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Sep 30. 2015

뮌헨, 열로 가득 찬 그 여름, 그 밤.


열로 가득 찬 밤과 추위로 가득한 회색 공간

(알리안츠 아레나, 슈바빙, 호프브로이, 달마이어, 오페라 페스티벌, 노이에+알테+피나코테 미술관)


인연이 없다는 말, 아무리 노력해도 연이 닿지 않으면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 나는 낭만이란 이름으로 인연을 믿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을 스스로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인연이란 말을 즐겨 쓴다.

“그건 인연이 아니었어.”

그 어떠한 이유를 가져와도 납득하기 힘든 안타까움 속에 ‘인연’이란추상의 단어는 그러한 답답함을 허무하게나마 무장 해제시켜 꼿꼿이 세운 등을 바닥 위에 눕게 한다. 나에게 뮌헨의 오페라는 호사스러운 일이었던지 인연이 없었나 보다.


아침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를 방문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의 팬인 나에게 분데스리가는 큰 관심이 아니었지만 2014년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의 최고 히어로들이 가득 찬 바이에른 뮌헨의 구장을 그냥 지나 치기엔 눈앞의 왕의 행차를 놓친 백성의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그런 이상한 이유로 나는 ‘알리안츠 아레나’를 방문했다.


알리안츠 아레나를 가는 버스에서부터 구장 안, 메가스토어까지 사람들이 붐볐고 이태리, 스페인 등지에선 축구를 좋아하는 아저씨 그룹 투어까지 가세하여 시장바닥도 이런 시장바닥이 없었다. 경기도 없고 시즌 개막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는 것에 바이에른 뮌헨의 명성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구장을 나섰다. 구장에서 나오자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뜨거운 햇살이 몸을 조여왔다. 마치 초등학생 동생의 옷이라도 억지로 껴 입은 듯한 위태로움과 불편함. 나는 빠르게 햇살을 피해 그늘로 뛰어왔지만 불현듯 두통까지 내 뒤를 따라와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아직 까진 관광객 모드에 충실했던 나의 다리는 슈바빙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뜨거운 태양 아래 커다랗고 하얀 슈바빙은 나를 뜨겁게 녹이고 잘게 부수기 위해 나타난 진격의 거인 마냥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온몸에 열이 찼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컨디션이 돌아오길 초조히 기다렸으나 몸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손은 자동으로 프로그램이 된 로봇이라도 된 듯끊임없이 부채질을 했고 차가운 물로 손을 씻고 얼굴을 씻어내도 여전히 몸은 뜨거웠다. 하지만 바로 1시간 후 나는 국립극장에  예매해 둔 오페라를 보러 가야 한다.


‘티토 황제의 자비’

모차르트의 작품 중 몇 안 되는 정치적이고 전형적인 스타일의 오페라이지만 또, 매우 화려하기로 유명한 오페라. 허나 그 티토 황제는 나에게는 자비를 내려주지 않았다. 뮌헨의 첫날, 세비아의 이발사는 일찌감치 이발소의 문을 닫더니 이젠 황제도 나에겐 품을 열어주지 않는다. 두통을 참으며 극장 안에 들어갔고, 화려하게 차려 입은 관객들에 잠시 정신이 팔리기도 했으나 이러한 사치도 나의 열을 내리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인터미션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나는 극장을 뛰어나왔다. 나는 두통과 열에 크게 패했고 패잔병처럼 호스텔의 침대에 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해가지고 늦은 밤이 올 때까지 차가운 물로 씻고, 몸에 차가운 물수건을 대어가며 열을 내리려 노력했으나 열은 이미 한번 패한 패잔병에게 쉽사리 승리를 안겨주지 않는다. 결국 나는 유령같이 질린 얼굴로 호스텔을 뛰어나와 약국을 찾았다. 이미 늦은 밤이었고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의 모든 사물이 슬로우 모션으로 스쳐 가고 약국 창에 비친 내가 너무 초라해 보여 아이처럼 눈물이 터져나왔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나는 지나가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부끄러움도 잊은 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여행을  시작할 때 큰 포부는 없었지만 이토록 스스로가 나약했던가 싶어 이젠 분노까지 차 올랐다. 그때였다. 눈 앞에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걸어왔다. 나는 무작정 그들 앞으로 달려가 그들의 손을 부여잡았다.


