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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Sep 30. 2015

나를 구해준 독일의 두 남자. 프랑코와 토마스 2

에를랑겐에서 만난 남자 토마스

멕시코에서 온 키텔, 독일의 토마스,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


뮌헨에서 에를랑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에를랑겐. 토마스가 이야기하기 전 까진 그런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고, 사실 이 도시에 대해선 검색조차 해 보지 않았던 지라 낯설게 발음되는 새로운 도시에 대한 긴장감의 쓴맛이 입가 에돌았다. 톡 톡 톡 창문을 가볍게 두드려 오는 불규칙 적인 물방울에 집중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잠을 깨니 나는 이미 에를랑겐 근처 뉘른베르크에 다다랐고 앞으로 2~30분 후면 에를랑겐에 도착한다는 기사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창문에 비치는 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날 알아볼까?”

약 7년 만에 만나는 나의 오랜 친구. 나는 나의 얼굴을 연신 확인하며 내가 그때보다 얼마나 변했을지, 나 스스로는 실감하지 못하는 세월의 흔적을 살펴본다. 그러고 보니 창문에 맺힌 빗물들이 이젠 하나 둘 허공 위로 빨려 들어간다. 햇빛이 나고 여린 바람이 분다. 강렬한 햇살 한 줄기가 창문을 투과해 내 눈 위를 덮어 눈살을 찌푸릴 때 즈음, 나는 에를랑겐에 도착했다.    

버스 문 너머로 한없이 밝아진 하늘과 뺨을 데워오는 온기, 그리고 한적하고 조용한 공터 같은 버스 정류장에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살이 많이 빠졌고 수염으로 온 얼굴이 가득했지만 그는 분명 나의 친구 토마스였다.

“혜림!”

“토마스!!!”

포슬포슬 갓 한 밥의 수증기처럼 달콤 고소한 맛이 날것 같은 새하얀 구름, 낮지만 단단해 보이는 다홍빛 지붕이 있는 집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나의 오랜 친구가 달려와 나를 안아준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 안고 폴짝이며 호들갑스러운 인사를 했다. 그리곤 나의 짐을 끌고 그의 집으로 걸어갔다.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거리에는 차가 잘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탄다. 대학교가 많은 대학도시인 이 곳은 학생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차가 별로 없다고 했다. 우리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꽃이 모여 핀 공원을 지나 풀숲에 쌓인 작은 다리를 건너 집에 도착했다.

 

저 멀리 웃고있는 토마스... 어릴 땐 귀여웠는데!! 아저씨 다 됐어!


토마스의 집은 총 7명이 살고 있었다. 랜드로드인 엠지와 다른 학생들 5명.  그중 2명은 지금 여름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나는 3층에 있는 토마스의 방을 쓰게 되었고, 그는 1층 휴가 간 친구의 비어 있는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그의 플랏메이트를  소개해 주었고 랜드로드 엠지와 마침 집을 방문한 그의 여자친구 비비아나와도 인사를 나눴다. 엠지와 비비아나는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토마스의 친구가 멀리서 온다고 해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지.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러니 너희도 여기 와서 칼질 좀 해! 야채 좀 잘라줘”

비비아나의 말에 토마스는 토마토를, 나는 양파와 파프리카를 잘랐다. 우리는 정말 많은 양의, 커다란 멕시칸 브리또를 만들어 먹었다.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하고서야 우리는 각자 자기소개를 했고, 나의 여행 계획에 대해 질문을 시작했다. 독일인인 엠지와 콜롬비안인 비비아나는 나의 여행 계획을 듣더니 ‘북유럽’ 부분에서 깜짝 놀라 했다.


“북유럽에서 뭐하려고?”

한국에서도, 뮌헨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도 다들 북유럽을  생소해했다. 우선 물가가 비싸 배낭 여행자들이 쉽게 찾는 곳이 아니기도 했고, 특출 나게 유명한 건물이나 음식이 없어 다른 나라에 비해 여행지로서의 인기가 조금 낮다고 들었다.

“게으른 여행자가 되고 싶어서. 특별하게 유명한 곳이 없는 곳에서 특별함이 아닌 일상 같은 여행을 하고 싶어. 천천히 걷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북유럽에서 하는 공연이나 축제도 가 보려고.  그동안 혼자서 못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어. 혼자 등산하기 같은?”


“얼마나 가고 싶은데?”

“한 달 정도 돌고 싶어. 일단 독일에서 덴마크 가는 비행기는 예매해 둔 상태야.”

“음… 북유럽 물가가 엄청 비싸잖아! 그럼 많이 못 먹을 거야. 어서 많이 먹어. 여기 있는 거 다 먹어! 독일에 있는 동안은  살찌는 거 걱정 말고 엄청 먹어! 알았지?”

비비아나는 엄청나게 큰 브리또 하나를 만들더니 내 접시 위에 올렸다.


“혹시 그 영화 봤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줄리아 로버츠가 나왔던 영화 말야. 난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사실 영화도 그냥 그랬어. 그런데 그 타이틀이 너무 좋지 않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난긴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지만, 너도 저 타이틀처럼  여행하겠지? 멋지다!”

“응, 그 영화 봤어. 난 책이 더 좋긴 한데. 분명 여행 중 기도는 많이 하겠지? 그런데 난 종교인도, 무엇보다 어떠한 깨우침을 얻기 위한 거창한 여행은 아니라서…… 음…… 난 그럼 먹고, 마시고,  춤추라!로 할래. 많이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어때?”

“좋은데? 오늘 밤에도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 거 알지?”

