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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Sep 10. 2023

#7. 셀프 오로라 투어

@@구 노르웨이 여행자

2022년 12월 27일 화요일

 

10만 원이 넘는 투어를 포기하고 떠난 셀프 오로라 투어


오전 관광을 마치고 맡겨두었던 캐리어를 찾아 오늘 숙박할 호텔에 갔다. 키오스크에서 체크인이 계속 오류가 나는 바람에 한참을 애먹다가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이 편하려고 만든 시스템일 텐데... 키오스크에 그래도 익숙한 세대인 나도 애를 먹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오면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잠을 제대로 못 자기도 했고 들어올 때 고생을 해서인지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캐리어를 방에 넣어놓고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쇼핑센터에 가서 점심으로 먹을 연어와 맥주를 사 와 허겁지겁 먹고 저녁 오로라 투어 가기 전까지 숙소에서 좀 쉬기로 했다.    

분명 조금만 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저녁 6시였다. 오로라 투어 집결 시간은 6시 15분. 

망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이라도 뛰어갈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와는 달리 트롬쇠는 오후부터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고 오늘은 오로라 지수도 2였다. 

오로라를 보기 힘든 기상 조건이었고 컨디션도 안 좋은데 장시간 추위에 고생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카메라에 담길 듯 말듯한 빛줄기에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투어에 가지 않았다. 

투어회사로 예상되는 번호로 정확히 10분 간격으로 두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끊어졌다. 

여행 다니면서 아슬아슬 늦은 적이 몇 번 있긴 했어도 계획했던 일정을 포기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 같으면 스스로가 못 견디게 싫었을 텐데 이번에는 별로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공중에 날아간 10만 원보다는 나의 컨디션을 더 우선하게 된 지치고 늙은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어제 우연히 본 오로라 때문에 눈높이는 하늘 끝까지 올라가 버린...

투어는 포기했지만 계속 숙소에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고 피로도 많이 풀려서 밖으로 나갔다. 

트롬쇠에서는 운이 좋으면 중심지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어제 경험했기에 (오늘은 눈도 오고 구름도 끼고 오로라 지수도 낮았지만) 요행을 바라며 어제 오로라를 본 항구에 다시 갔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구름도 오로라 같이 보였지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도시 관광 할 겸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그나마 높을 것 같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트롬쇠 중심지는 평지였지만 조금 걸어가면 끝도 없는 언덕이 이어졌고 아마도 이곳의 주민들은 이 언덕 쪽에 사는 것 같았다. 차가 없으면 정말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언덕들을 오르면서 관광지가 아닌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관광 겸 셀프 오로라 투어 겸 해서 계속 언덕 위로 올라갔다. 

하얀 눈을 덮고 있는 따뜻하게 꾸며진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밖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아름답고 따뜻해 보이는 광경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생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거주지에서 느껴지는 생활의 흔적이나 소리들도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쁘게 꾸며진 저 모델하우스 같은 집에 과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치 모든 건 하얀 눈 속에 파묻혀버렸거나 하얀 눈이 모든 것을 지워버린 것만 같았다. 

정말 마치 스노우 볼 같은 도시였다. 

그렇게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언덕을 올라 이 도시를 구경하다 더 올라가면 오늘 안에 숙소 복귀하기 힘들어질 것 같아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밤 중에 모험을 더 했다가 나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서...


2022년 12월 28일 수요일


@@구 노르웨이 여행자


어제는 잘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계속 회신을 대기하고 부탁하고 체크하느라 온 정신이 그곳에 가있었다. 

동료에게 ‘@@구 노르웨이’에 있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래 봤자 하루의 한두 시간 정도만 일에 쓰는 거고 나의 부재로 인해 일 처리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더 마음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쓰는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에 시간을 쓰지 않는 시간에도 온 신경이 일에 쏠려 있었다. 노르웨이에는 몸만 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누굴 탓할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긴급으로 요청했는데 기껏 두 줄도 안 되는 것을 확인해 주지 않는 타 부서 담당자를 원망했는데 그들은 그냥 그들의 일을 순리대로 처리할 뿐인 거고 내가 바쁘다고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거고 내가 아무리 전전긍긍해 봤자 더 빨리 되지도 못하는 일이고.


아 내가 지금 여행을 제대로 못 즐기고 있구나...

내가 노르웨이에서 뭔 짓을 해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음을, 그리고 일의 해결이 이 여행을 망칠 만큼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르웨이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건 정말 아니었다.


‘@@구 노르웨이’가 아닌 진짜 노르웨이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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