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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Feb 02. 2016

엘사가 살았던 겨울왕국, 베르겐으로 가는 길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버스


안녕 스타방게르


저녁이 되고 나는 이제 스타방게르를 떠나 베르겐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딱 한 달 전, 세일 가격이 뜨자마자 구입했던 버스라서 그런지 웬만한  시외버스에선 다 와이파이가 된다는 노르웨이임에도 불구하고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버스였다. 거기다 4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마침 이어폰도 고장이 났다. 나는 도대체 4시간 반 동안 무얼 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된다.


스티브 잡스의 훌륭한 업적이래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디지털 중독증인 것 같다. 인터넷이, 핸드폰이 안 되자마자 불안해하다니. 한 15분 이상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불안한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터널 하나를 지나가는 순간 나의 모든 고민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투명이 사라진다.


하루에도 몇번을 흐렸다 밝았다 했던 스타방게르


우리는 애써 돈을 들여가며 여행을 가고, 돈을 주고 동물을 구경하고, 돈과 노력을 주고 아름다운 영화를 산다. 하나 막상 눈 앞에 버스 밖, 스쳐가는 저 경이로운 광경을 두고 나는 왜 그토록 고개를 숙이고 양 옆의 시야를 가리지 못해 분노하고 불안 해 했던 것일까?


마치 현미경 아래 누운 잎사귀의 가녀린 세포처럼 갈라져 하늘의 빛을 물줄기처럼 전달하는 아름다운 구름, 10대 이후 단 한 번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하지 못한자연의 푸른 잎새, 거의 10년 만에 나는 세상의 푸른 잎새 속 하얀 줄기와 빛나는 물줄기를 본다. 그리곤 길 위의 하얗고 건강한 양들을 보며  오래전 읽어 기억이 흐릿해진 산골소녀 하이디를 떠올려 본다.



잠시 후 버스에선 곧 페리에 탑승하며 페리에 탑승한 동안엔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고 안내 방송을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쿠쿵소리와 함께 버스는 페리 위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 매서운 바닷바람이 온 머리카락을 하늘 높이 춤추게 한다. 외투를 붙잡고 덜덜 몸을 떨며 선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보라색, 남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뒤엉켜 번진 아름다운  밤하늘과 뭉크의 ‘절규’ 속 피처럼 붉은 석양이 서로의 몸을 뒤 섞고 있다.  


뭉크는 피오르드 위로 쏟아지는 붉은 석양의 넘실거리는 혀를 보며 피로 난무한 하늘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지금 노르웨이로 와 그 뭉크가 보았다던 노르웨이의 석양을 본다. 지금까지 노르웨이의 밤은 백야로 인해 밝기만 했고, 북유럽이 짙은 밤의 무도회를 목 빠져라 기다리는 귀부인의 화려하게 꾸민 화장처럼 곱게만 보였다.


잠시 후 나는 다시 버스에 탑승한다. 이제 내가 가는 곳은 엘사의 고향 ‘베르겐’이다. 오슬로 공항에서 들려온 외국인 꼬마들의 렛잇고가 생각나 금세 마음이 밝아진다. 자! 어서 엘사의 고향 아렌델, 아니 베르겐으로 가자.


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베르겐에 도착했다. 꾸벅이던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텅 빈 공터 같은 앞 길이 보여 조금 막막해졌다. 예약해 둔 호스텔은 버스 터미널에서 약 15분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저 어둠뿐이다.



그래서일까? 베르겐의  첫인상은 조용한 날카로움 이었다.


조용한 밤, 불빛 하나 없는 베르겐의 호수를 지나 캐리어를 끌고 가는 길이 어찌나 아찔하던지 그 엄청난 낯섦에 손이 조금 떨려왔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부자 동네 중 하나라는 베르겐. 이곳의 차갑고 조용한 밤, 냉정하고 날카로운 첫인상은 마치 굳이 선을 그어 나와 너의 차이를 증명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양반의 집 문 앞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15분이 걸린다는 거리를 20킬로의 캐리어를 끌고 8분 만에 돌파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늦으면 쫓겨나기라도 하는 아랫것처럼 말이다.


밤 사진을 찍지 않아서.... 베르겐의 초저녁 사진 한장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6인실 방안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취침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나마 문을 열고 조심스래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쳐 가볍게, 조용히 인사를 하곤 설사 소음이 날까 조심조심 겨우 자리를 잡았다.


후다닥 빠르게 화장실에서 츄리닝 한벌을 꺼내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 안에 눕는다.  귓가에는 오슬로 공항에서부터 들려오던 미국인 꼬마들의 렛잇고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일은 날씨가 좋으면 좋겠다. 따뜻한 아렌델 왕국을 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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