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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30. 2015

뮌헨, 뜨거운 안녕

독일에서의 마주친 아름다운 사람들

독일

뮌헨, 뜨거운 안녕.

(마리엔플라츠, 야경)


뮌헨 공항에 도착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예상보다 더 뜨거운 날씨, 후끈한 공기가 입안으로 훅 들어오자 여기가 독일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곳으로 불시착한 건 아닌지 혼돈이 올 지경이었다. 어영부영 짐을 끌고 공항 버스정류장에 서 내 옆에 선 곱슬머리 남자에게 “여기 뮌헨 맞죠?”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여행이 시작됨이 실감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뮌헨 역으로 가는 내내 독일이 이토록 더웠던가란 한 가지 주제에 빠져 주변에 지나가는 풍경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뮌헨 역에 다다르고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카메라를 목에 맨 수많은 관광객이 보이자 나는 슬그머니 여행자의 해맑은 미소를 꺼내 얼굴을 바꾸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또다시 뜨거운 공기가 뱀처럼 온몸을 휘감았고 나는 뚝뚝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가며 숙소를 찾아 헤맸다.


호스텔을 찾는 것 조차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구글맵의 사용법 조차 몰랐고, 숙소 지도를  프린트해 오지도 않았기에 숙소에서 알려준 단편적인 설명을 따라  이곳저곳 헤매느라 40여분을 허비했다.

“망했다.”

같은 시간 뮌헨에서는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렸고 나는 2편의 오페라를 예매했다.  그중 한편은 바로 오늘 저녁, 도착한 날의 티켓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시내로 와 숙소를 찾고, 옷을 갈아입고, 국립극장으로 ‘짜잔!’ 하고물흐르 듯  도착할 것이란 나의 계획이 얼마나 크고 허망한 꿈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래,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그래, 나는 길치였다.

결국 첫날부터 오페라를 보겠다던 장대한 첫 번째 목표는 뜨거운 뮌헨의 날씨와 함께 녹아 사라졌고, 교차된 길위, 낯선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 사이에 선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순간 끈적한 공기 사이로 낯선 향의 바람이 코끝을 스쳤고, 이 향은 내가 여행자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그 바람은 나의 앞 길을 인도해 주진 못했지만 타지의 이방인이란 묘한 설렘과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나는 다시 가방을 고쳐 들고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물어, 물어 겨우 찾아간 숙소는 허무하리만큼 중앙역에서 가까웠다. 큰 길하나 건너 들어가면 보일 곳을 이토록 해메다니. 허나 허무할 새도 없이 나는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6인실 방에 짐을 밀어 넣은 후 급히 호스텔을  뛰쳐나왔다. 오페라는 보지 못했지만 여행의 첫날을 기념하고 싶다는 작은 욕심에 나는 광장을 향해 빠른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여름이지만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마리엔플라츠와 정교하고 아름다운 시청사. 사실 뮌헨에 대해서는 큰 기대도, 정보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해 가격이 싸 뮌헨을 선택했다. 나를 초대한 독일인 친구의 집으로 가는 버스도 있다. 그렇기에 그저 겸사겸사 쉬엄쉬엄 며칠을 머물 생각만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눈동자 안, 붉은 노을을 덧입어 선명하게 빛나는 빨간 지붕들과 고풍스러운 뮌헨의 거리는 혼자 보기 아쉬울 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한 겨울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독일의 난쟁이와 요정들은 여름부터 크리스마스 예행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반짝반짝 지붕 끝에 맺힌 별빛과 오래된 건물이 뿜어내는 예스럽고 우아한 공기는 뮌헨에서의 뜨거운 첫 발을 식혀주고 어루만져 준다. 그렇게 내 70일 여행의 첫날이 눈부시게 저물어 갔다.


당신은 천사와 길을 걸어본 적이 있나요?

(중앙역, 노이하우저 거리 쇼핑가, 마리엔 광장, 신시청사 인형 시계, 레지덴츠 궁전, 님펜부르크 궁전)


아침 일찍 일어나 레지던츠 궁을 돌아보고 12시에 시작하는 시청사 인형 쇼까지, 작은 침대에서 내려올 때 부지런한 관광객의 다리로 바꿔 신은 나는 아침부터 바삐 길을 걸었다. 6인실 호스텔의 룸메이트 중 영국 남자애들이 늦게까지 떠드는 바람에 잠을 몇 번 깨긴 했지만 장시간의 비행에서 온 피로 때문인지 나는 시끄러움에 눈을 뜸과 동시에 다시금 잠이 들었고, 알람 없이도 이른 아침 룸메이트들의 부시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완전한 잠을 깼다.


오늘도날이 매우 덥다. 어제보다 더 더운 기분이다. 누가 독일의 여름이 서늘하다고 말했던가. 호스텔 립셉션은 이번 주 날씨가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32~34도를 웃도는 날씨. 아침 9~10시부터 내 머리카락을 불태 우는 뜨거움에 뒤통수를 부여잡고 뮌헨의 유명 델리카트슨 ‘달마이어(Dallmayr)’로 달려갔다. 300년 전통을 간직한 달마이어는 신선하고 건강한 식료품 판매로 유명 하지만 2층에는 멋진 카페가 있다. 예전에 어느 잡지에서 독일에 가면 꼭 마셔봐야 하는 커피로 ‘파리제(PHARISAER)’를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있다.


