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어로 표현해도 적확하지 않은, 한때 나의 전부였던 사람.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무리 중 A와 B라는 친구가 있다.
무리들 중에서도 A와 B는 단짝이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다들 관계가 소원해지는 와중에도 둘만은 꽤나 친하게 지냈었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B는 A에게 더 이상 너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그 이후로 A와 B의 관계는 끊어지고 말았다.
최근에 오랜만에 A를 만났다.
B와 관계가 끊어진 이후 나도 A도 우리의 대화에서 B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했었다.
그래서 그날도 B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다 문득 A가 B의 안부를 물었다.
B는 잘 지내고 있냐고.
B의 일방적인 관계 단절 통보에 꽤나 마음 앓이를 심하게 했던 A를 잘 알고 있어서 나는 A가 먼저 B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야 좀 괜찮아졌나 싶어서 안심이 됐다.
A에게 B의 근황 이야기를 전해주자 A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동안은 B 때문에 마음이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야 마음이 좀 괜찮아졌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B는 자기에게 첫사랑 같은 친구였던 것 같다고…
이렇게 관계가 끊어지긴 했어도 B가 언제나 잘 지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A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아주 오랜만에 큰 키에 주근깨가 매력적이었던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의 나는 이미 여러 번의 상처를 통해 영원한 친구라는 환상이 깨진 상태였다.
그 나이 또래들처럼 적당히 친구들과 무리 지어 어울려 다니던 나는 한 친구에게 느끼는 나의 감정이 다른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기존에 내가 갈망했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거나, 깨지지 않고 변치 않는 관계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감정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었다.
내가 이 친구를 굉장히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차라리 떨리고 설레었다면 이 친구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런 감정과도 결이 달랐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인데 그렇다고 감정의 강도가 약하지도 않았다.
이 감정을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해봤지만 그 당시의 나는 딱히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친구와는 다른 반이 되었고, 그 친구가 나의 시공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면서 나의 감정의 강도와 비중도 차차 줄어들었다.
A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때 내가 이 친구에게 느꼈던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단어가 뭘지 고민해봤다.
Friendship이나 Love라는 단어로는 적확하게 그 감정을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비슷하지만 어딘가 부족하거나 넘쳤다. 고민 끝에 내린 내가 내린 결론은 Everything이었다.
당시 그 친구는 나의 Everything이었다.
내 마음이 혼란했던 그 시기에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자 혼란을 공감해주고 곁에 있어준 사람.
가족이자 친구이자 연인이자 나 자신조차 멀미 나던 내 혼란한 시공간에 머물러줬던 든든한 동반자였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그 친구가 빠져나간 자리는 곧 다른 사람들과 관계들로 조각조각 채워졌다.
마음의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은 늘어 갔지만 그때만큼 마음이 충만하고, 오롯이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던 경험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한 번도 없었다.
Everything.
정말 순수하게, 어떤 계산도 없이 내 마음이 향했던 대상은 네가 유일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이상을 더 산다 해도 그런 관계는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