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시기
어떤 시기를 ‘홀로서기’의 시작으로 볼지는 사람마다 제각각 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날 때가 홀로서기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엔 대학교 입학이 홀로서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태어난 지역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던 나는 대학교 입학을 계기로 처음으로 다른 지역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입학 후 OT를 갔다 와서 처음 원룸에 나 혼자 들어갔을 때의 그 적막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밥 먹어라 방 치워라 공부해라 등등 그 공간에서는 나를 찾고 부르는 어떤 존재도 없었다.
내가 만들지 않는 이상 어떤 소리도 기척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그 적막함이 낯설어서 하루 종일 TV를 켜두곤 했었다.
분명 나는 혼자 있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랬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혼자 있는 것과 오롯이 나 혼자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혼자인 것은 분명 그 느낌이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외로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혼자 보내는 시간들도 점차 익숙해졌고 원룸을 베이스캠프 삼아 나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스스로 나름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입학초기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많이 혼란스러웠다. 특히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인간관계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어떤 계기로 친구가 되면 그 친구, 친구무리와 많은 것들을 함께 했다. 일거수일투족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학교생활은 함께 했던 고정적인 무리가 있었다. 그건 아마 우리의 모든 일과가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나와 같은 과의 동기라도 시간표가 겹치는 동기가 많지 않았다.
전공 수업 한 두 개가 겹쳐서 같이 수업을 들은 후 어쩌다 시간이 맞아 점심을 같이 먹고 나면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OT때 친해졌던 동기들도 수업이 달라지자 곧 멀어지고 같이 수업을 듣는 것 외에는 동기들과 접점이 없는 상태라 초반에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친구’라는 관계에 당연히 수반됐던 끈끈함과 소속감을 기대할 수 없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이 사람들은 ‘친구’라기보다는 ‘동기’에 가까웠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시간을 함께 하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애매한 관계.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는 변화된 환경과 관계들에도 곧 익숙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적당히 어울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서 있을 장소 누구와 함께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누구도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거나 당연히 함께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하고 나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라고 할 순 없지만 타인도 아닌 그들.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는 여행메이트들과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 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
홀로서기가 시작된 이후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망해도 잘되도 오롯이 나 혼자 내 삶을 짊어져야 했다.
이때부터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