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밖은 허허벌판! 트롬쇠 외곽 투어
2022년 12월 28일 수요일
도시 밖은 허허벌판! 트롬쇠 외곽 투어
밖은 숫제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어제 못 탄 전망대 케이블카 타기 (가기 전에 케이블카가 운영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다가 결국 알아내지 못해 예약하지 않고 가보기로 했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북극권 도달 증명서 사기, 기념품 사기 등이 있었다.
싸락눈을 맞으며 북극권 도달 증명서를 사기 위해 트롬쇠 관광 정보센터 찾아 헤맸고 바로 코앞에 두고도 헤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찾아 들어갔다. 투어 예약을 하거나 트롬쇠 패스를 사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북극권 도달 증명서를 사러 온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북극권에 가까운 나라를 가본 적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고 한 번도 기념품으로 이런 증명서를 산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기념하고 싶었다.
단순히 북극권에 왔다는 증명만은 아니었고 아마도 이 여행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오는 마지막 여행이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내심 있었던 것 같다. 증명서라고는 해도 오늘 날짜와 내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일 뿐이었지만 내게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던 북극권 도달 증명서를 산 후 외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사실 오로라를 볼 목적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면 트롬쇠 관광 자체는 2박이면 충분하다.
아름다운 광경에 비해 갈 수 있는 곳이나 체험할 수 있는 것에는 확실히 한정이 있기에 나는 마치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스노우볼 속의 조각상처럼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박물관, 전시관과 같이 시간 때우기 적당한 곳들은 있었지만 그다지 구미에 당기지 않았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장 멀어 보이는 트롬쇠 대학에 가보기로 했다.
트롬쇠 대학을 선택한 건 그래도 대학 주변이니 뭔가 번화가가 있지 않을까? 란 생각 때문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정말 학교 밖에 없어 보이는 외딴곳이었다. 국제적으로 대학교는 외곽에 지어야 한다는 룰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트롬쇠 대학은 그 룰을 지켜도 너무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커녕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는 눈 쌓인 건물에 내린 후 즉각적으로 든 생각은 여긴 아니다였다.
아무리 대학교라고 해도 이곳을 돌아다녀봤자 카페나 식당이 나올 리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도로와 인도가 구분이 안될 정도였고 내가 도로 한복판을 걷고 있었는지 뒤에서 오는 차가 빵빵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무작정 목적지도 없이 상점가로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도중 주택가에서 어린아이들과 아빠가 눈싸움을 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봤다. 매일 눈이 이렇게 오면 질릴 법도 한데 마치 오랜만에 눈을 본 사람들처럼 까르르 즐기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다.
그렇게 상점가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걷다가 도착해 보니 그곳은 상점가가 아니고 자동차 차고지였다.
내가 레스토랑으로 생각했던 곳은 레스토랑이 아닌 렌털샵, 트럭차고지, 정비소였고 더 이상 갔다가는 돌아온 길을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다시 저 멀리 보이는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저 아무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외곽에 가지 않는 건 역시 이유가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첫 외식! 햄버거 세트가 5만 원?!
호기롭게 떠난 트롬쇠 외곽투어는 잠시나마 답답함을 해소해주기는 했으나 큰 성과 없이 나는 다시 트롬쇠 시내로 돌아왔다. 지겹게 느껴졌던 중심지의 상점가가 다시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배도 고프고 좀 지쳐서 뭐라도 좀 먹고 싶었는데 차마 식당에 들어갈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들어간 레스토랑 에곤에서 나는 어찌어찌 주문을 해서 햄버거 세트와 감자튀김을 시켰다.
햄버거 세트에 감자튀김이 포함인걸 모르고 내가 추가로 감자튀김을 시키자 햄버거 세트에 감자튀김이 포함되어 있다고, 더 큰 사이즈의 감자튀김을 원하냐고 점원이 물어봤던 것 같다.
대충 알아듣고 그냥 감자튀김이면 된다고 이야기했고 내 의사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융통성 있게 주문을 변경해 준 점원 덕분에 나는 감자튀김을 따로 시켜서 돈을 더 내는 참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르웨이 사람들 (국적이 노르웨이 인지는 알 수 없으나 노르웨이에서 일하는 사람들) 은 친절하다.
살인적인 노르웨이 물가 때문에 라면부터 컵밥 간식 기타 등등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온 덕에 여행 온 지 4일 만에 첫 외식이었다. 어차피 입 속에 들어갔다가 배설물로 나오게 되는 건 똑같을 텐데 가공식품하고 레토르트만 먹다 보면 따뜻한 음식, 방금 만든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물론 이 식당이 음식이 맛있었고 같이 먹은 맥주도 꽤 맛이 있기도 했지만 나는 음식의 온기가 고팠던 것 같다. 방금 만든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쌓여있던 몸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레토르트 즉석식품도 라면도 뜨겁게 먹었는데도 방금 한 음식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느끼지 못했었다.
사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까탈스러운 생명체다.
역시나 인생은 타이밍
그렇게 만족스럽게, 하지만 가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사악한 한화 5만 원 정도 되는 점심을 먹고 일단 숙소로 다시 복귀하기로 했다. 좀 쉬었다가 어제 날씨 때문에 못 올라간 케이블카를 타러 전망대에 갔다가 기념품을 사러 생각이었다. 그런데 숙소에 와서 나는 또 잠들고 말았다.
그때 느꼈다. 나는 이곳의 시간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곳의 시간에도 적응을 못하고 저곳의 시간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완전히 깨어 있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어나서 시간을 보고 순간 깜짝 놀랐다. 비행기를 놓칠 만큼 자버린 건가 해서...
다행히 그건 아니어서 현지 시간으로 5시 30분 정도에 깨서 정신 차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전망대로 향했다. 그런데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오늘도 바람의 영향으로 전망대 케이블카가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 참... 홈페이지에 고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홈페이지에서는 멀쩡히 티켓이 예약도 가능했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직원마저 퇴근하고 없는지 카운터가 비어 있어서 예약하고 왔다간 환불도 못 받고 돈을 날려 버릴 뻔했다.
아쉬운 마음에 야경을 보며 전망대에 한참을 서있다가 기념품이라도 사러 가자는 생각에 다시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왔는데 이런... 첫날 둘째 날과는 달리 그리고 관광지라 늦게까지 상점이 열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때가 8시쯤이었는데 기념품 가게들이 거의 다 문을 닫았다!
세상에... 그래서 첫날 봐두었던 파랑새 조각도 스노우볼도 다 살 수가 없었다.
허탈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맘에 드는 것 꼭 해야 하는 것은 그때그때 해둬야 한다. 상황과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손에 넣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오로라라는 환상의 파랑새는 별다른 노력 없이 얻을 수 있었던 반면, 당연히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트롬쇠에서의 나'의 시간을 나는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