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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Oct 21. 2022

#4. 다른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나만의 세계가 생기다

우리들은 똑같지만 다른 교복을 입고 한 교실에 앉아 있었다.

중학교 때 받은 편지들. 그 당시의 고민들과 지금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아 조금 웃었다. 


정말 이상한 점은 두 세계의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 두 세계가 너무나 가깝다는 사실이다. (중략)

분명 나는 밝고 진실한 세계에 속했지만(나는 내 부모님의 자식이었으니까!)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는 곳마다 다른 세계가 있었다. 심지어 가끔은 그런 금지된 세계야말로 내가 가장 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밝은 세계로 귀환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데도 마치 덜 아름답고 덜 재밌는,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_소설 데미안 ‘두 세계’ 중에서


소설 '데미안'은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내적 혼란과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절묘하게 담아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백 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소설 속 싱클레어의 혼란과 그 당시 나의 혼란이 너무도 일치해 정신없이 소설에 빨려 들어가 읽었었다. 그때 받은 강렬한 느낌은 많은 것이 흐릿해진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나조차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혼란스러운 내 정신상태를 그대로 표현해 놓은 책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의 세상은 가족과 비슷한 환경에 사는 친구 몇 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나와 연관되어 있었고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세상이 더 이상 내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한 교실에 앉아 있었지만 모두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의 세상을 감추고 통일시키기 위해 교복을 입혀 놓았지만, 교복은 디자인만 똑같았을 뿐 전혀 다른 옷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주위에서 물려받거나 얻어 입어 사이즈가 맞지 않는 낡은 교복을 입었고, 누군가는 그 당시 가장 좋은 브랜드 유명 아이돌이 광고하는 몇십만 원짜리 교복을 입었다. 

디자인은 같았지만 미묘하게 원단의 질이나 색감 등이 차이가 나서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어떤 브랜드의 교복을 입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 아이들은 그런 차이에 매우 민감했다. 


중 저가 브랜드의 교복을 입었던 나는 두 세계에 반쯤씩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좋은 브랜드의 교복을 입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 친구들의 무리에 반쯤 속해있으면서 물려 입거나 가장 저렴한 가격대 브랜드의 교복을 입는 친구들의 무리에 반쯤 속해있었다.

한쪽에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외고를 준비한다고 방과 후에 쉴 틈 없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사교육은커녕 원룸보다 작은 단칸방에 살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미묘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리고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교복보다는 더욱 확연하게 아이들 간 계급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처럼 아이들 성향에 따라 어울리는 무리가 나뉘는 수준이 아니라, 선 후배 간 그리고 같은 학급 내에서도 소위 잘 나가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확실한 계급이 생겼다. 

누군가 위에 군림하는 아이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비행과 폭력을 무기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혔다. 


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갔던 평화롭고 안정적인 세상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세상의 주변인이 되었다. 

세상에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따라가기에도 너무 벅찼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 앞에 서서 들어갈 타이밍을 계속 놓치면서,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다른 입구를 찾아 나서지도 못한 애매모호한 상태로 나는 문 앞에서 드나드는 사람들만 관찰하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했던 나는 낯선 세상에 발을 막 내디딘 여행자와도 같았다. 

이 시기에는 친구들과의 갈등보다는 친구들이 속해 있는 세상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데 급급해 특별히 기억나는 친구들과의 갈등은 없다. 

그리고 사실 아직 인생 최초 배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불행히도 한번 깨지면 재생이 불가능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고 간신히 붙여놓은 마음이 깨질까 무서워 예전보다는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사귀게 되었다.


마음이 깨지면서 생긴 균열 속에 파고들어 ‘나’를 숨기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 시간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이 깨진 균열 속에서 나만이 속해있는 작은 세상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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