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어머니 혼자 돈을 벌며 가계를 이끌어나갔다.
소년은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어린 나이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보템이 되고자 했고,
매년 돌아오는 어머니 생일에는 늘 뜻깊은 선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바르게 성장한 소년은 어느덧 16살이 되었다.
어김없이 어머니 생일은 돌아왔고, 이번엔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던 소년은 '선 레코드'라는 곳에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 어머니께 드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마주하게 되는데 음반 제작과 배급사업을 하던 '선 레코드'의 설립자, 샘 필립스에게 음반 발매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평소 가수를 꿈꿨던 소년은 그 제안은 바로
받아들이고 1956년 <Heart Break Hotel>이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 인기스타로 발돋움한다.
젊은 시절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다. 그는 1950년대, 흑인의 전유물이었던 로큰롤을 들고 나와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보수적이고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있던 기득권층은 백인인 엘비스가 검은 머리로 염색하고
현란하게 골반춤을 추는 것을 비난하기 바빴다.
백인 망신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다 시킨다며
그를 창피해했지만, 젊은 세대는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늘 어려운 이웃을 돕고 기부에 앞장섰다.
리무진 기사에게 선물로 리무진을 준 건 유명한 일화!
특히 그는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술, 담배는 일절 하지 않았고,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백인이지만 흑인 음악을 주로 했던 만큼 인종차별에도 앞장섰다. 더 대단한 건 전성기 때 큰 인기를 뒤로하고 군대까지 다녀옴.,
(까방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독일에서 탱크병으로 근무한 엘비스
그 뒤로도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으나
건강에 이상이 생겨 42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갑작스러운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
팬들은 믿지 않았다. 심지어 언젠가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엘비스가 도넛을 먹고 너무 살이 쪄서
(실제로 도넛을 엄청 좋아했음) 소속사에서
일부러 그를 숨기고 있는 거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사람이 없는 외진 곳에서
칩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진실 일리는 없다. 허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이 떠도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면 많은 팬들이 모여 추모회를 열고
그의 노래는 전 세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는 죽었지만
그는 아직 우리 곁에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