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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Mar 10. 2023

#8. 인생 친구는 고등학교 때 만난다

교도소의 수감자들처럼 모든 걸 함께 했던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진다.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척언니가 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언니는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이런 말을 종종 해줬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면 되니 어릴 때는 실컷 놀고 하고 싶은 거 해라. 

인생 친구는 고등학교 때 만난다. 


나는 언니의 말을 마치 예언처럼 믿고 따르고 있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하면 돼 라는 언니의 말을 방패 삼아 중학교 때까진 정말 열심히 놀았다) 


고등학교 때의 학교 생활은 이전의 학교 생활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춘기라는 격동의 파도를 겪고 와서인지 혼란하고 거칠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상태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능’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주어지기에 3년 동안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많은 시간을 학업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는 친구문제나 고민 등에 쏠렸던 에너지가 줄어들게 된다. 

마치 수능점수만 잘 나오면 성공한 미래가 보장이라도 되는 것 마냥 공부를 안 했던 학생들도 수능점수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시기다. 


수능에 모든 것이 맞춰 돌아가기에 친구들과 갈등을 빚을 일도, 부모님, 세상과 갈등을 빚을 일도 별로 없다. 

내 인생에서 그나마 무난하고 평온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시기쯤 되면 더 이상 친구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에 작은 갈등들은 있지만 비교적 무탈하게 친구들과 교우 관계를 맺게 된다. 

우리들은 꼭두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에 갇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했다. 

사실상 출입이 자유로운 교도소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보내는 일과도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서로를 알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숨김없이 알게 되고 너무나 일상적이고 사소한 공통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함께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가끔은 분식점에도 가고, 청소를 하고, 저녁 먹고 운동장을 빙빙 돌기도 하고, 야자시간에 도망치다 걸려서 혼이 나기도 하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만난 사람들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지만,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동생의 학교, 부모님의 직업, 나이, 거주지 등등 세세한 사항들까지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다)


이 시기를 사진으로 기록해둬야 하는 특명을 받은 사람처럼 고등학교 때 나는 특별한 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틈틈이 화질도 좋지 않은 토이카메라를 꺼내 우리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언니의 예언 덕분에 나는 이 시기가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기일 거라는 걸 미리 깨달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별거 아닌 일상적인 시간들인데 가끔 그 시간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일 년에 한두 번을 만나도 지금 매일 보는 사람들 보다 더 편안한 건 우리가 그때의 함께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물론 단체생활을 하지 않게 된 지금이 더 행복하다. 

하지만 그때만 경험할 수 있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 순수하고 솔직하게 누군가를 알아가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나갔기에 그리워지는, 인생 마지막 집단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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