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케니의 일상, 아일랜드에서 2번째로 맛있는 맥주 ‘스미딕스’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되는, ‘세인트 카니스 대성당’
‘중세도시’, ‘검은 석회석의 도시’라는 문구에 끌려 킬케니에 온 나는, 킬케니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인트 카니스 대성당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새벽에도 비가 내린 건지 거리와 건물은 여전히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석조 건물들이 많은 이 도시와 흐린 날씨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고 한산해서인지 아일랜드인들의 평소 일상 풍경 속에 내가 들어와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인트 카니스 대성당은 투박하게 돌로 만들어진 성당 건물과 아일랜드 십자가로 장식된 묘지, 원형 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건물 주변을 장식하는 조각상이나 특별한 장식 없이 회색 벽돌로만 지어져 투박하고 견고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검은 수도복을 입은 고대의 수도사들이 나와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은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높은 아치형 천장의 구조 때문인지 성당 안은 전반적으로 경건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텅 빈 성당을 둘러보다 예배당 의자에 앉았다. 종교는 없지만 종교시설 특유의 고요한 평화로움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행지에서 종교시설에 오게 되면 평소에는 하지 않는 기도를 하게 된다.
나를 위해,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특별히 오늘 이곳에서는 내가 이 도시가 마음에 든 이유를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너를 위해, 너의 건강을 위해 최근에 검사받은 결과에 아무런 이상이 없기를 기도했다.
성당 입장료 구매 시 원형 탑 입장료가 포함된 티켓을 구매했기에 성당을 나와 원형 탑에 올라갔다. 탑 안은 성인 한 명만 간신히 올라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있었고 좁고 경사도 심했을뿐더러 계단 외에 여유 공간이 전혀 없었다. 발을 헛디딜까, 머리를 부딪치지 않을까 긴장하며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르니 킬케니 시의 전경이 가려지는 것 없이 넓게 펼쳐졌다.
매섭게 비바람이 불어 오래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석회석의 도시라는 별칭대로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지가 궁금해지는 무채색의 석조 건물들이 가득했다. 어떠한 꾸밈도 없는 회색 도시가 나는 점점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서 킬케니의 일상 속으로
세인트 카니스 대성당에서 나와 킬케니 성을 산책하는 내내 비가 내렸다. 킬케니 성 안을 관광하기보다는 이 도시를 좀 더 구경하고 싶어서 구글 지도를 끄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나갔다.
걷다 보니 그라피티가 그려진 특색 있는 상점들과 성 카니체 가톨릭 교회가 나왔고 정처 없이 더 걸어가다 보니 언덕 위의 한적한 주택가가 나왔다. 깔끔하게 구획된 주택단지 내 주민들의 생활을 보니 이곳에서 보낼 일상의 시간이 엿보였다. 언덕에서 내려오니 학교로 보이는 건물이 나왔고 하교 시간이었는지 학생들로 거리가 북적거렸다.
하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특히나 가방으로 짓눌려 있지 않은 그들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 보였다. 오후 5시 이후에 일과가 종료돼 더 이상 공부나 일을 하지 않고 보내는 삶을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저 아이들의 삶은 우리와 뭐가 다를까...?
절대적인 시간이 없어서 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나만의 시간으로 채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의 삶이 부러운지조차도 나는 모르겠다. 그런 삶은 살아본 경험 자체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내가 떠나온 곳의 사람들보다는 분명히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에 왠지 서글퍼졌다.
아일랜드에서 먹은 2번째로 맛있는 맥주 ‘스미딕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꽤 걸어서 다리도 아파서 쉴 겸, 킬케니 지역 맥주인 스미딕스도 마셔볼 겸 파리스 텍사스 바에 가서 프라이드치킨 세트를 주문했다.
저녁 피크 타임이 아니어서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고 주인으로 보이는 다소 깐깐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주문을 완료하고 나니 맥주가 먼저 나와서 마셨다.
킬케니 스미딕스 맥주가 맛있다는 후기를 보긴 했었는데 오... 아일랜드에서 마신 2번째로 맛있는 맥주였다. 아일랜드 에일 맥주인 스미딕스는 신선하고 목 넘김이 부드럽고 가벼운 단맛이 느껴지는 맥주였다.
큰 기대를 하고 온 건 아닌데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다면 킬케니 스미딕스 양조장에 들러서 먹어봤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고 프라이드치킨이라고 해서 흔히 아는 치킨을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치킨 스테이크에 가까운 음식이 나왔다. 예상외의 메뉴였지만 꽤 맛이 좋아서 맥주를 추가 주문해서 함께 먹었다.
여행지에서 혼술 하는 팁 두 번째는 낮술이다.
술집이 주로 저녁 시간에 문을 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의 국가에서 펍은 정오부터 문을 연다. 저녁에는 아무래도 혼자 오는 손님들이 거의 없고 만석이다 보니 혼술, 아니 식당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낮 시간이나 식사 시간을 피해서 펍에 와서 술을 마시면 사람도 많지 않고 여유로워서 좋다.
아일랜드 여행은 실질적으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원래는 더블린에서 하루 더 머무는 일정이라 숙박 예약까지 해두었으나 핀에어에서 항공편 스케줄 변경을 하는 통에 내일 밤 헬싱키로 이동, 헬싱키에서 스탑오버를 한 후 인천으로 이동하는 일정이 됐다. 여행 다니면서 출발 전에 갑자기 비행 편이 변경된 것은 처음이다.
핀에어에서 호텔을 제공해 준다고 하는데 헬싱키 공항에 도착해서 과연 문제없이 호텔 제공을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호텔을 제공해 준다고 해서 별도로 숙박을 예약하지 않은 터라 만약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면 꼼짝없이 공항 노숙행인데...
뭐 내일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우선은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가 렌터카를 반납하는 미션부터 해결해야 한다.
저녁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오자 이제 나가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깐깐한 아주머니의 눈초리를 못 본 척하며 아일랜드에서 2번째로 맛있는 스미딕스 맥주를 추가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