“한국 분이시죠? 확실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이 내려가지 않아요. 너무 무섭고, 아픈데 약국도 문 닫고, 어떻게 해  야할지 모르겠어요.”


두 남자는 순간 서로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둘러본다. 그리곤 나에게 여러 증세를 묻더니 아마 열사병이 아닐까란 진단을 내렸다. ‘열사병’ 나 역시 아까 인터넷을 통해 나의 상태를 체크해 보곤 내린 결론. 혹시 물을 안 마시고 돌아다니진 않았나,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지 않았나, 그들은 차근차근 나에게 말을 걸며 큰 일 아니라고, 걱정 말라며 농담까지 던져 주며 나를 웃게 했다.

“한국 사람이 최고네요. 역시 타지에선 같은 나라 사람이 이토록 반가운가 봐요.”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여전히 뜨거운 몸을 안고 웃음을 뛰었다. 그들은 그들이 머무는 호텔에 진통제 및 해열제가 있다고, 아직 눈물을 글썽이는 나를 진정시켰다. 호텔 앞에서 한 명의 남자는 계속 말을 걸어 나를 진정시켰고, 또 다른 남자는 방으로 가 약을 가져왔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나보다도 어렸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약을 건네며 앞으로 여행을 위한 액땜이라 생각하라고 기운을 북돋아줬다. 그때 나는 너무 경우가 없어 그들의 이름 이라던지 연락처 조차 묻지 못하고 90도로 꾸벅 인사만 하곤 호스텔로 돌아왔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다. 약을 먹어도 괜한 불안감에 도통 잠이 오지 않았고, 열도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호스텔 리셉션에게 물어택 시를 불렀고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병원에는 나이트 근무 중인 인턴 의사가 있었다.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이한 간호사가 영어를 할 줄 몰라 크게 걱정했으나 의사는 영어를 매우 잘했고, 금발머리의 얼굴도 고운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나의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다.


나는 마치 크게 혼을 낸 후 다시 방으로 들어와 어깨를 다독여주는 엄마의 손길에 닿은 아이처럼 엉엉 울며 내가 어디가 아픈지가 아닌, 왜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내가 한국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힘들었던 것들, 지금 고민하는 것들 모두를 쏟아 내며, 그렇게 겨우 결심해서 온 여행인데 이렇게 아파서 너무 슬프고 두렵다고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그때 그녀는 나의 등을 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여행이 다 그런 거라고, 그리고 지금 외국이라 심리적으로 더욱 불안해서 그런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용기 있게 독일까지 왔는데, 이런 일로 한국에 돌아가면 안돼요. 앞으로 더 즐거운 일이 많을 텐데 그 것만 생각해요. 돌아가서 물 많이 마시고, 푹 자요. 내일부턴 날씨가 조금 서늘해진다고 하네요.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가더라도 물은 많이 마시고 쉬엄쉬엄 다녀요.”   


그녀는 아이를 달래듯 토닥토닥 나를 달래곤 진찰비도 받지 않고 택시를 불러 주며 말한다.

“여행 잘 해요! 본인이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잊지 말고! 물 많이 마셔요!”



한바탕엄살 가득한 큰 소동이 지나가고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떴다. 낮 12 시에가가운 시곗바늘과 어제까지의 열을 삼킨 구름들을 보고서야 나의 몸이 조금 나아졌다는 것에 안심했다. 여전히 머리는 어지럽고 미열이 몸에 남아 있었지만 기분은 어제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다. 이대로하루 푹 쉴까 싶기도 했지만 호스텔 안에서 방을 바꿔야 하는 날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급히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흐린 뮌헨 하늘 아래 머물 곳도 없이 우두커니 길 위에 섰다. 긴 회색의 도로와 회색의 하늘 사이에 회색의 티셔츠를 입고 공기에 물이 든 듯 잠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근처 작은 커피숍에 무작정 들어갔다. 그리곤 Wifi비밀번호를 물어본 후 어디로 가면 좋을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짐을 줄이느라 독일은 여행책자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이런 식으로 인터넷, 혹은 립셉션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다 문득 컨디션도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미술관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뮌헨에 2~3일 미만으로 머물기 때문에 미술관을 많이 방문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어쩌다 보니 5일을 뮌헨에서 머물게 되었고 3개의 미술관으로 이뤄진 뮌헨의 피나코텍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알 테, 노이에, 모던 3개로 이뤄진 피나코텍. 지금 와서 조금 후회는 되지만 나는 무리하지 않기 위해 알 테와 노이에 두 곳만을 방문하기로 했다.