“당연하지! 너무 기대된다. Doctor krapula라고 했지? 유튜브 영상만 몇 개 보고 왔는데 잘 놀다 올 수 있겠지?”

“엄청나게 멋진 콜롬비안 밴드야. 넌 그냥 가서 신나게 흔들면 돼!”


안녕? 에를랑겐! 안녕? Doctor krapula! 안녕? 키텔!

(에를랑겐, Doctor krapula 콘서트)


“자전거 탈 줄 알아?”

토마스의 말에 나는 당황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탈 줄은 알걸……?”

“잘 못 타?”

“그것보다, 음… 자전거가 너무 큰 거 같아. 그렇게 생각 안 해?”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딱 보기에도 엄청나게 큰 자전거를 내 키, 내 다리 길이로 탈 자신이 없다. 일전에 26인치 자전거를 타다가 길에서 크게 넘어진 적이 있어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나 의미적 거리는 반응에 토마스는 허허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자신의 뒤에 타라고 한다. 나는 더욱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걸어가려면 20분은 가야 해. 그리고 이 집 남자들도 많이 태워봐서 괜찮아. 그냥 타!”

나는 어색하게 그의 뒤에 앉았다. 어린 시절 이후로 누군가의 자전거 뒤에 앉아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어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에 나는 엉거주춤 걸 터만 앉아 양손을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럼 달린다! 꽉 잡아!”  

자전거가 작은 숲길을 지나고 다리를 지난다. 저 멀리 붉은 노을에서부터 불어오는 조금 서늘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쳤다. 어느 순간 나는 한 손으론 토마스의 허리를 꼭 부여잡고 한 손으론 날리는 머리카락을 부여 잡으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 초등학생 이후로 누구 뒤에 탄 거 처음이야!”

“여기 있는 동안은 계속 이렇게 다녀야 하니까 빨리 적응하고 꽉 잡아!!!”

토마스는  중간중간 나에게 장난을 친다고 양 손을 땠다잡았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그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길 가에 자리한 레스토랑, 파티오 아래 앉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며 웃는다.


“안녕하세요!!!!! 안녕? 에를랑겐!!”

나는 미스코리아라도 된 듯 핑크빛 물감으로 그려진 미소를 입술 위에 붙인 듯 미소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노을은 아주 낮은 곳까지 끌려 내려와 길을 비췄고 우리는 마치 레드 카펫 위를 달리는 무례한 사고뭉치처럼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도착!”

“우와!!! 놀자아 아아아 아!”


우리는 에를랑겐의 라이브 바에 다다랐다. 바 앞에는 약간 험상 궂은 인상에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한 Doctorkrapula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Doctor krapula. 그들은 콜롬비아의 YB 같은 위치에 있는 유명 락밴드 이다. 지금 독일 투어를 돌고 있는 중인 Doctor krapula를 보기 위해 에를랑겐에 살고 있는 모든 콜롬비안이 다 모인 느낌이었다. 여기저기 펄럭이는 국기들과 그들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연이 시작되고,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니쉬가 홀을 가득 매웠다. 사람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는 엉거주춤 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훑었다.


“어서 뛰어!!!”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나의 손을 끌어 무대 코앞으로 끌고 갔고 어깨동무를 하더니 용수철이라도 단 것처럼, 홀이 무너져라 뛰기 시작한다. 마치 Doctor krapula와 동등하게 눈을 맞추겠다고 모두 가맹세라도 한 듯 용맹하게 뛰어 오른다. 그리곤 곧 최면에라도 걸린 듯 모두가 다 같이 넋을 놓고, 눈을 감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노래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몸치에 박자치인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될 대로 되라식의 춤은 여기 흔들, 저기 흔들, 콜롬비안들의 몸에 치여, 손에 이끌려요사스런 춤으로 변했다.

공연이 끝나고 Doctorkrapula가 무대에서 내려와 팬들과 인사를 시작했고  그중 베이스가 갑자기 나를 가리키더니 엄지를  치켜올린다.


“혜림! 너 춤 잘 춘다고, 눈에 띄었다고 말하는데?”

옆에 서 있던 비비아나가 스페인어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깔깔 웃으며 나에게 그의 말을 전했다. 그리곤 베이스는 나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와 영어로 인사를 나눈 후 무려 셀카를 찍어 주었다. 그의 팬들은 모두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소리친다.


“그들이 콜롬비아에서 얼마나 슈퍼스타인지 넌 모르지? 콜롬비아에 선언제나 큰 홀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오늘 같이 가까이서 보는 건 정말 상상할 수도 없어! 우린 러키야! 그들은 진짜 최고라고!!!”

분주하고  정신없었던 Doctorkrapula의 콘서트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낯선 청년이 문 앞에 서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오! 키텔!!!!!”

토마스는 계단 끝에서부터 날아가다시피 달려 가더니 그를 부둥켜안는다. 그들은 스페인어로 인사를 나누더니 다시 한번 서로를 껴 안는다.

“혜림, 이리 와봐! 여기는 키텔, 내가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머물렀던 하우스의 아들이자 친구야. 키텔도 막 회사를 그만두고 하와이에 서핑을 배우러 갔다가 독일 여행을 하려고  지난주에 막 도착했어. 키텔, 지금 베를린에서 온 거지?”

“응,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려서 여기로 곧 장 왔어! 진짜 반갑다!”

이로서 우리의 에를랑겐 여행단이 모두 모였다. 모두들 무언가 하나를 버리고, 아니 새로움을 찾기 위해 익숙한 것을 내려 놓고 이 곳에 모였다. 그렇게 에를랑겐의 첫날은 시계 바늘 한번 확인하지 못한 체  정신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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