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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Oct 06. 2023

#9. 비의 도시 베르겐

트롬쇠를 떠나 베르겐 도착. 여행 전반의 감상과 베르겐의 첫인상

2022년 12월 29일 목요일


트롬쇠를 떠나며

지갑에 넣으면 잠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돈이 있었는데 어느새 지갑이 홀쭉 해질 정도로 돈이 줄어들어 있었다. 엄청 부자가 된 기분이라 부담스러울 정도였는데...

원화로 60만 원 정도를 환전해 왔는데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현금 60만 원이면 부담스러운 부피이긴 하다. 

지갑을 정리하면서 평소에서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즐거움’ 만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돈을 고민 없이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행은 즐거운 경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전해 온 50 크로네 지폐는 다 쓰고 100 크로네 지폐만 남아있고 여행은 이제 반을 지나고 있다. 

베르겐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버스 첫차를 타고 트롬쇠 공항에 왔다. 

이제는 익숙하게 셀프 체크인 기계로 체크인하고 아직 공항 게이트가 안 열려서 2시간 정도 베르겐 여행 일정을 짜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8시 30분이 넘어서 체크인 게이트가 열렸고 (참고로 트롬쇠 공항은 정말 작다) 새벽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보안 검색대도 가뿐히 통과해서 공항 내 편의점 같은 곳에서 어제 못 산 스노우 볼을 샀다. 

시내보다는 10 크로네 정도 비쌌지만 여기를 벗어나면 더는 사기 어려운 품목이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세계 어느 관광지나 기념품으로 스노우 볼을 팔긴 하지만 트롬쇠만큼 기념품으로 스노우볼이 어울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마치 트롬쇠 도시 자체가 스노우볼 같아서 꼭 사고 싶었는데 팔아서 너무 다행이었다. 


숙소에서 나오기 전에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오긴 했는데 배가 고파졌다. 가방에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간식거리들이 잔뜩 있었지만 편의점 앞 매대에서 파는 핫도그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핫도그+커피세트를 사 먹었다.

핫도그 전문 체인점도 아니고 그냥 매대에서 빵과 소시지를 덥혀서 파는 정도의 핫도그였는데 내가 살면서 사 먹었던 그 어떤 핫도그 보다 정말 맛있었다. 

순간 아 이게 행복이지 싶었을 정도로... 아 행복이 별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트롬쇠 와서 5번째 정도로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진짜 핫도그 자체가 맛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는 “따끈따끈”한 온기가 있는 음식에 굶주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핫도그를 먹고 나자 게이트가 슬슬 열릴 때가 돼서 쓰고 있던 다이어리를 접고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기로 했다. 은근히 게이트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공항에서는 긴장을 끈을 놓쳐선 안된다. 

자칫 4시간 전에 공항에 오고도 비행기 놓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


 

비의 도시 베르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만 내가 급하다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오늘부로 다 처리했다. 

나머지는 꼭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여행의 전반이 지나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여행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게 아니면 여행을 온 의미가 없고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곳에서 완전히 로그아웃 하고 벗어나기 위해 돈을 쓰고 물리적인 거리까지 두면서 떠나온 건데 몸만 떠나오면 뭐 하나 정신이 계속 그곳에 동기화되어 있는데 이건 정말 아니었다. 

나의 여행 목적은 오로라가 다가 아니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것도 있다. 

벗어나자 벗어날 수 있는 합법적인 유일한 시간이다. 이제 정말 로그아웃 하자. 동기화하지 말자. 이곳 시간에 적응하자라고 다짐하면서 베르겐에 도착했다. 

나의 모든 상념을 씻어 주려는 듯 트롬쇠에서 내리던 눈은 모두 비로 바뀌어 있었다. 

1년에 200일이 넘게 비가 온다는 정보를 가이드 북에서 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겨울에 비가 이렇게나 많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비가 거의 소나기 수준으로 쏟아졌다. 


포근하게 눈이 쌓여 있던 트롬쇠에서 막 도착해서인지 베르겐은 도시 자체에 습기가 촉촉이 배어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트롬쇠의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과는 달리 베르겐은 중세 풍의 건축물이 있긴 해도 확실히 ‘도시’의 느낌이었다. 

마치 스노우 볼 안에 살던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처럼 며칠 만에 만나는 도시 풍경이 몹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숙소에 캐리어만 넣어두고 나와 베르겐의 도시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비’에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우산 없이 비를 그냥 맞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일상복인데도 방수소재의 바지와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몹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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