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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17. 2016

언제까지나 너에게 구슬 같은 여인이고 싶다

박항률 화백의 그림과 이것저것 오래 전의 습작

첫사랑이란 말이 스칠 때마다 지루한 시간은 맥박 치며 빛났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 있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기다림의 시간은 황홀했다.

첫사랑이  긴치마를 허리띠로 동여매고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면

그 남자가 얼마나 실망할까. 나 또한 그 남자가 첫사랑이거늘.

그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준 최초의 찬사는 구슬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었다.  


-박완서 '그 남자네 집' 中 -


첫사랑이란 말은 책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수없이  이야기되어지는 소재였고, 어린 나에게도 생에 처음 좋아했던 누군가가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던 적이 있었던 것일까? 


이따금 쓰잘데없는 생각에 종종 잠기는 나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심각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어둠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한다. 나와 같이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 까르르 웃으며 장난치는 교복 입은 아이들,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반짝이는 벨벳 소재가 온몸을 휘감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인들의 곁을 스쳐간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계절의 빠른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쓸대 없이, 또다시 이상한 고민에 잠겼다.



첫사랑이란 존재는 이상하게 과대 포장되어 스스로의 진실성을 내 안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다. 

망상 하기 좋아하는 나의 기억력을  오래전부터 불신해 온 나로서는 도저희 내 기억 속의 그 사람의 얼굴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말투라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이 도대체 제대로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다. 

이상하게도  그 단어를 내뱉었을 때의 아련한 슬픔이나 고독함, 외로움 등은 25살이 넘어서면서부터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진실 사이에는 기생충이 알을 까듯 빠르게 번져버린 포장된 기억들이 인스턴트 음식의 방부제처럼 솔솔 뿌려진다. 조미료 맛이 너무 많이 나서 이게 음식인지 가공된 어떠한 배를 불리기 위한 물체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마치 고무나 플라스틱 조각을 씹고 있는 듯한 기묘한 상태가 되었다. 


질겅질겅 씹을수록 이상한 맛이 난다. 질겅질겅 씹을수록 원래 맛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질겅질겅 씹을수록 어서 뱉고 싶다. 질겅질겅 과도하게 씹다 보니 머릿속에 그 기억은 퉤- 하고 튕겨나와 길바닥 어느 곳에 버려졌다. 남자는 첫사랑을 기억하지만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기억한다는 어느 인터넷 게시판의 잡다한 이야기가 어느 때보다 끄덕끄덕 수긍되는 날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화려하게 피는 꽃 같은 여자였던 적은 있을 것이다. 

방긋방긋 기교를 부려가며 웃어주고, 어설픈 수를 쓰며 나의 손과, 어깨를 내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꽃에 가시가 있듯이 다가오는 손을 쳐내고, 소리를 지르고 인상을 찌푸리며 '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같은 오래되서 농축된 껌처럼 기분 나쁘게 온 손가락에 달라붙은 불쾌감을 토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구슬 같은 여자는 어떠한 것일까? 내 이름의 마지막 자를 옥편에서 찾으면 구슬 옥 '림'자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최신의 옥편을 찾아보면 구슬 옥 '림'의 오묘한 뜻이 아름다울 '림'이란 흔하디 흔한 의미로 변질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꽤나 상심했다. 


아름답기만 한 것은 세상에 너무 많다.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나도 닳고 닳아 마모되어 '뻥'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하나 웬만해선 오래됐다고 터지지는 않는) 그런 타이어가 된 것 같았다. 

쉽게 바꿀 수 있고, 쉽게 굴릴 수 있는 고무바퀴. 하나 구슬 같다는 말은 어쩐지 바퀴 없이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이상적이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구슬 같은 여자였던 적이  있을까..? 

 



첫사랑이란 단어는 반의 반장의 이름만큼이나 빈번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수많은 기억 속의 사람들 중에서 누가누가 제일 좋았는지, 아름다웠는지, 순수하였는지 평가하여 마지막에 불리어진 이름. 

'축하합니다'란 축하와 동시에 그 수많은 사람들을 지고 다루고, 통솔해야 하는 첫사랑이란 기억. 


첫사랑은 그 어떠한 기억보다도 우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어야 하기에, 그런 무거운 짐에 한마디 대꾸하지 못하고 덧칠되는 평형의 색들을 고스란히 빨아들여야 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색이 덧칠될수록 그 본연의 색은 사라지고 어느새 섞이고 섞이다 보니 검은색이 되었다. 심각하리 만큼 복잡하던 기억들은 크로스 되다 못해 엉켜버리고, 결국 검디 검은.. 수채 구멍 속에 뭉친 머리카락이 되었다. 


그 덩어리를 건져내어 버리고 나니 말 그대로 흔적만이 남았다. '아.. 그땐 그랬었지.. 아마..' 

