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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Jan 26. 2016

노르웨이, 생에 처음으로 홀로 떠난 등산길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와 뤼세피오르드 '프레이케스톨렌'

프레이케스톨렌에서 만난 강아지 :)  여기까지 고생했다!

생애 첫 홀로 등산길 


야간 기차를 타고 스타방게르에 도착했다. 아침 7시 30분, 침대 칸도 아닌 일반 좌석에 쪼그려 앉아 9시간 넘게 달려왔더니 온 몸이 욱신거린다. 스타방게르의 역은 무척이나 작고 이른 아침이라 지금 막 도착한 여행자 외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역을 나서기 보단 차가운 날씨를 예감하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두터운 옷을 꺼내 걸친다. 나 역시 집업 후드를 꺼내 입고 론리플래닛을 펼친다.


“어찌 역인데 동네 지도 하나가 없네…”

일전에 예약 해 둔 비즈니스호텔의 위치를 찾아보지만 론리플래닛의 지도가 어찌나 조그만지 호텔의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온몸에 힘이 풀려 숨이 죽은 배추처럼 절여져 앉아 한숨을 쉬다 보니 주변 여행자들이 하나 둘 역을 떠나간다. 마음이 조금 조급해져 나 역시 무작정 캐리어를 끌고 역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아침 공기는 냉장고 안의 성애처럼 파르르 부스러져 피부에 닿는다. 오슬로 보다 조금 더 추워진 날씨에 나는 옷 깃을 더욱 단단히 여민다. 

역 앞, 커다란 호수를 지나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왼쪽으로 가야 할지 갈림길에 선다. 지도를 이리 보고 저리 돌려 보아도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 답답하기가 짝이 없다. 이른 아침, 이 작은 동네엔 길 위에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는  또다시 머리를 긁적이며 앞의 갈림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지도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기된 방향으로 길을 정했다. 호텔 설명에 페리를 타기 좋은 위치에 호텔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찾았다!” 

동네가 작아서인지 약간 허무할 만치 빨리 호텔을 찾았다. 아직 체크인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나는 짐을 맡기고 호텔 화장실에서 가볍게 세수를 하고 운동화로 갈아 신곤작은 배낭을 메었다. 여행 내내 가벼운 에코백을 들고 다녔다. 하지만 등산엔 역시 등산용 배낭! 어느 은행 관련 행사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줬던 배낭은 작지만 등산 가방 구실을 톡톡히 한다. 


주머니마다 초콜릿과 과자, 음료수를 채워 넣고, 손수건과 카디건을  집어넣는다. 호텔에서 근처 편의점으로 가 샌드위치와 커피, 과일을 샀다. 북유럽 여행에서 좋은 건 우리나라처럼 편의점이 많다는 것이다. 비록 마트에 비해 꽤 비싼 편이지만 급할 땐, 오늘처럼 이른 아침 시간엔 꽤 편리하다. 이제 노르웨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었던 뤼세 피오르드의 프레이케스톨렌 등반을 할 시간이다. 


평소에 등산을 즐기는 편이 아니고, 학생 때 까진 아빠와, 직장인이 되고선 회사 동료들과 올랐던 산행이 다인 나에게 노르웨이에서 등산을, 그것도 홀로 등산을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진정 낙오되지 않고, 즐겁게 잘 다녀올 수 있을까? 나는 엊그제 미리 노트에 적어둔 페리 티켓 사는 방법과 버스를 타는 법을 다시금 숙지하고 페리 선착장에 섰다. 하나 페리 선착장에 서자 마자 머리가 탈탈 비워지는 느낌이다.



“지금 곧 페리가 출발해요, 여기 펄핀락 행 페리+버스 종합 왕복 티켓을 사세요!”

