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고민해 보게 된 계기는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미세먼지가 점점 심각해지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던 때였다. 사실 나는 미세먼지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피부로 잘 느끼지도 못했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나라를 바꿔 이사를 할 게 아니라면 그냥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동차 공회전을 하지 않는 정도였다.
하지만 내 남편은 미세먼지에 매우 민감했다. 먼지가 심한 날엔 목이 아프다며 바로 알아챘고, 매일같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사실 너무 듣기 싫었다. 웃으며 살기도 모자란 날들인데 얼굴만 보이면 부정적인 말만 하고 있으니 얼굴에 찡그린 주름이 굳어져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잘 씌우라는 잔소리는 만날 때마다 하는 인사였다. 그래서 내 차에는 항상 마스크 한 통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을 매일 야외활동을 시키는 유치원을 찾아 보냈고 유치원 차가 오지 않는 거리라서 왕복 40분씩 운전을 하는 엄마였다. 아이들은 한옥에서 개량 한복을 입고 수업을 했고, 매일 같이 뒷산 산책을 하고, 마당에서는 텃밭 활동, 가을엔 김장까지 했다. 이런 야외 활동을 하는 유치원이었기에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뛰어놀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그마저도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면 야외활동을 하지 말아 달라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실내 활동의 비중이 높아져 하루하루 아쉬워하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꼭 마스크를 씌우라는 남편의 잔소리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첫째 아이는 중이염을 달고 살아서 항생제도 계속 복용했다. 한 달째 약을 먹던 날, 아이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화가 난 나는 이 놈의 약은 낫지도 않는다며 처방받은 약을 쓰레기통에 죄다 버리고 한의원에 가서 한약을 지어 먹였다. 그 역시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증상은 확실히 줄어들어 이후로 한의원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의학을 신뢰하지 않는 남편은 내가 한의원에 돈 쓰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둘째 아이 역시 폐렴에 두 번이나 걸렸고, 한 번은 숨 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이러다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공포를 느끼며 아이만 쳐다보고 있었던 날도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아이들의 숨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귀를 기울이곤 했다.
아이들의 기관지 문제를 보며 나 역시 미세먼지에 대해 관심이 생겨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결론은 역시 그냥 받아들이고 살거나 이민을 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민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 삶에는 내가 추구하던 가족의 모습이 있었다.
당시 남편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서고 밤 열시가 다 되어야 집에 들어왔다. 자정 가까이 되는 날도 많았고, 회식이 있는 날은 더 늦었다. TV에서 보았던, 아이가 “아빠도 놀러 오세요”라고 말하던 박카스 광고 장면을 나는 우리 집에서 직접 보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독박육아 하는 하루를 살았다. 아이들의 보모이자 선생님, 친구이자 운전기사, 엄마 역할을 모두 하며 하루를 보냈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과외활동 장소로 운전하고, 밥을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재우며 반복되는 날들 속에 살았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시간이 이대로 흘러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 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하루종일 집을 나가있고, 그렇게 남편이 벌어 온 돈은 아이들의 학원비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그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나는 공부하는 아이들과 돈 버는 남편을 위해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운전을 하겠지.
싫었다.
이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가족이 무엇인지 그 울타리와 역할을 잊게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아닌가.
가족은 일정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나이에 맞는 학습을 해야 하고, 밖에서 뛰어놀며 꿈을 키워야 하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이런 당연한 것들이 한국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현실로 느껴졌다. 미세먼지에서 시작된 이민이라는 고민은 가족이 무엇인지, 어떤 가족의 모습을 꿈꾸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어갔다.
열심히 찾아내 얻은 정보와 나의 긍정적 상상력이 더해진 다른 나라에서의 일상은 한국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달랐다. 학원이 없으니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거나 학원 숙제를 해야 할 일이 없다. 오후 4시에서 5시면 퇴근을 하니 남편도 나도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영어교육을 위해 아이와 부모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야 하지만 영어를 쓰는 나라에 가면 영어는 모국어처럼 사용하게 되니 여기에서도 많은 에너지를 아끼는 셈이 된다. 물론 이런 삶을 살게 되기까지는 적응 기간이라고 불리는 일정 시간과 노력과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적응기간을 잘 버텨내고 꿈꾸던 가족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나는 캐나다를 선택했다. 영어를 쓰는 나라, 공기가 맑은 나라, 인종차별이 비교적 적은 나라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나는 이민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