 내려온 길을 올라간다. 그리곤 조금 더 걸어 올라가 톰페아 언덕 다다랐다. 톰페아 언덕은 호스텔에서 가져온 탈린 구시가지 지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추천되어 있던 곳이다. 언덕에서 내려보는 에스토니아의 모습은 동화 속 공주가 사는 높은 성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높지만 바람이 많이 불지 않고 따스하며, 햇살이 쏟아지지만 그리 눈이 부시지 않는다. 마치 아름다운 공주가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자라길 바라며 그녀의 시야가 불편하지 않게 애정을 쏟아 만든 성의 창문처럼 말이다. 톰페아 언덕을  돌아본 후엔 뚱뚱한 마가렛 성문과 올라프 성당을 돌아보았다. 이 곳을 다 돌아보아도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탈린은 무척이나 작은 도시였다.


아몬드 파는 여인의 사랑스런 미소


탈린의 구시가지는 진정 중세를 걷는 느낌이었다. 에스토니아는 건축법이 까다롭고 탈린 구시가지의 중세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많은 것을 제한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아선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IT강국 중 하나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스카이프와 MSN이 에스토니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건 나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다음날 호스텔에서 만난 벨기에 출신 프랑스어 선생님은 탈린의 구시가지가 유별나게 오래된 느낌이라 그렇지 다른 곳은 무척이나 현대적이라고 나의 감상을 지적했다.


에스토니아는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한자 시대의 교역의 중심지란 과거의 영광이 있고, 소수지만 에스토니아 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소련 독립 후엔 경제성장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고  그중 하나가 IT분야라고 선생님은 말했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던 에스토니아의 소도시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는 일본인 학생 역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에스토니아는 여러 나라에 지배를 받으면서 문화나 역사적인 건축물 대부분이 에스토니아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스타일이 섞여 있어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에스토니아를 이끌어가는 건 ‘자존심’인 것 같다고 말한다. 마치 100분 토론이라도 벌어진 듯한 우리의 아침식사 모습을 보며 타로는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하라며 농담을 던졌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매우 작지만  돌아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 지루하지가 않았다. 나는 하루 동안 톰페아 언덕을 3번 올랐다. 탈린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은 후 늦은 오후에, 그리고 해가 질 무렵부터 해가 진 후 까지 나는 그 곳을 머물렀다. 하루뿐이어서 그럴까? 탈린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 마냥, 그 어떤 도시 보다 더 안타깝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자존심 높은 붉은 지붕들 아래 연분홍 뺨을 붉히며 환히 타국의 관광객을 맞이하는 사람들, 길 어디를 가도 넘쳐흐르는 달콤하고 고소한 아몬드 볶는 냄새. 바다에서부터 도심으로 밀려오는 바람의 감촉.


에스토니아의 사람들이  떠나보내려는 힘들었던 과거들은 너무나 무거워 바다를 천천히 밀어나가고, 그 힘들었던 과거의 흔적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환희와 설렘은 높고 가벼워 바람을 몰고 온다. 이 둘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기묘한 공기는 이 곳을 애틋하게 하는 기운을 안고 있기라도 한 걸까. 탈린의 항구는 서정적인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항구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 기묘함은 다시 탈린을 떠나기 위해 항구에 도착하자 그 정체를 드러냈다. 나는 아름다운 도시 탈린에게 굿바이 키스를 보냈다. 그리곤 다음엔 좀 더 긴 시간을 머물겠노라고 약속한다. 곧 나는 헬싱키로 떠나는 배 린다 라인에 탑승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 위에서의 하룻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