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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의 변수의 변수
이번 여행은 반은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한 것 외에, 떠나기 직전까지 대략적인 동선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인생 역대급으로 바쁜 시기에 떠나는 여행이라 정말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시간 부족 외에도 여행 막바지까지 많은 것들을 확정하지 못했던 건 몇 가지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변수는 '렌트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아일랜드의 대표 도시인 더블린과 골웨이만 머문다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해도 되겠지만, 그 외 다른 도시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장롱면허여서 뚜벅이 여행을 할 수밖에 없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운전을 하고 다니기에 '렌터카' 여행이 가능했고, 오키나와 여행 시 렌트해서 여행해 본 경험도 있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일본어와는 달리, 영어는 정말 3살 아이보다 더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동거리가 짧았던 오키나와와는 달리, 아일랜드는 이동 시 4~5시간은 기본으로 잡아야 할 정도로 도시 간 이동거리가 길고, 장거리 운전은 필수였다.
두 번째 변수는 '이니시모어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아일랜드 이니시모어 섬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인 ‘이니셰린의 밴시’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일랜드는 한번 가보면 좋을 나라에서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제주도와 닮아 있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하지만 어쩐지 정겹기보다는 쓸쓸하고 적막한 느낌의 그곳이 나는 몹시 마음에 들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평화로우면서도 어딘지 그 평화가 퇴색되어 무감각해져 버린 것 같은 그곳의 풍경 속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아일랜드를 자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니시모어를 가보고 싶었으나, 이곳에 가려면 여행 동선 자체가 많이 꼬이게 되는 상황이었다.
세 번째 변수는 '비행 스케줄 변경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변수로 인해 끝까지 최종 동선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항공사의 사정으로 인해 귀국 편 여행 스케줄이 변경되었음을 확인했다.
원래는 더블린에서 10시에 출발, 환승지인 헬싱키에 15시 도착, 3시간 대기 후 17시에 헬싱키에서 인천으로 이동하는 스케줄이었는데, 더블린 출발이 18시 비행기로 변경, 헬싱키에서 스탑오버하고 다음 날 17시에 인천으로 출발하는 것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여행 일정으로는 하루 정도가 늘어났고 계획하지 않았던 헬싱키에서의 숙박, 반나절 관광 일정이 생겼다.
대안을 찾아보다가 변경된 항공 스케줄 외에 더 나은 대안이 없어서 변경 스케줄대로 일정을 조정했다.
(항공사 사정으로 인한 스케줄 변경이라 헬싱키에서의 스탑오버 숙박은 지원해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세 가지 변수가 있어 여행 일정을 정말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아일랜드까지 떠나와서 주요 도시만 보고 가는 건 아까워서 렌터카 여행을 하기로 했고, 이니시모어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영어도 못하는데 과연 내가 무사히 렌터카를 빌려서 하루에 4시간 이상 익숙하지도 않은 도시를 운전할 수 있을 것인가, 현지인이나 관광객에게도 다소 비인기 지역인 이니시모어에 가는 것이 맞나로 정말 떠나기 직전까지도 변경할까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못하겠으면 현지에서 일정 변경하자'라고 생각했다.
영어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의사 표현도 못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렌트를 한 거며, 또 거의 아일랜드 반바퀴를 도는 여행 계획을 잡은 건가...
일은 정신없이 바빴지만, 아이러니하게 내 일상은 무뎌지고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소 모험에 가까운, 평소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다.
항공기 티켓, 면세품 확인은 출발직전까지!
저녁비행기라 공항에 사람이 많지 않아 빠르게 입국 심사를 마치고 미리 신청해 둔 인터넷 면세품을 찾으러 갔을 때, 수령 시간을 21시가 오전 9시로 해두었던 걸 확인했다... 다행히 구매 취소되지 않고 인도장에 물품이 보관되어 있었고, 직원분이 다음에 이런 일이 있게 되면 구매 취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물품 및 항공편 관련해서 꽤나 상세하게 확인을 했다.
알고 보니 경유지인 헬싱키 공항에서 액체류 물품 반입 규정이 꽤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규정이 까다로워져서 반입 안 될 수도 있으니 걱정되면 반품 신청해도 된다고 했는데, 일단 샀던 품목들이 한 번도 통과 안된 적이 없었고 밀봉되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냥 수령했다.
그런데 직원분의 우려대로 헬싱키 공항에서 환승하려고 다시 수하물 검사를 하는데, 내 짐이 분류가 됐다.
헬싱키 공항 직원은 엄마 선물용으로 구매한 홍삼 포장을 뜯고 기계로 안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전한 걸 확인했는지 통과시켜 줬다. 검사한 직원이 좀 FM인 직원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규정이 까다로워진 건 확실했다.
가격대가 나가는 물건이었지만, 사실 빼앗겼어도 그다지 타격은 없었을 것 같다. 예전이었다면 거의 패닉에 빠졌겠지만... 이제는 확실히 좀 무뎌졌다.
여러 경험들을 하고 여러 일들을 겪다 보니 금전적 손해를 보는 일은 빨리 털어버리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뺏겼다면 속은 좀 쓰렸겠지만 그러려니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차라리 그 직원에게 이게 되게 비싸고 몸에 좋은 거니 버리지 말고 가져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럴 영어 실력이 안 됐겠지만…
기내 와이파이는 없어져야 한다
도대체 누가 기내에서 와이파이가 되게 만들 걸까.
한순간도 세상과 단절되지 못하는 사람들, 이동 중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편리하고도 잔인한 서비스를 나도 예약해서 여행지까지 싸들고 온 일거리를 처리했다.
끝나지 않는 하루가 시차를 달리하며 연장되고 있었고, 내가 비행기에서 미친 듯이 집중해서 일을 해도 일은 끝나지 않고 점점 더 쌓여만 가고, 나는 또 그렇게 질려갔다.
공항 나서는 순간부터는 스탑이다! 란 생각으로 일거리를 해치우며 아주 오랜만에 메모장을 켜서 일기를 썼다. 이렇게 스스로와 대화하고 생각하는 시간 자체도 사실 너무 오랜만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내 몸을 차지한 느낌. 잊고 있었던 '나'라는 자아가, 아주 오랜만에 깜빡깜빡 생존 신호를 보내는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어떤 말을 쓰고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삶의 목적이나 방향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상황에 끌려다니며 허덕거리며 살고 있는 내게 좋은 터닝포인트, 새로운 시작의 첫걸음이 되는 여행이 됐으면 좋겠다.
그곳의 '나'를 잠시 벗어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잊고 있었던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 그래서 현재 ‘나’의 상태를 인지하고 리프레시가 될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블린 내리기 전까지만 일에 몰두하고,
도착하면 잠시 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