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이었던 관계는 +1이었던 나만 남아 인연을 이어가는 관계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느낀 나의 친구 관계는 3+1의 관계였다.
일상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고 우리는 나름 “친했다”. 하지만 나는 마트에서 파는 3+1 제품의 +1인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어설프게 둘둘 감아진 테이프로 묶여 있어서 표면적으로 우리는 4명이 친한 친구였지만 사실 그 안을 잘 살펴보면 친했던 건 3명이었고 나는 그들과 한 발짝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게 서운했는가 하면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가 인생의 절반 이상이었고 친구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보니 나는 많이 지쳐있던 상태였다. 그 시련을 겪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엔 내 마음은 많이 비워진 상태였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거리감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로 인한 여러 번의 상처를 겪고 나서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과 거리를 두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같다.
우리 반 아이들은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거의 다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여기서도 친구 그룹은 생겼다.
입학하고 한 달 정도는 번호순으로 자리를 앉았는데 29번이었던 내 자리를 기준으로 내 앞에 앉았던 23번, 내 옆에 앉았던 30번, 그리고 내 뒷줄에 앉았던 36번.
이렇게 우리 네 명은 학기 초의 인연이 이어져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 마치 셋을 찍고 있는 카메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들과 한 그룹에 속해있긴 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묶음 상품처럼 3개에 어설프게 붙어있던 +1의 관계였다. 테이프만 뜯어내면 분리되는...
이 거리감은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그들과 거의 대부분 함께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함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없이 셋이서만 보내는 시간들도 종종 있었고 나나 그들이 그걸 서운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한 밴드의 객원 멤버 같은 존재였다.
주로 같이 공연하지만 내가 빠진다고 해서 공연이 불가능한 건 아닌...
말 그대로 +1의 관계였다. 상황이 맞으면 함께지만, 뭐 따로 떨어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 당시 내게 필요했던 건 안정이었다. 상처가 동반하는 깊은 관계는 더 이상 맺고 싶지 않았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친구들 개개인과 싸우거나 갈등을 빚은 일은 없었지만 그들끼리는 종종 크게 싸우기도 하고 금세 화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의 우정, 아니 그들의 우정은 잘 유지되었다.
그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의 시간도 즐거웠고 그들의 우정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어쩌면 나는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아서 좋은 모습만 보고자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러니까 우리가 일거수일투족 모든 시간을 함께 했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견고한 3+1의 관계일 거라고 생각했다. 졸업하고 내가 그들과 멀어질지언정 그들의 관계는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정말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사는 지역도 대학교 전공도 모두 달랐지만 그래도 우리는 꽤 자주 만났다.
방학 때 본가로 돌아가면 종종 보기도 하고 서로의 자취방에 놀러 가기도 하고…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보지 않았기에 갈등이 생겼을 때 관계는 의외로 너무 쉽게 깨졌다.
자주 보지 않기에 서로의 오해를 풀 시간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매일 함께 다닐 필요가 없기에 갈등이 생겼을 때 참거나 양보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오해와 묵히고 묵혔던 감정들이 쉽게 터진 채 쉬이 수습되지 않았다.
관찰자였던 내가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트러블로 친구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수습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며 우리들은 2+1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2+1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줄 알았다.
A와 B는 정말 자타공인 절친이었고 서로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사이었으니까.
대학교 졸업 하고 취업을 계기로 우리의 삶은 한번 더 갈라져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와 B는 우연찮게 같은 지역에 취직을 해서 그래도 종종 만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종종 싸우고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곧 화해하고 다시 만났다.
A와 B는 한동안은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하고 둘만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굳이 서운해하지도 맘에 담아 두지도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2+1의 관계에 더 가깝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리가 사회인이 되고도 꽤 오래 이어지던 2+1의 관계는 A와 B의 관계가 끝이 나면서 지금은 나만 A, B, C 각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상태가 되었다.
셋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 중학교 절친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는 중간에서 관계를 회복하고자 고군분투 노력해 보았지만 나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함께 하며 오래도록 변치 않기를 바랐던 그들의 우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런 결말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