북유럽에 가면모던 아트가 많을 거란 생각과 미술관에 한번 들어가면 3~5시간씩 머무는 내 패턴을 예상하건대 3 군대를 다 도는 건 불가능이었기 때문이다. 색채가 들어선 방도 있었지만 많은 방은 회색으로 이뤄졌고 추울 만큼 에어컨이 돌았다. 아직 미열이 남아있던 나에겐 그 어느 곳 보다 완벽한 장소였다. 그 차가운 미술관 밖에는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풀밭 위에 누워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을 재현한 것 마냥 옷차림이 가벼운 남녀가 미술관 앞 잔디밭에서 누워 있는 풍경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왕족들의 초상화와 역사적인 사실을 그린 그림들, 종교화를 지나 독일과 네덜란드 등지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지나고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다양한 나라의 유명 작품들이 걸린 방을 지나는 약 5~6시간의 여정을 끝마치고야 나는 그 곳을 떠나올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독일은 황량하리만큼 냉정한, 하지만 그 차가움을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꾸민 왕조로 기억되었다. 그 위에 떨어지면 그대로 몸이 관통되어 찢어 죽을 것 같은 뾰족하게 날카로운, 완벽한 구조의 성. 왜인지 몰라도 어렸던 나에게 독일은 이러한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었다. 아마 독일 문학의 영향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오늘은 독일 미술관 속 화려한 작품들과 냉랭한 분위기 덕에 많은 덕을 봤다. 몸은 많이 식었고 흐린 구름이 내 흐린 기운마저 삼켰던지 많이 개운해졌다.



그렇게 미술관을 나와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 목이 말라 들린 스타벅스에서 익숙한 뒷모습의 사람들이 보인다. 바로 어제 나에게 약을 건네준 사람들이었다. 너무나도 반가워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드는데 상대도 나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그들이 나의 은인이자 인연이었나 보다. 우리는 급히 통성명을 하고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들은 내일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했다. 아, 조금만 늦었어도 고마운 나는 이들을 영영 볼 수 없었겠다 싶어 안도의 가슴을 쓰러내린다. 반가운 그들에게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겁쟁이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것은 내 여행에서 세운 첫 번째 계획이자 작은 깨달음이다. 크게 용기를 내고 용사처럼  용감무쌍해지자는 건 아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닥쳐온 작고 큰 어려움 앞에 벌벌 떨며 울며불며 최악을 떠 울리지 말아야겠다는 것. 솔직히 어제 열사병이 돌았을 때 나는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란 생각까지 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소설의 여주인공은 자신의 건강을 자신의 마음가짐으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만큼 자의식과 의지가 강했다.


나는 나쁜 쪽으로 흑마술을 쓰듯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끌고 가는 능력이 있었나 보다. 혼자만의 어두컴컴한 상상으로 스스로를 불치병에 라도 걸린듯한 상황극속에 가둬넣곤 비운의 여주인공 마냥 세상 모든 것을 탓했다. 그 호들갑은결국 새벽 늦게 호스텔 립셉션 앞에서 울먹이고 낯선 독일의 병원에서 통곡을 하며 신세 한탄을 하게 했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낯부끄러운 해프닝을 만들었다.

용감해지자가 아닌, 겁쟁이가 되지 말자. 그 순간 뮌헨의 뜨겁던 날들이 벗겨지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짙은 어둠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뮌헨, 뜨거운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