파리제는 럼2샷과 블랙커피, 설탕과 휘핑크림이 들어간 커피이다. 우습게도 나중에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파리제란 커피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연장선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독일과자 슈니발렌도 독일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파리제 한 잔을 약이라도 복용하듯 입 안에 탁 털어 넣었다. 더운 날씨, 반나절 만에 노곤해진 몸은 뜨거운 럼과 뒤섞여 온 몸을 밀대로 밀어 길게 늘인 반죽처럼 만들었고, 몸은 금방이라도 의자에서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서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아 다음 갈 곳을 고민하던 중 트램을 타고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소문난 ‘님펜부르크성’을 가기로 결정했다.    



님펜부르크는 하얗고 우아한 그림 같은 성과 베르사유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정원은 영국식과 프랑스식으로  나누어지며 미로처럼 구석구석 풀 숲 사이에 작은 건물들이 숨어있다. 님펜부르크 성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성에 들어서자 성 창문 넘어 펼쳐진 광활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내 시선을 한눈에 빼앗았고 성 안을 둘러보는 내내 쉬는 시간 종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어서 빨리 정원으로 뛰어나가고 싶어 혼났다. 슬렁슬렁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이 방, 저 방을 설렁설렁 기웃거리던 나는 결국 잠시를 참지 못하고 정원으로 뛰어나왔다.


정원을 달려도 보고 개구리처럼 폴짝 폴짝 하늘 높이 뛰어도 본다. 비밀의 정원을 여는 열쇠를 어렵사리 손에 넣고 들뜸에 몸부림치는 소녀처럼 나는 더위에 두 뺨이 붉게 상기된 체 우아한 정원 위를 철없는 꼬마처럼 요란하게 돌아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어깨가 쑤셔와 두 팔을 포물선을 그리며 휙휙 돌린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발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아저씨 한 분이 웃고 있다. 눈을 마주치고 나는 관광객 특유의 해맑음으로 밝게 웃음을 지어 보낸다.


“날씨가 참 좋지요?”

나의 질문에 아저씨는 커다란 입으로 배 반쪽같이 시원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방금 무엇을 한 거냐고 물었다.

“어깨가 아파서 풀어주고 있었어요.”

“그렇구나, 나는 네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줄 알았단다.”


뜻밖의 아름다운 표현에 더위가 아닌 부끄러움으로 뺨이 붉어진다. 만약 내가 새라면, 그가 천사라면, 이 아름다운 정원이 진짜 천국이라면, 아마 이 표현은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나는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창조물과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란 엉뚱한 설렘에 까르르 웃었다. 뮌헨에 오길 참 잘했다. 나는 멈춰지지 않는 웃음을 목으로 꿀떡 삼키곤 나는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몽환적 인대화가 흐르는 반짝이는 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았더니 소리 없이 부드럽게 크림처럼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보인다. 그리고 주변엔 조약돌처럼 옹기종기 모인 작은 아이들이 소리 없는 시냇물 대신 참방참방 물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그중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중년의 부인이 너무나도 조그만 아기와 춤을 추듯 두 손을 맞잡곤 속닥이고 있다. 금발머리 여인과 비교되는 검은 머리의 작은 아이. 그때 중년 부인과 나의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혹시 한국 사람 인가요?”

“어…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애가 아가씨뒷모습을 보자마자 ‘마마’라고 했거든요. 우리 아이도 한국사람이에요. 우리 귀염둥이는 한국어, 독어, 영어도 다 조금씩 하는 천재예요. 하하. 너무 예쁘죠?”


독일에 한국인 입양아가 많고, 또 북유럽에도 한국인 입양아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직접 금발의 파란눈의 외국인이 검은 머리의 우리나라 아이를 키우는 것을 보니 온 몸 가득 묘한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 슬픔은 머지않아 연기처럼 사라졌다. 중년 부인은 사랑으로 충만한 자애로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 역시 맑고 투명한 웃음으로 그녀를 따랐다. 옆에 흐르는 시냇물 보다 더 맑은 그들의 영혼이 보이는 듯 해 나는 주책 맞고 예의 없이 고이는 눈물을 참으며 그들을 따라 웃었다.

“아이가 너무 예뻐요! 안녕? 천사님!”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한 미로의 정원을 돌아 나는 이 비밀의 화원의 문을 굳게 닫고 다시 시내로 가는 트램에 몸을 싣는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환하던 하늘이 트램에 오르기가 무섭게 회색빛으로 변한다. 진정 나는 꿈을꾼걸까? 아니면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방문하고 돌아온 건 아닐까? 좀 전까지 머물렀던 성과 정원이 아득하고도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천사들을 마주했던 백조같이 하얀 성과보석같이 빛나는 붉은 지붕, 거울 같은 호수를 나는 언제까지나 천국의 한 조각의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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