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케니의 첫인상과 여행지에서의 혼술 팁
킬케니의 첫인상
링 오브 케리 구간 내에 다른 도시를 하나 더 들렀다간 오늘 안에 킬케니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아 바로 킬케니로 가기로 했다. 평화롭고 한적한 풍경은 계속 이어졌고 도로는 한적했다.
한 번의 정체도 없이 계속 달리다 보니, 어느새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방치해 두었던 생각들과 감정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공간에 오롯이 나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나를 게스트로 맞이해 내 안에 쌓여 방치되어 있던 생각과 감정들을 꺼내 도로에 흩뿌리며 달렸다.
3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려 이제는 더 이상 꺼낼 생각이 남아 있지 않을 때쯤 킬케니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이었다. 숙소 근처에는 식당이 없어서 저녁을 먹기 위해 킬케니 중심지로 걸어가는데 비가 왔던 건지 도로와 건물들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낮에 봤으면 예쁘다고 생각했을 큰 가로수들 밑에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었고, 가로등 빛 외엔 불이 켜진 건물이 없어서 거리 전체가 따뜻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뭔가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도시 전체에서 느껴졌다. ‘젖은 목탄’ 같은 밤 풍경이었다.
거리의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이 예쁘면서도 묘하게 을씨년스럽기도 해서 빠르게 걸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의 장막을 배경으로 킬케니 성이 나타났다.
성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갑자기 거대한 성이 나타나서인지, 마치 중세 시대로 떨어져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혼술 팁? 식당에서 반주
킬케니는 지나온 도시들과 달리 정적이고 중후한 멋이 있는 곳이었다.
캐주얼한 펍보다는 분위기 좋은 고급 바나 레스토랑이 많아서 선뜻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술도 한잔하고 싶고 오랜만에 따뜻한 ‘밥’을 먹고 싶어서 구글 지도를 켜서 근처 식당을 검색해 보니 아시아 퓨전 레스토랑 ‘아로이’가 나와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비(非) 아시아권에서 만나는 아시아 레스토랑은 왠지 안심이 된다.
이 공간은 안전하고 내게 익숙한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 식당을 선택할 때 오늘처럼 아시아 식당에 종종 오곤 한다. 메인 거리에서 살짝 들어간 골목에 있는 아로이에 도착, 어지간해서는 실패할 일이 없는 게살 볶음밥과 맥주를 시켰다.
혼자 여행 가서 식당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난도가 높은 것이 술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술 한잔은 하고 싶으나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때 나는 레스토랑에 간다. 술집만큼 다양한 종류의 술이 갖춰져 있진 않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
혼자 여행하면서 체득한 안전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소소한 팁이다.
게살 볶음밥은 내가 익숙히 알던 그대로의 맛이었고 함께 시킨 기네스 맥주는 기네스 맥주 박물관의 맥주처럼 최고의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국 기네스 전문점에서 먹는 것 이상의 맛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거리는 더 한적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뒤에서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늙은 마녀가 쫓아올 것 같은 기이한 분위기의 거리를 뛰듯이 빠르게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아일랜드 여행 최고의 B&B ‘Fanad House’
이번 아일랜드 여행 전반적으로 숙소 운이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의 묵은 모든 숙소가 다 만족스러웠지만 그중 이번 숙소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캐리어와 짐들을 늘어놓고도 여유로울 정도로 가격 대비 방이 넓었고 호텔 못지않게 깔끔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의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되고 거창한 표현일까.
돈을 지불하고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집주인에게 손님으로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숙소가 포근해서인지 이제야 이곳의 시차에 적응해서인지 중간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말 그대로 ‘호화로운 조식’을 먹었다.
지난 B&B에서 먹은 모든 조식이 다 훌륭했지만 ‘Fanad House’의 조식은 호화롭다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정도였다. 고소한 병우유, 요구르트와 과일, 각종 빵, 소시지와 계란 프라이, 구운 버섯, 베이컨 아일랜드식 순대 블랙 푸딩까지...
전문 브런치 레스토랑 못지않은 구성의 알차고 맛있는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뒹굴거렸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거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