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이렇게 추진력이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 이주공사 여러 곳에 전화도 해보고 이민 박람회도 다녀오면서 본격적으로 이민 갈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민 박람회까지 함께 다녀온 남편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나에게 미세먼지에 대해 왜 이렇게 둔감하냐고 화를 내던 그 입에서 어느 순간부터 ‘미세먼지’란 말이 쏙 들어갔고, 미세먼지를 넘어 한국에 대해 하던 불평까지 쏙 들어갔다. 하루종일 부정적인 말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한국의 환경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고 솔직하지 못한 태도에 실망스럽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동안 이민에 대해서 나와 많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눴었지만 그는 나 만큼 진심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진짜 실행에 옮길 거라는 생각도 전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에 처음 적는 거지만... 남편은 부정적인 말들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하루 종일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그와의 날들이 너무 괴로웠다. 웃을 일이라고는 전혀 생기지 않는, 부정적인 공기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는 마치 부정적인 에너지를 끊임없이 생성하고 내뿜는 존재 같았다. 미세먼지를 시작으로 직장과 업무환경 거기에서 이어진 정치주제까지 즐거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난 세상일에 관심 없는 사람이 될 뿐이었다. 차라리 그와 따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가 마음이 편했다. 어쩌다 그가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긴장이 되었다. 얼마나 집안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들까... 가장 편안해야 하는 곳이 집인데 나는 집이 편하지 않았다. 부모의 부정적인 말들은 아이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부정적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원래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인건지 아니면 현재 처한 환경과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연애할 때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던 터라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달라진 그의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내가 콩깍지가 씌어서 연애기간과 신혼생활동안 알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만약 원인이 미세먼지 혹은 직장생활에서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 때문이라면 지금 그런 날들을 끊어낼 방법을 찾아냈는데, 갑자기 발을 빼려는 그의 모습이 새 삶을 꿈꾸게 된 나로서는 너무 답답했다.
처음엔 최선을 다해 남편을 설득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편이 힘든 이민초기를 견뎌내기에 더 평화로울 것 같았다. 에너지를 서로 채워주는 부부가 아니라 오히려 깎아먹는 관계라면 차라리 좀 떨어져서 자기 일에 각자 최선을 다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남편이었기에. 그래서 만약 남편이 끝내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아이들만 데리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2018년 10월 14일 잊을 수 없는 일요일. 아주 아주 오랜만에 H.O.T 콘서트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콘서트는 원래 일찌감치 가서 굿즈도 사고해야 하는 건데 나는 이 날 콘서트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같은 날 삼성역에 있는 호텔에서 한 이주공사의 세미나가 열린기에 가보기로 했다. 특히 캐나다 이민에 관한 세미나였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남편에게는 콘서트에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는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는 콘서트가 열리는 주 경기장을 지나 삼성역에서 내렸다.
나는 사실 엄청난 길치다. 길을 한 번에 찾는 일은 불가능하고 같은 길도 여러 번 맴돌다 겨우 바른 길을 찾아간가. 오른쪽과 왼쪽은 늘 반대로 생각하기 일쑤다. 운전면허 주행시험에서도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을 해서 점수가 깎였었다. 이런 내가 복잡한 삼성역 미로를 잘 뚫고 호텔을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 날은 분명 신이 나를 도왔음에 틀림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었는데 단 한 번도 길을 잘못 들지 않고 곧바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도 만만치 않게 여러 갈래의 복도가 있었지만 긴가민가하며 코너를 돌고 나니 행사장 간판이 보였다. 한방도 이런 한방이 있을까. 분명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데려다줬으리라.
이민에서 가장 관건은 영주권이다. 쫓겨나지 않는다는 신분의 안정성을 뜻하는 영주권을 얼마나 빠르게 취득할 수 있는지가 이민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이민을 간 초기에는 서툰 언어로 인해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다. 이민은 그냥 호기심이기만 했던 남편이 이민에 적극적인 나의 의견을 반박하며 늘 논점이 되었던 부분이다.
영주권 그리고 무얼 먹고살 것인가.
그런데 이 날 신의 이끌림으로 도착한 세미나에서는 이런 나의 질문에 답도 내려 주셨다. 캐나다가 이민자를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에서 영주권을 미리 받아서 출국하고 도착하면 일단 다닐 직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직장에서 일손이 부족해서 영주권을 지원해 주고 이민자를 데려오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꺼려할 노동일이었지만 나는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 얻기 어려운 영주권도 주고 일자리고 준다는데 얼마나 감사한가.
콘서트 시간이 다가와서 결국 세미나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오빠들을 보러 주 경기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캐나다에 가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결심을 굳히고 그 이주공사에 전화를 걸어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으니 자리가 생기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이주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자리가 하나 있다고 하겠느냐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을 유치원에 내려주고 바로 강남으로 향했다. 남편 몰래 계약서를 작성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