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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Sep 14. 2022

#3. 인생 최초의 배신

마음의 자리는 깨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초등학교6학년 때의 일기.그때나 지금이나 친구와의 갈등은 여전히 힘들다.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기억한다. 

당시 나를 포함한 4명의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특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주은, 진주와는 매일 방과 후의 시간까지 같이 보낼 정도로 친했다.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가장 많은 갈등이 생기는 관계가 삼각관계라고 생각한다.

셋 중 좀 더 잘 맞는 둘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하나는 반드시 서운해지고 만다.

주은, 진주, 나 이 셋의 관계에서 서운해지는 사람은 나였다.

사실 진주와 나는 4학년 때부터 친했기에 나는 당연히 나와 진주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주는 나랑 놀 때보다 주은이와 장난치고 놀 때 더 편하고 즐거워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에 내심 서운함을 느꼈던 기억난다. 나랑 더 오래 알았고 우리 둘이 먼저 친했는데……


서운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셋은 큰 다툼 없이 잘 지냈다.

오히려 좀 더 친해서인지 티격태격했던 건 진주와 주은이었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어떨 땐 관망하고 어떨 때는 화해를 유도하는 역할이었다. 학교에서는 정선이를 포함한 4명이 그리고 방과 후에는 3명이 시간을 보냈다. 그즈음은 서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예전처럼 길게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리들 사이에 짧은 절교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이해되지도 않는다.

이런 식이었다. 셋이 편을 먹고 한 명에게 그간의 불만이었던 점 서운했던 점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세명에게 사과를 하기 전까지는 같이 다니지 않는다. 어떤 계기로 이 희한한 행위가 시작된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초의 시작은 주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정선이한테 서운하고 쌓인 게 있어서 말해야겠다. 이런 느낌의 절교 행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순번 돌아가듯 절교 행위가 계속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음 절교를 당한 사람은 주은이었다.

정선이에게 그렇게 했으니 너에게도 쌓인 걸 말해야겠다는 심보였는지 정선이의 복수였는지 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부터 이 행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지? 친구들끼리 왜 서로를 괴롭혀야 하지? 그리고 곧 나나 진주의 차례가 오리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진주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저러지 말자고. 나도 너에게 저러지 않을 테니 너도 그러지 말라고. 우리는 4학년 때부터 친구이지 않냐고 우리는 서로 그러지 말자고.

진주는 내 의견에 동의했다. 애초에 왜 시작된지도 왜 하는지도 모르는 절교였고 괴롭힘이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그러지 말자고 굳게 맹세했다. 


어릴 때 책을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마음’이었다.

‘마음’이라는 게 정말 실체가 있는 장기인 건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 건지 내 가슴에 손을 짚어가며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마음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진주와 우리끼리는 서로 그러지 말자는 맹세를 한지 이틀도 지나지 않았을 때 주은이와 진주가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간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네가 사과하지 않으면 친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못된 말을 해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주은이보다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있던 진주를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최초의 배신이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방바닥에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깨진 마음이 저릿저릿해서 고통이 멎을 때까지 방바닥에 마음을 딱 붙이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절교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절교 놀이에 가까운 행위였기에 며칠 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도 주은이와 함께 진주의 집 앞에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다행히 우리들의 절교 놀이는 서로에게 한 번씩 상처를 준 뒤 더 이상 반복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나는 깨진 마음의 위치를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내 마음이 깨진 최초의 순간이었고 깨지고 나서야 마음의 자리를 깨닫게 되었다.


언제 절교 놀이를 했냐는 듯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친한 친구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졸업을 한 뒤에는 서로 다른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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