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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Dec 09. 2015

헬싱키 아카데미카 서머 호스텔, 나의 룸메이트 유키코

핀란드 헬싱키에서의 일주일


아카데미카 서머 호스텔, 나의 룸메이트 유키코


헬싱키의 첫 느낌은 영화 ‘카모메 식당’의 첫 장면과 거의 동일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약간 흐린 하늘, 끼룩거리는 갈매기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들어오는 정겨운 초록색 트램.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다독이는 사람들과 지금까지 내 콧속을 파고든 수 많은 바다의 향기 중 가장 비의 냄새와 비슷한 곳 헬싱키. 트램을 타고 호스텔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으나 항구에서 시내를 가로지르며 굴러가는 그 길이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은 건 그 어느 나라보다 헬싱키에 대해 많이 알아보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6년 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처음으로 핀란드 사람을 만났는데,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휘바 휘바’라는 껌 선전에서 말하는 핀란드 외에는 그 나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후에 핀란드 출신 방송인 따루를 보며 핀란드 사람들은 똑똑 한가보다 정도의 생각을 했다. 2007년에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이 개봉했고, 그 후 내 머릿속의 핀란드는 ‘참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나라’란 이미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딱히 그 영화 때문에 헬싱키가 오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아예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아니다. 헬싱키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 영화 속 장소들을 다 찾아가 볼 예정이었으니까.


평화로운 헬싱키

트램에서 내려 길을 3번 정도 건너니 ‘Domus Academica’란 글씨가 보인다. 아카데미카 서머 호스텔. 본래 대학 기숙사이나 여름 동안만 관광객들에게 오픈하는 독특한 호스텔이다. 예약을 할 때는 4인 실을 예약했는데 막상 숙소에 도착하니 2인실을 사용하면 된다고 립셉션 직원이 말한다. 2인실이라, 진짜 대학생이 돼서 기숙사를 사용하는 기분이다. 보통 헬싱키는 여행자들이 오래 머무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기로 했기에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룸메이트가 바뀌게 될지, 어떤 사람이 방을 함께 사용할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안녕!”

문을 열자 놀란 토끼 눈의 하얀 동양인 여자가 손을 흔든다. 얼핏 보기엔 한국 사람 같아 나는 인사와 동시에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일본 사람이에요, 이름은 유키코입니다.”


숙소에서 유키코를 그려보았다 ㅎㅎ

그녀는 어설픈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녀의 인사에 나는 어설픈 일본어로 나는 한국사람이며 혜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우리는 굴러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는 10대 소녀처럼큭큭 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꽤 함 참을 낄낄 거리며 웃다  다시 한번 진지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나보다 3살이 어리며 오사카에 사는 직장인이라고 했다. 또한 K팝을 좋아하고 아이돌 인피니트의 팬이라 종종 서울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녀는  여름휴가로 헬싱키에 오늘 도착했으며 일주일을 이 곳에서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와! 나도 일주일 여기 있는데! 너무 잘됐다!”

나와 유키코는 함께 장을 봐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그녀는 오므라이스, 나는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음악을 틀고 맥주 한 캔을 열어 ‘짠!’하고 소리친다.

“그럼 일주일 잘 부탁합니다!”


도시 속에 골목처럼 가득한 깨끗하고 잘 정리된 공원들



그림과 책, 그리고 음악으로 가득 찬 곳.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 유키코는 잠에 빠져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려니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다 되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막 나갈 차비를 끝내고 나니 유키코가 부스스 눈을 뜬다.

“오늘 어디 가려고?”

“오늘 미술관 한군대 정도만 가고 천천히 동네 구경 좀 하다  돌아올 거야. 저녁에 플로우 페스티벌 티켓을 끊어 놨거든.”

“플로우 페스티벌? 아, 그거 포스터 봤어. 너 거기 가는구나! 누구누구 나와?”

