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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Feb 25. 2016

아름다운 보랏빛 밤의 도시, 헬레쉴트

아름다운 보랏빛 영화가 상영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보랏빛 밤의 도시, 헬레쉴트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보기 위해서는 헬레쉴트로 가서 골든루트를 밟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이다. 

허나 플롬에서 헬레쉴트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아침 일찍부터 짐을 싸고 플롬 호스텔을 나왔다. 


막상 바로 떠나려니 아쉬워 짐을 잠시 리셉션 옆에 세워두고 다시금 호스텔 주변을 거닐며 크게 숨을 들이 내쉬어 보곤 그제야 짐을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이제 버스를 타고 송달로 가서 스케이로 간 후, 다시 스트린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 헬레쉴트에서 내려야 하는 복잡한 여정이 기다린다. 


버스 정류장에서 본 풍경

버스를 기다리러 나가니 어제 본 한국인 모자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그 옆에 2명의 동양인 여성과 2명의 외국인 남성들이 서 있다. 알고 보니 한국인 자매와 스웨디쉬 청년들은 모두 헬레쉴트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코 앞까지 다가와 선 송달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기가 무섭게 몇 분 후 버스는 배에 오르고, 또 잠시 후 다시 길을 달리고 그렇게 2시간을 달리고 보니 송달에 도착했다. 송달의 휴게소 비슷한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곤 곧장 스케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또 버스에서 내려 스트린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 밖 풍경들, 점점 흐려진다.
아침엔 그렇게 맑더니 갑자기 하늘이 흐려진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어있다니... 노르웨이가 춥긴 춥구나


 비가 조금 내리고 흐리긴 하지만, 다른 날 보단 춥지 않다. 그렇게 버스에서만 실려 다니다 보니 아침 9시 15분 버스를 탔던 우리는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헬레쉴트에 도착했다.

 

“으아, 진짜 오랜만에 하루 종일 버스 탔네요.”

“노르웨이가 참 넓긴 넓네요.” 

“그래도 여기 공기 좋은 것 봐요! 다들  똑같은 유스 호스텔로 가는 거죠?”


고양이가 기지개를 펴듯 입을 한 껏 벌려 하품을 하고, 두 팔과 다리를 아래 위로 늘린 체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에 쌓인 여독을 푼다. 버스가 높은 지대에 내려주긴 했지만 우리는 짐을 끌고 좀 더 높은 언덕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걸어갔다.


헬레쉴트에 도착!


여름에만 문을 여는 헬레쉴트 유스호스텔은 산 속의 작은 오두막처럼 고요했다. 갑자기 예닐곱 명의 손님이  들이닥치자 리셉션을 지키고 있는 젊은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살짝 비추더니 어느새 다시 능숙하게 우리의 예약정보와 신원정보를 확인한다. 


우리는 차례로 방을  배정받았다. 다들 2명씩 여행 중이고, 노르웨이 호스텔 중 꽤 가격이 싼 곳이라 그런지 더블룸을 예약한  듯했다. 나는 홀로 4인실 도미토리 방의 키를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덕 위에서 폭포소리를 따라 걷다보면 한적한 마을이 나온다.


작은 방, 하지만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짐을 풀고 호스텔을 나와 먹을 것을 찾으러 길을 나선다.

텅 빈 거리에서 폭포 소리를 따라 길을 걸어 내려가니 작고 한적한 마을이 나온다. 


립셉션에서일하는 청년에게 슈퍼의 위치를 물었을 때, 그가 헬레쉴트는 은퇴자들을 위한 은퇴촌이라 매우 조용하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시간이 멈춘 듯 바람소리와 물소리 외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터벅터벅 슈퍼를 찾다 보니 아까 함께 버스를 타고 온 한국인 자매들과 마주쳤다. 


“뭐 드시러 오셨나 봐요?”

“네, 오늘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혹시 저녁 드실 거면 같이 드실래요?”


자매의 반가운 초청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종일 말도 거의 하지 않고 버스에 실려 다녔더니 말도 하고 싶고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 누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다. 작고 한적한 마을에는 레스토랑의 초이스도한정적이었다. 우리는 문을 연 2개의 레스토랑 중 한 곳을 선택하여 들어가 메뉴판을 열었다. 


“딱히 노르웨이 음식을 팔거나 그러진 않네요. 다 파스타, 피자.”

“그냥 무난하게 피자랑 케밥 같은 거 시켜 먹죠.”  


저녁을 함께해준 자매! 

28살, 30살. 자매의 나이는 내 나이에서 플러스 마이너스였다. 회사 휴가에 맞춰 노르웨이에 여행을 왔다는 자매가 신기해 나는 어떻게 노르웨이를 휴가로 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프레이케스톨렌 사진을 봤어요. 둘 다 저긴 가야 해!라고 소리쳤지 뭐예요.”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아래 꽤 오랜 시간 수다를 떨었다. 그리곤 슈퍼로 가 장을 보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좋은 밤 보내세요!” 


내일 도전해야할 골든루트 포스터가 호스텔 벽에 보인다.


자매와 헤어지고 나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호스텔 옥상에 나가 섰다. ‘와삭’ 이로 부서지는 과자 소리가 마치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의 발자국 같다. 늦은 11시에도 밤하늘과 헬레쉴트는 보랏빛 색안경을 낀 듯 어둡진 않지만 오묘한 한 가지의 색으로 그려진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도 비가 올 거라고 했다. 간간이 폭우도 쏟아진단다. 

하나 이제 나는 콩깍지가 씌었나 보다. 

이 앙칼지고 변덕스럽고 우울하기만 한 10일간의 연인을 너그러이 온몸으로 안아 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밤이다. 

무성영화처럼, 소리가 없고, 지지직거리며 흔들리는 화면처럼 쏟아지는 비가 내리는 곳. 


아름다운 보랏빛 영화가 상영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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