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Feb 05. 2016

음악 영웅 ‘그리그’와 편리왕 ‘킹스 오스 컨비니언스'

노르웨이 베르겐을 거닐다

음악 영웅 ‘그리그’와 베르겐의 편리왕 ‘킹스 오스 컨비니언스’.

(그리그 생가와 런치 콘서트, 브리겐, 플뢰엔 산)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는 하늘이 흐리다. 아니, 비가 정말이지 억수같이 내린다. 부랴부랴 우산을 들고 비옷을 입고 호스텔 밖으로 나오니 노크라도 하듯 굵은 물방울이 내 몸을 톡톡 두드린다.


나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곤 호스텔 건너편 베르겐 인포메이션 센터로 걸어갔다. 인포메이션 센터 안에 들어서자 비를 피해, 혹은 비 때문에 무거워진 옷차림과 손으로 무거운 표정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수많은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번호표를 뽑아 들고 대기자를 위한 의자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내 양 옆에는 커다란 키의 아저씨들이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노르웨이 넛셀 안내책자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리그 런치 콘서트에 가기 위해이 곳 인포메이션 센터에 왔다.

나는 노르웨이의 대표 음악가인 그리그를 잘 알거나 큰 팬은 아니다. 그저 책을 읽거나 마음을 차분히 하고플 때 즐겨 들었던 솔베이지의 노래 정도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리그의 나라에서 그의 생가에서 진행하는 런치콘서트를 꼭 가 보고 싶었다. ‘그리그’의 나라에 왔으니  그곳을 가지 않을 수가 없다는 나의 작은 열망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곧이어 내 순서가 되었고 나는 콘서트 표를 샀고 30분 후 그의 생가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표를 산 후 곧장 구입한 커다란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오물오물 씹으며 나는 버스 안 가이드에게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다. 젊은 가이드는 그리그의 생가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리그에 대해 최대한 설명해 주려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와 그의 아내 니나 그의 가족, 그의 교우관계, 음악 교육 등. 그리그가 그 당시 저스틴 비버 수준으로 인기가 많았다는 가이드의 말에 버스 안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다. 무척이나 즐거운, 그리고 설렘으로 가득한  웃음소리가 이층 버스 안을 가득 매운다.


내 앞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은 천진한, 아니 여전히 말괄량이 같은 미소를 뛰어 보이고 계셨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두 분은 친구이며 클래식 그리고 그리그의 팬이라고 했다.

순간 뒤를 돌아보니 버스 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앞의 할머니들은 “젊은이가 그리그를 좋아하다니 훌륭하네!”라며 손에 과자를 쥐어주신다.


후에 피아니스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너도 한, 35년 후에 또 그 버스를 타고 있는 거 아냐? “

“아, 진짜. 그럼 얼마나 좋을까?”


베르겐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 정도 달려 도착한 그리그의 생가는 작지만 따스한 분위기가 넘친다. 가볍게 생가를 돌아보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 보니 기다리던 콘서트 시간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중 하나라는 이 곳, 그리그 생가의 작은 공연장. 쪼르르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어디에 앉을까 고개를 두리번 거리니 등 뒤에서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들 여기 오면 앞에 안 앉으려고 하시던데, 앞이 진짜 좋아요. 부끄러워 말고 앞에 앉으세요!”

나는 말 잘 듣는 관광객으로서 앞에서 2번째 줄에 자리를 잡는다. 내 옆으로 한 무리의 가족이 목도리를 풀며 자리에 앉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주장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격식에 맞게 소담히 꾸민 피아니스트, 그 뒤로 펼쳐진 정원, 호수, 숲, 구름, 바람, 그리고 아름다운 베르겐의 빗물.  음악뿐만 아니라 이 공간, 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들의 시너지에 하늘은 갑자기 고맙게도 잔잔하게 여린 햇살을 흩뿌려 주었고 바람에 부대끼는 커튼처럼 살랑살랑  노란빛을 흔들어 준다. 이 아름다운 공간이 그간 힘들었던 내 마음을 따스히 어루만진다.


아아… 주책 맞게 또 눈가에 눈물이 그렁이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여행에 온 이후, 나는 감동하고, 감탄하고, 기뻐하는데 표정과 눈물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입 밖으로, 눈밖으로, 손으로 흘러 내보냈다. 연주가 끝나고 나는 끊임없이 박수를 친다. 피아니스트가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것 마냥 크고 힘차게 끊임없이.


그렇게 내리던 비는 콘서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뜨거운 햇빛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보다 더 매서운 추위를 몰고 온다.


연 중 273일 비가 내린다는 베르겐의 8월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당황시켰다.

우화 속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해와 바람처럼 내 옷을 벗겼다 입혔다를 반복하는 이 곳의 날씨. 8월 중순이지만 길에는 패딩과 코트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플뢰엔산에 오르기 전 들린 수산시장의 귀여운 고래고기 판매 청년 ㅎㅎ


수산시장의 생선꼬지와 콜라... 다 합쳐서 거의 3만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싸....