분명 유럽여행 카페에서 종합 티켓을 사지 말라고 했었고 나는 그 점을 숙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둥지둥 밝게 웃음을 짓는 빨간 패딩의 여인에게 종합티켓을 사고 페리로 뛰어 들어갔다. 페리에 탑승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창가에는 물살이 위로 튀어 오르고 하얀 거품이 첨벙 인다.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 둘 페리 안 매점에서 핫도그와 과자 등을 사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대부분 가족, 혹은 연인, 친구들. 혼자 탑승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뭐 등산 가면 혼자 온 사람도 많겠지. 그리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생에 처음 홀로 가는 등산길에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창 밖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늘 이참으로 맑고 깨끗하다. 마치 컴퓨터 CG로 빛을 더하고 색감을 짙게 만든 후 우리의 배를 합성이라도 한 듯, 새파란 바다와 블루 레모네이드 같이 청량한 하늘은 어제의 새벽 비행기, 야간 기차의 피곤을 잊게 한다. 호텔에 들어섰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몸이 무거워 등산을 하루 미룰까 고민했다. 하지만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다음 날, 스타방게르는 아침부터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헬싱키 룸메이트 유키코가 몰래 내 가방에 넣어둔 메이지 초코렛 ㅎㅎ


스타방게르에서 탄 페리가 40여분 만에 타우에 도착했다. 이제 버스를 타고 프레이케스톨렌에 도착하기만 하면 오늘 등산 준비가 모두 끝난다. 타우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1대를 놓치고  그다음 버스의 마지막 탑승자로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는 만석이었고 나는 의자를 붙잡고 서서 차창 밖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 아래 이젠 녹음이 짙다. 



내 체력이 별로 좋지 않은데, 중간에 너무 힘들면 어쩌지? 보통 올라가는데 2시간 걸린다던데 나는 3시간 걸리는 거 아냐? 3.8 키로면 생각보다 많이 걸을 필요도 없겠는데? 내려오는 게 더 힘드려나? 내 운동화로 괜찮을까?(이때 나는 무슨 생각인지 -_-;; 등산화나 트레킹화가 아닌 나이키 에어맥스를 신고 있었다...)


 포장도로이긴 하지만 좁고 굴곡진 산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려본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벼운 등산복 차림이다. 하지만 나는 긴팔 티셔츠+후드 점퍼+청바지+일반 운동화, 가방 안에는 초경량 패딩과 카디건이 있다. 누가 봐도 그냥 동네 공원에 산책을 가는 복장이라 등산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드디어 버스가 멈추고 프레이케스톨렌에 도착했다. 



3.8km, 많이 길지 않은 코스다. 노르웨이의 5대 피오르드 중 하나인 뤼세피오르드, 그리고 노르웨이 3대 하이킹 코스인 트롤퉁가, 쉐락볼튼 그리고 프레이케스톨렌.  그중 그나마 난이도가 낮은 편인 프레이케스톨렌은 ‘제단 바위’로 알려진 펄핏락까지 길이 가파르고 돌이 많기로 유명하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따라 등반을 시작했다. 


분명 엄청나게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마와 콧등, 인중과 등에는 땀이 흐른다. 나는 결국 후드를 벗고  허리춤에 묶은 후 다시 길을 걷는다. 걷다 보니 헥헥 거리며 지쳐 땀을 식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낸다. 그 와중에 7살도 안 된 것 같은 여자아이가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오른다. 하지만 지친 기색도 없이 매우 편안한 얼굴이다. 이 어린 소녀를 보니 나도 오기가 생긴다. 

“좀 더 속력을 내야겠다.”


등산길...  돌무더기들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40분 후 나는 바위 위에 몸을 펴서 말린다. 뚝뚝 떨어지는 땀과 헐떡이는 숨. 내가 얼마나 저질 체력이었는지, 왜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던지 후회가 밀려왔다. 가방을 열어 주스 한 병을 한 번에 마셔 버렸다. 내가 평균 속도로 왔다 해도 아직 반 이상 남았을  등산길. 나는 저 멀리 나무 사이에 가려진 길을 보며 크게 다시 숨을 내 쉬곤 가방을 메고 길을 걸었다. 


노르웨이에서, 그것도 등산을 하면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등산길에 들을 음악도 잔뜩 준비했고, 산을 걸으며, 그것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절경을 뽐내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깨달음을 얻으리라 예상했다. 서정적인 음악에 감상에 잠기고, 우수에 찬 노르웨이의 숲길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보려 했다. 



