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뤄낸 ‘꿈’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아일랜드의 첫인상은 푸근한 ‘초록’
한국에서 밤에 출발, 경유지인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어두운 심야였는데, 다시 비행기를 타고 더블린에 도착하니 여기는 이제 막 해가 뜬 아침 9시였다.
소요 시간으로 따지면 떠나온 지 18시간 이상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아침이 됐다니...
시간의 손아귀에서 제대로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도착 전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본 아일랜드의 풍경은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했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라 날씨 걱정을 많이 했는데(장마철에도 사지 않았던 레인부츠와 레인코트를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했다), 다행히 날씨가 무척 맑아서 초록색 배경이 더 평화롭고 정감 있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더블린 시내 이동 시 Aircoach, Dublin Express 추천
Lep Visitor Card로는 Aircoach, Dublin Express 이용 불가!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고 이동해도 길을 헤매는 자타공인 방향치에 길치다.
보통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는 노선만 잘 타면 헤맬 일이 없고, 경로 표시가 직관적인 지하철을 선호하는 편인데 더블린 공항에는 지하철이 없어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여행 가이드북에서 본 Lep Visitor Card 1일권을 구매하면 공항에서 시내 이동은 물론 더블린 시내에서도 이동이 용이할 것 같아, 공항 편의점에서 카드를 구매해 공항버스인 Aircoach를 타러 갔다.
더블린 공항은 더블린 시내 및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현지인이 아니라면 알아보기 힘든 수많은 버스 노선이 혼재해 있었다.
Lep Visitor Card가 있으면 Aircoach도 이용할 수 있을 줄 알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가서 당당히 카드를 보여줬다. 영어가 짧아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안내원분이 이 카드로는 공항버스를 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건 어찌어찌 알아들었다. 차라리 그때 그냥 티켓을 사서 Aircoach를 탈 것을...
Lep Visitor Card를 산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일반 버스를 타고 더블린 시내로 이동하자!'라고 생각해 일반 버스를 탈 수 있는 다른 정류장을 열심히 헤맸다.
영어를 이렇게까지 못하는데 여행을 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간 내 영어 실력은 정말 형편없어졌고, 나의 길치력은 ‘버스’에서 가장 큰 빛을 발했다. 내가 가려는 호텔까지 가는 일반 버스 경로는 구글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고, 계속 Aircoach를 타고 가는 경로만 검색됐다.
용기를 내 근처 버스회사 직원분들께 더블린 시내로 가는 버스를 물어봐도, 저 건너편 건물에서 타라는 소리만 반복해서 들릴 뿐...
결국 더블린 공항 뒤편 버스 승강장까지 왔다 갔다를 세 번 한 후, 나는 호텔까지 가는 일반 버스를 내 능력으로는 오늘 내로 발견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고민했다.
무슨 고집인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Aircoach 티켓을 사기도 싫고...
그래서 그냥 무작정 앞에 보이는 일반 버스를 타버렸다.
오코널 스트리트라는 가이드북에서 본 익숙한 지명만 믿고 일단 버스를 탄 것이다. 공항을 벗어나 어디든 더블린 시내까지만 나가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이번 여행 준비를 많이 안 하고 온 게 이런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혼자 온 여행이어서 망정이지...
나답지 않은 즉흥 여행이 시작되었고, 결론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타고 도심을 천천히 둘러보는 그 시간이, 그렇게 둘러본 더블린의 풍경이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자유로운 느낌 그 자체. 그리고 여유가 도시 곳곳에서 느껴졌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을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도시.
아이가 삐뚤빼뚤 바른 매니큐어 같은 색색의 건물들. 획일화된 통일성의 강요에서 개성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렇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는 다행히 더블린 시내, 오코널 스트리트로 가는 방면의 버스가 맞았고, 오코널 스트리트에서 내려 Lep Visitor Card를 활용해 트램을 타고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누군가 이뤄낸 ‘꿈’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 체크인이 3시부터라 로비에서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속보 기사를 봤다.
처음엔 가짜 뉴스 거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에 상응할 만큼 좋은 상을 받은 건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진짜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이었다! 세상에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다니...
작품의 대단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작품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노벨문학상은 그냥 다른 세상의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최고 권위인 노벨문학상을 받는 상상을 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허황된 상상이라고 여겼는데, 그녀의 수상으로 인해 ‘현실’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 가능성 하나가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의 꿈을 미래의 ‘현실’로 바꾸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뤄낸 ‘꿈’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마치 이런 거다. 막혀 있다고 생각한 공간에 하나의 틈이 생겨, 그 틈에서 비추는 빛으로 인해 다른 세계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된 느낌.
쉽게 이뤄지지 않을지언정, 가능성이 생긴 것만으로 사람의 삶은 대단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여행 온 날 이런 기쁜 소식을 듣게 되어 더더욱 기뻤다.
그나저나 기네스 스토어 사전 예약해 둔 시간이 3시 30분이었다.
한두 시간이라도 얼리 체크인이 가능할 줄 알고 예약을 미리 해뒀는데... 호텔과 기네스하우스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체크인을 하고 가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았다.
뭐, 제시간에 못 가서 결국 기네스 스토어에 못 가게 돼도 어쩔 수 없지.
봤다고 치고 근처에서 맥주나 마시고 오지 뭐...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 내가 여행 경험치를 쌓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그간 너무 무뎌져서, 이제는 모든 자극이 무감각하게 느껴져 아쉽지 않아서일까란 생각을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