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중간 퀴즈나 인터뷰 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최종 선택으로 짝이 되길 희망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짝대기를 보낸다. 이 사랑의 짝대기를 보내는 순간이 이 프로그램의 백미였는데 서로의 마음의 방향이 같아서 모두 최종 커플이 되는 날이 있었는가 하면, 한 커플도 탄생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A가 B의 마음을 알았다면 C에게 사랑의 짝대기를 보내지 않고 B에게 보내서 커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서로의 마음의 과녁에 닿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랑의 짝대기들이 어린 마음에도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통신수단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싸이월드, 인스타, 트위터가 만들어지기 이전 세대들의 관계 맺는 방식은 일대 다가 아닌 일대일의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전화하고 편지 쓰고 메일을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소통을 했던 느낌이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서랍 속에 넣어 둔 편지들과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메일 사이트에 접속해 메일들을 다시 읽어봤다.
너무 많이 시간이 흘러 버려서 지금은 그때의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과거를 멀찌감치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편지와 메일들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보다 더 솔직하게 속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눴었고, 그저 평온하게 별일 없이 지나갔다고만 기억하고 있던 그 시절에도 많은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 관계에 대한 욕망이나 기대는 크게 줄어든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주고받아 관계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낮아지고 더는 친구 문제가 인생의 우선순위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친구 문제가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큰 고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고민에 묻혀 버렸다)
이때는 참 감정에 솔직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친구에게 보낸 메일도 아마 그랬겠지...
중학교에 진학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는 친구들이 뒤섞여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된다. 같은 무리에 있지만 그 무리 안에서 관계의 시작점과 깊이가 다른 것이다.
A와 더 친해지고 싶은데 A에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B가 있다. 중학교 때까지는 아직 단짝, 일대일 관계에 대한 욕망이 강한 시기이기에 갈등과 고민이 생긴다. A와 더 친해지고 단짝이 되고 싶지만 이미 B와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서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
부끄러울 정도로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나이는 이때가 거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누구와 더 친하게 지낸다고 싸우고 삐지고 서운해하고......
중학교 때 친구 관계는 그런 엇갈리는 우정의 짝대기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우정의 짝대기가 성사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의 우정의 스튜디오는 그 당시에도 지금도 결국 성과 없이 끝났다. 엇갈린 우정의 짝대기는 나의 마음만을 싣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때 날아간 마음과 함께 일대일 관계를 강하게 욕망했던, 영원한 친구를 찾아 헤맸던 나의 마음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음이 사라진 것이 슬프지만은 않다.
그때처럼 솔직하고 뜨거운 욕망을 갖고 살았다면 사는 게 더 고통스러웠을 테니까.
지난 메일과 편지들을 읽어보면서 지금은 그저 나와 우정의 짝대기를 주고받았던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