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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Sep 04. 2022

#2. 교환일기와 우정 반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했던 조악한 물건들과 엇갈리는 마음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친구 무리가 생겼다. 

그전에는 다른 친구 무리와 교류가 자유로웠는데 4학년 때부터는 친구 무리 간 경계가 분명해지고 무리 안에서의 결속력도 끈끈해졌다. 평범하고 얌전한 애들 무리, 공부를 잘하는 애들 무리, 예쁘고 인기 많은 소위 잘 나가는 애들 무리.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무리가 나뉘었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섞여서 노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평범하고 얌전한 애들 무리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고 방과 후의 여가 시간을 학교 운동장, 아파트 놀이터, 서로의 집을 오가며 보냈다. 

아진, 지윤, 진주, 그리고 나. 

우리는 주로 놀거리가 많은 지윤이의 방에서 부루마블 게임을 하고 놀거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문구점에서 파는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은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끼다 보면 어느새 갈색으로 녹이 슬어 가던…) 

작은 큐빅이 박힌 은반지를 나눠 끼며 변함없는 우정을 맹세했다. 


우정 반지, 우정 열쇠고리, 우정 다이어리, 우정 머리 끈… 

그 당시에는 참 친구들끼리 똑같은 무언가를 같이 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맺은 특별한 인간관계, 서로가 특별하다는 감정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정의 증표를 과시하며 서로의 형제자매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냈다. 


그런 우리들은 5학년에 올라갔고 각자 다른 반이 되었다. 

다른 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우리들의 관계는 한동안 끈끈하게 유지됐다. 

여전히 함께 나눈 우정 반지를 소중히 끼고 다녔고 방과 후 여가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다른 반이 되자 서로에게 또 다른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견고할 줄로만 알았던 우리들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반이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유치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감정 컨트롤이 능숙하지 못하고 솔직 그 자체였던 우리들은 서로가 아닌 새로 사귄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걸 견디지 못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에게 받은 편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들의 얼굴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래도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인 갈등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다가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 인생의 그 어떤 시기도 이때만큼 솔직하고 빈번하게 타인과 갈등을 겪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왜 나한테 서운해했고, 친구들과 다퉜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무심한 타입의 아이였던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기존 친구들을 서운하게 했고, 다 같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 마음에 모두 같이 우정 친구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우정 친구, 특별한 사이는 그렇게 하자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반지를 나눠 끼고, 서로 교환 일기를 쓰고 하면 다 같이 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안일한 아이였다. 

이 당시 편지들에 담긴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나는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서운함, 미안함, 불만, 누군가에게 유일하고 최우선의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 

그래도 무난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는데 편지들을 다시 읽는 순간 나는 과거 꼬맹이들의 모습과 그때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결론적으로 이 엇갈리는 감정의 행방은 어떻게 정리되었냐 하면… 

그냥 다 끝이 났다. 

친구들끼리 싸우고 안 봤다는 의미의 끝이 아니라 여전히 함께 방과 후의 시간을 보내고 놀았지만, 우정 반지를 나눠 끼거나 교환일기를 쓰는 행위가 중단됐다. 

그리고 이때 이후 나는 어떤 친구들과도 우정의 증표를 나눈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녹이 스는 우정 반지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게 우리의 우정이라는 것과 우정은 맹세하고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마음을 다 주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구 사귀는 법을 배워 갔다. 

옛날 편지들을 읽어보다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지윤이의 방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교환일기가 기억이 났다.

이제 영원한 우정은 믿지 않은 어른이 됐지만 한 번씩 궁금해진다. 


우리가 썼던 교환일기와 함께 나눠 꼈던 우정 반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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