오슬로에서 어느 정도 날씨에 대해 적응을 해서인지 나 역시 가죽재킷 안에 얇은 패딩을 껴 입었다. 베르겐 시내와 브리겐을 한 바퀴 돌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몸을 데우다 보니 문득 저 멀리 이어져 있는 케이블이 눈에 보인다. 아까 마트에서  사 온 과일을 호스텔에 가져다 놓다 마주친 룸메이트가 추천한 플뢰엔산과  그곳으로 가기 위한 케이블 카이다.


베르겐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는 그 아름다운 플뢰엔산으로 가기 위해 케이블카 티켓을 구입하고 바로  탑승한다. 잠깐의 햇빛이 저 멀리로 사라진 베르겐은 급히 내 손을  부여잡곤 높고 추운 제대로 끌고 간다. 너무 춥다는 나의 칭얼거림을 손으로  틀어막고 잠시만 참으라며 어르달래던 베르겐은 잠시 후 “짜잔!”하고 가린 내 눈을 풀어준다.



“어? 이게 뭐야?”

가파른 산을 오르며 우리를 호들갑에 떨게 한 케이블카에 비해 플뢰엔 산에서 내려 본 광경은 기대보다 그 크기도 포장도 부족한 선물처럼 나에게선 조금 평범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옆에 서 있던 일본 관광객들이 ‘스고이!’를 외치며 달려갈 때도 나는 그저 무표정으로 ‘아’ 정도의 작은 신음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한 20분 정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혼자 하늘과 눈 아래의 도도하신 베르겐을 내려 보았다. 약간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미된 바람이 불어와 나는 몸을 움츠린다.

“추운데 괜히 아이스크림 먹었네.”


왠지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산 속에서 구입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나는 입 속에 가득한 차가움과 몸 밖에서 불어오는 추위에 오들오들 떤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열을 조금 내고자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린다.


나는 추워 죽겠는데... 저기...안추우세요? ㅋㅋㅋㅋ  


“아!”

마치 우중충한 옷을 벗고 나니 수수하지만 고운 피부와 미소를 지닌 처녀의 진짜 맨 얼굴이 보이는 것처럼 눈에 조금 익숙해진 베르겐의 전경은 차가운 바람에 좀 전과는 다른 좀 더 낯선 맨 얼굴을 보여주어 나를 새로이 감탄게 했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살았던 이 곳, 노르웨이의 제2의 도시, 한자동맹의 중심지였던 그 화려한 시절을 보여주는 컬러 풀한 브리겐으로 인해 나는 화려함만을 쫒고, 화려함만을 기대했다.



하지만  베르겐, 이 소박한 처녀의 모습은 오래 보아야 더 아름답고, 오래 보아야 더 감동적인, 그런 은근함과 끈질김을 가지고 있다. 결국이 처녀는 그렇게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어제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마주했던 고고함과 도도함을 품은 베르겐은 수줍음과 낯가림으로 또다시 이해된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1시간을 넘게 이 곳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비싸게 왕복표를 끊어놓고 내려갈 땐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다. 나는 걸어 내려가는 걸 선택했다. 베르겐 출신의 서정적인 포크 듀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음악과 멤버 중 한 명인 얼렌드 오여의 음악을 들으며 노르웨이의 숲길을 산책한다.




길가에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고양이들이 귀여워 잠시  주저앉고,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기분이 너무 좋아져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따라 불러본다. 어찌나 크게 따라 불렀던지 가끔 마주치는 주민들이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길가에는 오래전 트롤과 마녀가 이 곳에 살아다는 베르겐의 전설을 암시하듯 ‘마녀를 만나도 사진을 찍지 마세요!’ 같은 귀여운 경고판이 설치되어져 있다.

베르겐 시내의 은은히 빛나는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가득 담고 길을 내려온 후 나는 이제 많이 어둑해진 조용한 바닷길을 걸으며 한 낮의 꿈결 같은 조용한 풍경을 다시 떠올려본다.


손을 잡아주길 간절히 원했던 소녀, 옷자락이 바람결에라도 스치길 바랬던 조용한 소녀같은 그런 수수함과 수줍음이 가득한 베르겐. 나는 그렇게 또다시 노르웨이의 숲을 헤맸던 것이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

노르웨이 피오르드를 감상을 도와주는 관광 프로그램. 어떠한 루트로 피오르드를 감상해야 하는지, 어떠한 교통편을 타야 하는지, 지역별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따로 관광 가이드가 있는 게 아니고 넛셀 구입 시 해당 교통편 비용을 일부  할인받을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넛셀을 구입하는 사람보다는 루트를 참고만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족 단위, 단체 관광시 유용하다.


베르겐의 풍경을 등지고... 한 컷


매거진의 이전글 엘사가 살았던 겨울왕국, 베르겐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