“아웃캐스트랑, 자넬 모네, 그리고 북유럽 유명 가수들이 나온데. 핀란드에서 제일 큰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해서 한 번가 보려고. 넌 오늘 뭐해?”

“음… 난 일단 좀 더 쉬다가 오후에 잠깐 쇼핑 가려고. 사실 난 헬싱키 4번째 온 거야.”

“4번째?”


유키코는 몇 년  전부터 헬싱키에 대한 환상이 커 헬싱키에 1년 동안 어학연수를 왔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헬싱키가 그리워 여름휴가  때마다 이 곳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선 지금 헬싱키가 제일 인기 장소야. 너도나도 헬싱키를 가고 싶어 해. 난 내년 휴가에도 헬싱키를 올 거야.”

일본인들은 꽤 오랜 시간 파리를 꿈의 장소로 손꼽았다. 8~90년대의 많은 일본인들은 로맨틱한 파리를 꿈꾸며 파리 여행을 감행했다. 하지만 막상 파리에 도착하니 기대보다 못한, 즉 더럽고 불친절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꿈꿨던 환상의 붕괴는 결국 파리 신드롬이란 정신적 증세로 봉착하게 되었다. 실제로 여행 중 충격을 받고 쓰러지거나 가슴 떨림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2000년대부터 헬싱키를 꿈의 장소라고 부른다고 했다. 북유럽 스타일의 유행과 많은 핀란드 브랜드들(이딸라, 마리메꼬 등)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영화 ‘카모메 식당’의 영향으로 일본인 여성들의 꿈의 장소가 되었다고. 이렇게 말하는 유키코는 정작 그 영화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냥 헬싱키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단다.


읿본인들의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 마리메꼬


후에 헬싱키에서 며칠을 보낸 후 나는 그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대부분 여행은 기대 이하이거나 실망하는 부분이 꼭 있는데 헬싱키는 상상 그대로. 조금의 실망도 이상도 없었다. 헬싱키 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이미지가 없어 큰 기대가 없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는 말 그대로 편안하고 안락한 나날을 보냈다.


나는 호스텔을 나와 캄피 역을 지나 중앙역 까지 천천히 햇살을 음미하며 길을 걸었다. 오늘도 날이 참 맑다. 살짝 더운 기운이 온몸에 한 겹 씌워지긴 했지만 여름의 피부를 직접 만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길을 걷다 보니 유명한 키아즈마 현대미술관과 전시 소개 포스터가 보인다.

‘marimekko +KIASMA’

오호, 핀란드 대표 브랜드와 핀란드 대표 미술관의 만남이라니.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오늘 어느 미술관을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잘 됐다. 오늘은 키아즈마로 정했다.



키아즈마 안에는 마리메코의 디자이너들, 마리메코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작가들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맨 위층에는 키아즈마에서 선정한 올해의 젊은 작가들 전시가 보인다. 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브랜드인 마리메꼬는 비비드 한 컬러와 다양한 패턴들, 특히 꽃 모양의 패턴이 유명한 브랜드이다. 우리나라에도 신사동과 판교 등에 매장이 들어와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브랜드는  1960년대 재클린 케네디가 애용했던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마사코가 헬싱키에서 처음으로 구입한 옷의 브랜드 역시 마리메꼬이다. 이렇게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브랜드 마리메꼬는 수 많은 작가들, 디자이너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키아즈마란 말 뜻 자체가 X의 교차점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키아즈마의 전시들은 키아즈마란 공간과 작품의 교차점, 즉 교감에 큰 중점을 둔 것 같다. 또한 작품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교감을 하기 위한 노력이 많이 눈에 띄는데 예를 들어 작품  중간중간마다 어린이들에게 질문 던지는 캐릭터가 있는 걸 보고 감탄했다. 어린이의 키높이에 쉽게,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며 각자의 개성 있는 대답을 이끄는 질문. 이런 게 요즘 우리나라에서 열풍처럼 불고 있는 북유럽의 교육 방식이고 창의력이 아닐까 싶다. (다음에 계소오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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