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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Apr 09. 2023

#9. 그때의 꿈은 이뤄지지 못한 채 사라져 버렸지만

우리들은 아직 서로의 곁에 남아 때때로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정은이가 1학년 때 장래희망을 우주비행사로 적었던 거 기억나?


고등학교 때 만나 현재까지도 친구인 미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오래전 일이었음에도 그 말을 듣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진로조사서에 쓸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정은이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연미는 서울대 역사학과에 가서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미진이는 자기는 꿈이고 뭐고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고 전공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대학을 가야 한다면 그나마 수학을 좋아하니 수학과를 가고 싶다고. 

윤성이는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하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애니메이션과 글 쓰는데 관심이 있었지만, 그 일을 해서는 먹고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당시 인기 있던 직업인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꿈”에 가까운 우주비행사부터 지극히 “취업”에 초점이 맞춰졌던 카피라이터까지...


우린 참 다른 꿈을 꾸고 있었고, 꿈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공부를 했다. 

일단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꿈을 이루기 위한 제대로 된 방법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부모님과 학교에서 바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다. 그게 그나마 꿈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그 3년의 시간은 참 지루하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말의 희망과 가능성은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순수하고 현실을 잘 몰랐기에 많은 다양한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었고 노력하면 어쩌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부질없다고 생각해 잘 꿈꾸지도 않지만...


미진이를 만나고 난 뒤 몇 달 뒤에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과거에 우주비행사를 꿈꿨던 정은이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은이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거의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한참을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간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이야기였는데 듣고 보니 생각이 난다고. 그때 장난으로 그랬던 게 아니라 진짜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생각해 보면 적지 않은 나이였는데 참 세상물정 모르고 순수했다고... 공부를 잘하면 정말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입시의 혹독함을 깨닫고 곧 깨진 꿈이었지만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하면 정말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3년의 시간이 지나 우리는 각자 원했던 꿈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는 “선택”을 하거나 현실의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길을 “선택” 했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던 정은이는 자신의 성적과 시력으로는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파티시에나 적어도 요리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식품영양학과를 선택했다. 

초지일관 역사학자가 꿈이었던 연미는 비록 서울대는 갈 수 없었지만 지방 국립대 역사학과에 진학했다.

일단 부자가 되고 싶고 그나마 수학이 좋다는 미진이는 수학과에 진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윤성이는 교대는 진학하지 못했지만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글 쓰는 직업 중에서 그나마 “취업”이 잘될 것 같아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나는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광고과에 진학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한 인간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한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는 존재가 친구인 것 같다. 특별한 이유, 사건이 아니고서야 쉽게 헤어지지도 남이 되기도 힘든 관계이기에... 

(한번 인연을 맺으면 사이가 멀어지거나 소원해질지언정 남이 되기는 어려운 사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이상은.) 


아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 정은의 꿈과 그와 함께 떠오른 추억에 우리는 모처럼 아무 걱정 없이 한바탕 웃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시간이 한참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고등학교 때 그 아이를 만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나 또한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  


대학입학 이후 시간이 좀 더 흘러 지금의 우리들은 영양사, 유치원교사, 유물 발굴사,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원, 캐릭터 라이선스 업무를 하는 회사원이 되어있다. 

고등학교 때 상상했던 미래와 동일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현실과 타협해 가며 각자의 길을 선택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앞으로의 그들의 미래가 궁금해서 끝까지 곁에서 지켜볼 생각이다. 


혹시 아는가.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정은이가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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