허나현실은 음악은커녕, 아무 생각도 없이 땀을 줄줄 흘리며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나마 생각이라는 건 ‘얼마나 남았을까?’ 혹은 ‘저 꼬마 나보다 더 잘 걷네? 나도 좀 더 빨리 걸어야겠다’ 같은  쓸모없는 유치한 경쟁심 정도? 잠시 여유가 생기면 땀을 말리고 초콜릿을 부셔먹으며 잠깐의 달콤한 행복을 느끼는 게 반복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더니 저 멀리 사진으로만 접했던 그림 같은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앞으로 튀어나온, 하지만 무척이나 가파른 절벽. 그 뒤로 두둥실 떠 있는 구름들과 스산함이 느껴지는 검푸른 피오르드의 웅장한 광경. 나는 눈밭의 강아지처럼 갑자기 솟아난 기운에 폴짝폴짝 신나게 앞으로 달려갔다.



도착했다!!!!!!!!



저질 체력이지만 이 동네 초등학생들에게 지지 않으려 열심히 걸었던 나는 약 2시간, 평균 시간 안에 펄핏락에 다다랐다. 가파르게 꺾인 절벽 위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놀라움보다는 드디어 도착한 종착지란 기쁨에 모두들  함박웃음을 짓는다. 


나 역시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카메라를 맡겨 인증 사진을 찍었다. ‘내가 드디어 이 절벽 끝에 왔다.’ 입가에 웃음이 터져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아찔한 절벽 끝에서도 위험하고  두렵기보다는 이 곳에 왔다는 행복감에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나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리 내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나가는 외국인이 찍어준 한 컷! 찍는 내내 오금이 저렸다 ㅎㅎ 


성찰도, 깊은 생각도, 아름다운 감상도, 내 맘을 적실 음악도 없었지만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행복했다. 머리 속이 텅텅 비고 체력이 탈탈 바닥이 났지만 텅 빈 머리와 마음엔 웃음이 가득 찼다. 이 곳은 자연을 향한 도전도, 마음을 수련하고 단련시키는 곳이 아닌,  온몸을 비워 생각 없는 웃음으로 채워 주는 곳이었다.     


      


자연은 가끔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우리를  혹사시키지만, 아름답게 저 멀리서 반겨주는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그 손길에 닿고자 우리 스스로 불나방처럼 혹사하여 그 속에 뛰어든다. 그래, 나는 잡생각과 조잡한 마음을 버리려 온몸을 녹초로 만들고 대신 눈과 가슴을 투명이 정화하려 이 곳 노르웨이에 왔다.



바위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맛은 평범했지만 배가 고파서인지 순식간에 입 속에서 사라졌다. 샌드위치로 부족했던지 나는 과자 한 봉지를 마저 비우고서야 아쉬운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아니,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새벽이슬처럼 공기가  젖어드는 게 느껴져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내려오는 길은 거의 1시간 만에 내려왔다. 등산화가 아니어서 발목에 통증이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후련한 마음에 산토끼처럼 폴짝이며 신나게 아래로 내려갔다. 내려 가는 길, 한국인 부자와 마주쳤고 그들은 나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었다. 


“20분만 더 올라 가시면 도착하실 거예요.”

“뭐? 20분?!”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은 놀란 토끼 눈, 아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을 하곤 20분이란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나를 바라본다. 양 뺨이 붉게 상기된 소년은 아들보다 더 지쳐 보이는 아빠를 바라본다. 아빠는 크게 한 숨을 쉬며 가파오는 숨을 고른다.


“야, 아들! 20분이래! 20분이면 우리 도착이야. 힘내!”

“아빠가 힘 쫌 내!”


태권도 대련이라도 하듯 부자가 공격을  주고받는다. 프레이케스톨렌 아래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아까 물에 젖은 공기가 기분 탓은 아니었나 보다. 다행히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었고, 타우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스타방게르로 돌아왔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진다. 분명 엄청나게 피곤하고 다리가 저려옴에도 불구하고 두 눈은 말똥 말똥 빛이 난다. 따뜻한 물에 차갑게 식은 몸을 데우고, 티셔츠 2~3개의 손빨래까지 끝내고 나니 이제 진짜 오늘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체력의 1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써 버린 것 같다. 피로로 몸은 무겁지만, 그 안은 깨끗이 비워졌다. 내일부터의 여행은 새로운 내  몸속에 저장되고 기억될 것이다. 나는 두꺼운 이불에 몸을 돌돌 말고 기분 좋게 웃는다. 


“오늘 고생했다!!! 굿 나잇 조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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