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삶을 간접체험하며 나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해 본다.
어떤 계기로 동아리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서로 과도 다르고 출신 지역도 달랐던 우리는 클래식 동아리 12기로 가입하며 친구가 되었다.
(나의 경우엔 지나가다 우연히 동아리 포스터를 본 게 가입의 계기였다. ‘클래식기타’ 자체의 흥미보다는 어딘가 ‘소속’ 되어 마음 둘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방황하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수업 끝나고 갈 곳이 생겼고 그곳에서 친구들, 선후배들과 기타 연습보다는 수다를 더 많이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같은 과 친구들은 친구라기보다 ‘동기’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동아리 친구들은 그나마 ‘친구’라는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 친구들처럼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거나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누는 관계는 아니었다.
함께 있어도 한 발자국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거리감이 서운하지는 않은 관계였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일부러 묶어놓은 것 마냥 적당히 무던하고 착했던 우리들은 큰 트러블 없이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다. 서로 합심해서 동아리 주점을 열기도 하고 엉망진창 실력이지만 함께 연습해서 연주회에 나가기도 하고 MT나 체육대회 등등을 함께 했다.
그 친구들과 동아리 사람들 덕분에 단체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대학 때만큼은 많은 단체활동을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다.
졸업 후에도 우리들은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꾸준히 만나며 근황을 공유하고 서로의 경조사에 함께했다.
졸업하고 얼마 안됐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의 대화주제는 취업, 직장, 연애이야기가 주였지만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대화의 주제는 크게 바뀌었다.
친구들이 재테크, 부동산 이야기를 하고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을 뿐 대화에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게 서운하거나 피곤하지는 않다.
친구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또래들의 평균적인 삶의 모습을 간접 체험해 보는 기분이 든다.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참 바르고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점검해보곤 한다.
지금은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서 일 년에 한두 번 보던 것도 잘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올해가 가기 전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모이자고 연락을 해 볼까 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며 또 얼마나 친구들의 삶이 다채로워졌을지 궁금해진다.
친구의 형태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처음 느꼈다.
대학교 때 이 친구들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도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어져 나갈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계속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