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는 사람과는 끝까지 안 맞는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중 고등학교 때의 친구관계를 떠올려보면 1:1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어떤 집단, 어떤 무리에 들어가냐도 꽤 중요했던 같다.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를 들고 다닌 것도 아닌데도 호그와트의 마법모자의 판단보다 더 정확하게 아이들은 각자의 성향과 비슷한 친구들끼리 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특별한 사건사고가 없는 한 1년은 미우나 고우나 같이 부대끼며 가족보다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같이 공부하고 밥 먹고 놀고 싸우고 놀러 다니고 고민을 나누고 웃고 울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관계는 굉장히 특수하다. 그때는 싸우고 난 후 절교를 하네 마네 해도 정말로 그 친구와 관계를 단절한다거나, 친구들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무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집단활동을 하지 않기에 조금 바뀐 것도 같지만 적어도 라떼는 그랬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같은 반 친구 현지와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현지의 단짝이었던 윤주와도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 윤주는 단짝 현지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게 썩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아마 1:1로 만났다면 나는 윤주와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향 자체는 비슷했지만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마트에서 할인 판매하는 과자 모음 같은 구성으로 현지는 윤주를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던 소희를 이 무리에 포함시켰다.
현지는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사려 깊은 친구였다. 이 친구와는 평생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친구에 대한 기대치가 거의 사라졌던 그 시기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욕심나는 친구였다.
그리고 당연히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던 소희 역시 누구보다도 편안하고 잘 맞는 친구였다. (나중에서야 이게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문제는 윤주와의 관계였다.
나와는 달리 소희는 윤주와 바로 친해졌지만 나는 윤주와 친해지려고 노력을 해도 쉽게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다 같이 시간을 보낼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가끔 윤주와 둘만 있어야 할 때는 몹시 어색했다...
정말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사이였다. 같은 친구 무리에 속해 있었다는 게 신기했을 정도로…
힘들었던 중 3 사춘기 그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기를 우리는 때로는 서로의 어둠을 나눠 가지며 때로는 그냥 함께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변화 없고 희망 없는 그 시기를 함께 맥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고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현지는 일찌감치 취업을 하겠다며 실업계고등학교로 진학, 소희는 다른 지역 학교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가장 최악의 조합이었던 윤주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현지는 나에게 윤주를 잘 부탁한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난감한 기분이었다.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안심되고 기쁘기 마련이겠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둘이 같이 보낸 시간이 적었음에도 윤주와 내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차라리 다른 학교에 진학했으면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었을 텐데…
너와 나는 서로 맞지 않으니 우리 이제 친구 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한번 친구가 되면 쉽게 관계를 깨기 어렵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새로운 친구 무리가 생겼다. 호되게 사춘기를 겪고 와서인지 그 아이들의 가벼움과 쾌활함 평범함이 좋았다.
그 속에서 나 또한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적당히 어울리고 싶었다.
다른 반에 있는 나의 단짝 친구.
사연을 모르는 친구들은 윤주를 그렇게 불렀다. 새로운 친구 무리가 생겼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3년 내내 꽤 많은 시간을 나는 윤주와 함께 보냈다.
현지의 부탁이 있기도 했고 그래도 친구였기에 윤주와 함께 했을 뿐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이 불편함을 해소해보고자 대화도 많이 해보고 이 친구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수록 괴로워졌다.
아무리 대화를 해도 서로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정말 솔직히 윤주와 멀어지고 싶었다.
차라리 부탁을 받지 않았더라면, 나 혼자 이 학교에 진학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도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만데…
윤주를 멀리 하고 싶어 질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윤주는 내 인생 최초로 만난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마 지금 윤주를 만났다면 나는 그 아이를 피해 갔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친구라는 관계는 깨지 않고 졸업을 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 나, 윤주, 소희는 간간히 만남을 이어갔지만 이후에 쓰게 될 어떤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예전처럼 함께 만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애초에 서로 잘 맞지 않는 관계였기에 윤주와 나 둘만 만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1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서로의 인생에서 주변인이 되어가다 이제는 몇 년에 한 번 엑스트라 정도로만 스쳐 지나가는 관계가 됐다.
그래서 서운하냐 물어보면 솔직히 아니다.
이젠 예전처럼 맞지 않는 관계까지 다 끌어안고 갈 만큼 내 마음이 여유롭지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서로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끝까지 윤주와는 맞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다시 그 시기로 돌아가도 친구관계를 깨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윤주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거고, 맞춰가려고 하지도 않을 거고 그냥 너무 마음을 쓰진 않을 것이다.
친구라는 타이틀로 묶여있더라도 안 맞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한때는 그 감정 자체가 옳지 않다고 느꼈었다. 안 맞아도 이해하고 맞춰가야 친구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안 맞는 사람은 끝까지 안 맞는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