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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Oct 06. 2023

#10. 겨울왕국의 배경! 중세풍의 항구도시 베르겐

뼛속까지 스며든 습기를 제거해 주는 베르겐의 피시 수프!

2022년 12월 29일 목요일


나에게는 게임 ‘대 항해시대’ 속 항구 도시 같았던 베르겐


내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되지 않았었고 주로 게임 CD를 사서 혼자 게임을 했었다. 

(PC방도 얼마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게임을 좋아했던 사촌 덕분에 그가 사 모으던 CD게임을 나도 꽤나 빠져서 했었는데 그때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대 항해 시대’였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세 시대의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면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하는 게임이었다. 

왜 게임을 하면서도 길치 속성은 그대로 반영되는지 게임 내 맵이 있어도 나는 자주 정박지를 찾지 못해 망망대해를 떠돌았었다. 그러다 배의 식료품이 다 떨어지고 선원들이 병에 걸리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항구 도시를 찾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곤 했었다. 

베르겐은 영화 겨울 왕국 아렌델의 배경이 된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겨울왕국보다는 어릴 때 했던 게임 ‘대 항해시대’의 중세 항구도시가 떠오르는 곳이었다. 

도시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이 보였는데 아기자기한 중세 느낌이 있는 지구가 있었던 반면, 그냥 도시 그 자체인 지구들도 있었다. 베르겐은 항구도시+중세+현대도시의 느낌이 섞여 있었다. 

눈은 모든 걸 덮어 버리지만 비는 모든 걸 씻어내 버린다. 그래서인지 뭔가 환상이 씻겨져 내리고 현실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어딘가에 느긋하게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베르겐에서의 일정은 딱 하루였고 넋 놓고 있다 가는 또 시간을 날려 버릴 게 뻔했다. 오전에 공항에서 알아본 대로 이곳의 명소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발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요새도 브리겐도 어시장도 첫 여행이었더라면 이국적이고 신기했을 텐데... 

이미 3번째 북유럽 여행 중인 내게는 꽤 익숙한 풍경이라 사실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어시장은 핀란드 헬싱키의 어시장과 비슷하지만 규모가 좀 작았고 (간단히 사 먹을만한 것도 핀란드가 더 많았다) 항구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은 코펜하겐을 닮아 있었지만 코펜하겐 보다는 좀 더 중후하고 규모가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비가 미친 듯이 오고 있었다.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눈이 미친 듯이 왔던 적은 많았지만 비가 미친 듯이 온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고이 집에 넣었다. 흩날리는 빗방울 아니 흩날리는 너무 약하지. 쏟아붓는 빗방울 때문에 도저히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습기를 제거해 주는 베르겐의 피시 수프!


우산을 썼음에도 비에 젖어가며 항구 근처에 관광지들을 구경하고 기념품 샵에서 선물용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샀다. 유럽은 확실히 크리스마스 테마의 소품이나 아니면 아예 크리스마스 관련된 상품만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캐럴도 들리고 거리 장식도 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긴 하지만 확실히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우리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기념품 상점에서 기념품을 사고 도저히 더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비도 좀 피하고 쉬면서 다음 일정을 생각해 보려고 이 지역에서 유명한 피시 케이크 집에 갔다. 

노르웨이에 오기 전에 회사 근처에서 꼬치 어묵을 사 먹으면서 아 노르웨이에서 어묵탕을 팔면 대박 날 텐데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맛있어서 겨울 나라인 노르웨이에서도 팔면 대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그런데 이곳의 피시 스프랑 어묵도 상당히 맛있었다. 

어떤 블로그에서 너무 맛있어서 미디엄이 아닌 스몰 시킨 거 후회했다고 다음에 가면 꼭 라지로 시킬 거라는 글을 봐서 나는 피시 수프를 라지로 시키고 피시 케이크 2개를 추가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은 바로 나왔는데 세상에... 

큰 국그릇에 수프 한 대접과 버터와 빵이 같이 나왔고 추가로 시킨 피시 케이크 2개가 나왔다. 라지를 시키긴 했지만 이렇게 양이 많이 나올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다. 

피시수프는 육수가 진하게 들어간 크리미 한 수프 맛이었고 진짜 맛있어서 정신없이 퍼먹었다. 

그래도 워낙 양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말았지만... 안에 어묵 볼 같은 것도 들어 있어서 상당히 좋은 구성이었다. 

이렇게 춥고 비가 많이 오는 이곳에는 우리나라 어묵탕보다는 묵직한 피시 수프가 훨씬 잘 어울렸다. 

뼛속까지 스며든 습기를 제거해 주는 맛이었다. 

피시 수프를 먹으며 배도 채우고 쉬다가 나왔는데 아직도 정말 비가 징그럽게 많이 내리고 있었다. 

좀 더 어렸던 예전의 나였다면 그래도 악착같이 일정을 더 했을 텐데 비가 정말 와도 너무 많이 오고 있었고 나는 지쳐 있었다. 

이번 여행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게 체력도 체력이지만 나의 심적 에너지가 많이 낮아졌다. 무언가 무리해서 하나 더 보는 것보다는 내 컨디션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한마디로 무리를 하기에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아니 애초에 무리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현명해진 건지 나이가 든 건지...

원래 계획해 둔 다음 일정은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비가 너무 와서 전망대에는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비가 와서 전망대에 올라가도 어차피 아무것도 못 봤을 거야, 어디든 야경은 비슷하니까 굳이 안 봐도 되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재미있는 게 같은 시간이라도 눈이 내리는 것과 비가 내리는 것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비가 오고 어두우니까 숙소에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롬쇠에서는 밤 10시가 넘어서도 안심하고 잘 돌아다녔고 어둡기는 트롬쇠가 훨씬 어두웠는데...


시간의 과녁을 찾아 빙글빙글 도는 시곗바늘처럼... 


숙소에서 자다가 또 현지 시간으로 새벽 1시쯤 깼다. 

그러니까 여기 와서 나는 현지 시간으로는 오후 7시쯤 잤다가 계속 새벽 1시에 깨고 있는 거고,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3~4시쯤 자서 오전 9시쯤 깨고 있는 거였다. 

1시쯤 깨서 아 늦잠을 잔 건가 헷갈려하다 시계를 보고 아직 새벽임에 허탈하면서도 안도감을 느꼈다. 

시간의 과녁에서 조금씩 빗나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새벽에 깨서 좀 더 미적거리다가 불을 끄고 다시 잤다. 정말 오랜만에 어둠이었다. 

도시는 어둠 그 자체인데 나만 계속 적응하지 못하고 무엇이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불을 켜고 자면서 긴장하고 있었을까... 

비단 이번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불을 켜고 무언가 하는 것도 아니면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무언가 하지도 않으면서 그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는 거다. 벌이라도 받 듯 말이다. 


그렇게 좀 더 자다가 씻고 오슬로 행 기차를 타기 위해 짐을 싸서 나왔다. 

집에는 전신 거울이 없어서 내 전신을 자세히  볼  일이 거의 없다가 이렇게 여행을 오거나 하면 전신 거울을 보게 될 일이 생긴다. 내 몸이 정말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체형 자체가 바뀌어 가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몸에도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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