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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30. 2015

나를 구해준 독일의 두 남자. 프랑코와 토마스 1

뮌헨에서 만난 남자 프랑코



나를 구해준 독일의 두 남자. 프랑코와 토마스.


뮌헨에서의 마지막 날은 그간 뜨거웠던 대지에게 사과라도 하듯 차가운 물을 쉴 새 없이 퍼부어주었다. 쏟아지는 굵은 물줄기를 보니 마구마구 행복해졌다. 여행지에서 비가 오면 많은 여행자들은 불만을 퍼 붓지만 더위를 싫어하고, 거기다며칠을 더위에 구워진 나의 몸은 빗줄기가 반가워 어깨 춤이 절로 나왔다. 그리곤 창가가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비 구경을 한 후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 낮잠까지 잤다. 그렇게 한바탕  온몸에 휴식을 수혈하고 나니 독일에 도착한 이래로 가장 활기가 넘쳤다. 이유 없이 해맑고 긍정적인 여행자의 웃음이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물에 섞여 다시 내게 돌아왔다.


프랑코를 만나기로 했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바로 어제 독일인 친구 토마스로부터 전화번호를 건네 받아 연락을 한 그의 친구. 우리는 6시 뮌헨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나는 조금 일찍 중앙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뮌헨 중앙역은 마치 만국박람회를 연상시킨다. 눈 앞을 오가는 기차들과 발 아래 두더지처럼 굴을 파는 지하철. 매콤, 알싸한 향의 이국의 향과 고소한 빵 냄새, 살짝 누릇한 고기 냄새, 교통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먼지들. 각기 각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과 그 만큼 다양한 여러 나라의 음식점, 시끄러운 기적소리가 하나의 뭉텅이 같은 울림 소리가 되어 이게 소리가 들리는 건지 이명이 온 건지 모를 엄청난 양의 소음, 거기에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이어진다. 매일 같이 지나친 중앙역 이지만 비가 오니 그 안의 소리가 더욱 울려 밀폐된 박람회장에 온 것 같다.

나는 인터넷 존이 아니면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약속한 맥도널드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사실 우린 사진조차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한국의 여자, 독일의 남자, 토마스의 친구란 보이지 않는, 느낌과 추측으로 무장한교집합 외엔 알아볼 수 있는 이유가 전혀 없었다.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둘러보니 갑자기 16도 까지 떨어진 날씨에 턱 끝까지 외투를 올려 입은 사람들이 촉촉하게 젖어 내 곁을 우르르 스쳐간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갔고 촉촉이 젖은 그들은 안개 속의  물방울처럼 내시야를 뿌옇게 흐렸다. 안개 속에 내가 실눈을 뜨고 있을 때 누군가의 가슴이 나의 앞에 섰다.



“혹시… 혜림이지?”

어눌하게 나의 이름을 발음하는 독일 남자. 키가 190센티미터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프랑코. 165센티인 내 앞에 그의 가슴은 벽처럼 섰고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프랑코?”


그는 예상 보다 미남이었고, 무엇보다 매우 커다랬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몇 개의 카페를 소개하며 어떤 곳을 가고 싶으냐고 물는다. 어색한 미소와 당황한 눈빛, 촉촉이 젖은 그의 어깨를 보니 처음 보는 친구의 친구, 거기다 동양인 여자란 사실에 조금 긴장을 한 기색이었다. 나 역시 매우 어색하고 꽤 당황했었기에 재빨리 어디에 있는지도, 무슨 가게인지도 모를 가게의 이름을 선택했다. 지하철을 타면 2 정거장이긴 했지만 우리는 비 오는 뮌헨의 길을 걷기로 했다. 우리가 왜 걸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지하철을 탈까 잠깐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동시에 걸어보는 게 어때?라고 말했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비 오는 뮌헨의 길을 걸었다.


우리 둘 다 우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쓰지 않았다. 아까보다 잦아든 빗방울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초면에 각자 우산을 쓰면 대화가 단절되어 더욱  어색해질 것이 뻔했기에 우린 암묵적으로 우산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역시 유명한 가게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아온  것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카페를 찾느라 동네를 뱅글뱅글 돌았다. 길을까는 동안 우리는 다시 한번 자기 소개를 했고 그는 자신이 내 긴 여행에서 처음으로 함께 무언가를 먹는 사람이란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빗 속을 뚫고 겨우 도착한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다. 우리는 허탈감에 가게 안을 기웃거리며 ‘여기가 진짜 유명한 곳이긴 한데’라며 아쉬움에 차 다른 곳을 알아보려는 프랑코의 옷을 잡아 당겨 바로 근처, 방금 지나쳐온 초콜릿 가게로 들어갔다.


서로의 이야기보단 교집합인 토마스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 빗물 사이로 노을은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사라졌고, 그새 검푸른 물감이 빗물을 타고 아래로 흩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는 나의 여행 계획을 들으며 무리하지 말 것을, 여유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신기하게도 독일인인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과 박찬욱의 영화를 좋아했다. 나 역시 그들을 좋아하기에 애매하게 떨어진 테이블의 거리만큼 어색하던 우리의 대화는 순식간에 수다로 변했다. 그리곤 역시나 우리의 대화 주제는 ‘일’로 이어졌다. 모엣 샹동 독일지사에서 일하는 프랑코와 이제 막 회사를 그만둔, 갓직장인을 벗어난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디에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외국에서 일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만약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외국에서 몇 년 정도 살아보고 싶어. 인생에 한, 두 번은 다른 나라에서 나른 언어와 문화, 사람들을 만나며 몇 년 살아보고 싶거든. 그런데 그러려면 그 나라의 졸업장이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말에 프랑코는 말없이 초콜릿을 추가 주문하더니 내 앞으로 내민다.


“자신감을 가져. 네 여행은 성공할 것이 분명해.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도 다 할 수 있을 거야. 네가 지금 부끄럽다고, 모자란다고 말하는 영어가 지금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끌어내고 있잖아? 시도하지 않은 것, 자신이 가진 것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 네 안의 것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꺼야. 그러니 그걸 믿고 잘 해내 봐.”



무언가 홀로 외로이 모노드라마처럼 논쟁하고 싸웠던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뜨거운 태양 사이 차가운 비가 몸을 깨워주었듯, 그의 말과 달콤한 초콜릿은 너무 많은 것을 넣어 과열된 열기로 차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던 속에 어슴푸레 보이는 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넣어 준 것 같다.


“응. 진짜 용기를 낼게. 나를 잘 믿고, 잘 따라볼게.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줘서 고마워. 앞으로의 여행이 정말 너무 기대가 돼.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잘 지내.”



뮌헨에서의 날들이 끝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창 밖엔 여전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고, 숙소 안 룸메이트들은 오늘 하루를 시작할 채비를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그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 앞으론 또 다른 소리에 귀가 깨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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