아마란 이름의 추측성 기억. 이 무형의 너무나도 가벼운 기억의 흔적은 그위에 무엇을 올리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흔적은 깊지도 크지도 않아, 그 무엇을 올려놔도 어울린다. 아니 어울린다기 보다 그냥 멍하니 밑에 자리 잡게 된다.


아마..

언제부터인지.. '아마'란 단어가 참 좋아졌다.




아마도 그랬을 거야.

나는 박항률 작가의 작품이 좋다. 그의 작품은 나의 '아마' 성 추측을 항상 만족시켜준다.

완벽하게 완성되지 못한, 어느 순간 허리가 끊겨버린 연재소설 마냥 그의 작품의 여백은, 그림 속 소녀의 시선은 그곳을 구비구비 따라가다 보면. 서걱거리는 땅을 지나 '아마' 그럴 것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나게 한다.


또한 나는 박항률 작가의 색감을 좋아한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자꾸만 손이 가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한 꺼풀 한 꺼풀 껍질을 벗겨 신물이 흐르는 한알을 툭 베어 물었을 때 입속에 퍼져나가는 그 노란 귤빛처럼...

손톱 사이사이 손끝 지문 사이에 베어든 껍질의 노란 빛깔을 머금은 그림처럼... 

부엌에 몇 주째 나뒹굴다 막 싹이 나려 하는 광주리 속 감자에 칼로 상처를 낸다. 

투투 둑 떨어지는 물기를 머금은 껍질 속에 퍼렇게 보이는 조금 오래된 감자의 싹의 살갗 같은 푸르름...



작가의 작품 속  '아마'는 저 소녀가 될 수도 있고, 저 시선 속의 공간이 될 수 돼있고, 시선 너머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될 수 도 있다. 

혹은 그 소녀의 머리 위에 올려진 새의 이야기, 옆에 서있는 나무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죽은 사촌 누이의 초연한 눈동자, 생명력이 사라져 창백한 아름다움을 빛내던 희철 건한 얼굴을 소녀 속에 그렸고,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여인 속에 그렸다고 한다. 하나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작품 속 소녀는 '아마'란 추측 속에서 그의 작품의 진실된 이야기를 넘어 작품을 보고 있는 '나'를 대입시켜 주어서 참으로 좋다.


저 소녀는 늦게 집으로 귀가하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과자 한 봉지를 안고 창가에 매달려 대문 밖 보도를 응시하던 어린 시절의 '나'가 되다. 

과방을 나와 햇빛이 비치는 문 계단으로 걸어 나왔을 때 앞을 스쳐가던 선배의 자전거 탄 모습을 응시하던 '나'가 되기도 한다. 

거짓말도 잘 못하면서 어설프게 거짓말을 꾸며내며 널 보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일이 있어 왔다며 한창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다 고개를 들었을 때 딱히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증발된 듯, 건조한 눈동자의 그를 바라보던 상처받은 '나'가 된다.

 



그림 속 소녀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니진 않았다. 하나 어디서 본듯한.. 왠지 추억 속에서 혹은 거울 속에서 본듯한 누군가 혹은 나의 어느 순간의 얼굴을 닮았다. 아름답고 완벽한 게 아닌 구슬같이 귀하게 여귀고 영롱하게 바라보고 싶은 그런 얼굴..


완벽하게 연출되었던, 과거의 누군가의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생명력은 있지만 건들면 날개가 부스러지는 나방처럼 퍼석됐다. 나는 진실로 누군가의 앞에서 나는 데구루루 굴러가는 구슬처럼 활기차고 반짝였던 적이 있을까? 


소녀의 시선 끝에 서 있었을 누군가의 얼굴과 표정을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얼굴을 도저히 떠올라지지도, 상상도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불필요하게 느껴져 나는  그림밖에 서있을 '누군가'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다시 한번 똑바로 응시한 소녀의 얼굴에는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엔 눈을 감고 그 소녀에게서도 시선을 거둔다. 누군가의 이야기, 포장되고 만들어진 나의 형체 없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아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앞으로의 이야기마저 포장하고 만들어내면 그 어떠한 '현실'이 내게 부딪혀도 실망하거나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따뜻하게 데운 약을 한 모금 마셨다. 밀려오는 몽롱함..  그리고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문득 들게 하는 이 조용한 동네. 

이 고요한 동네의 작은 건물 속에서 "꿀꺽' 삼켜진 몽롱한 감기약 만큼이나 나른하고 부드러운 작가의 작품들을 꿈뻑꿈뻑 눈을 깜빡이며 바라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구슬 같은 사람이었던가?' 같은 추상적인 생각을 접고

음악을 튼다. 적막하는 방에는 가득 음악의 소리가 찬다.


-20대 중반 어느 날의 잡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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