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다시 더블린으로

더블린의 정수 템플바

by missnow

렌터카 비용 추가 결제를 감수하고 선택한 B&B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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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서의 렌터카 반납 시간이 오전 10시라 늦어도 8시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8시 41분이었다. 바로 출발해도 이미 늦은 시간이라 좀 고민하다가, 30분 늦나 1시간 늦나 어차피 늦는 거면 여유 있게 아침이나 먹고 가자고 결정하고 식당으로 갔다.
다행히 9시까지였던 조식 시간에는 늦지 않았고, 첫날과는 달리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다.


분명 어제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9시쯤 잤으니 한 번도 깨지 않고 거의 11시간을 푹 잔 셈이었다.

일어나서 시계를 봤을 때 망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정말 오랜만에 개운하게 푹 잤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가 중이었지만 떠나온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아예 손을 놓을 순 없어, 시차 탓에 새벽에 깰 때마다 틈틈이 일을 처리하곤 했었는데 그게 꽤나 피로를 쌓이게 했던 것 같다.

오래간만에 푹 자서인지 묵은 피로가 풀리며 컨디션이 좋아졌고, 감각이 명확하게 돌아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간 무감각했던 게 어쩌면 쌓인 피로 탓이었을지도...

꽉 채우다 못해 터지기 직전까지 밀어 넣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었을까...


렌터카 반납 시간이 늦어서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면 내지 뭐... 이런 마음으로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그나저나 조식은 오늘도 진짜 푸짐했다. 그래서 내가 남길까 봐 모든 메뉴를 다 먹을 거냐고 물어봤나 보다.
다 먹을 거다! 여기 이 시간, 이 여유를 위해 추가로 지불할지도 모르는 비용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내게 ‘여유’와 일상의 충만함을 깨닫게 해 준 이곳의 시간은 값지니까.


더블린의 정수 ‘템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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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케니를 떠날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는데, 더블린에 도착하니 약간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렌터카를 무사히 반납하고(다행히 반납 지연금을 추가 결제하진 않았다) 미리 알아본 짐 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긴 후, 종종거리며 더블린 시내를 산책하다 템플바에 들어왔다.
예정대로 일찍 일어나서 왔으면 더블린에서의 일정이 더 길었겠지만... 3시에는 더블린을 떠나야 한다.

밤에는 차마 들어올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낮이라 들어오는데 좀 부담감이 덜했다. 낮술을 즐기는 여행자부터 가족 단위 여행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더블린의 오후를 즐기고 있다.

밖에서 봤을 때도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한 외관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안의 분위기는 더 크리스마스 그 자체였다. 가게 안은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었고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무대 앞 테이블에 빈자리를 발견하고 앉았고, 라이브 연주를 준비하는지 악기 튜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네스 한 잔을 주문하고 나서 아일랜드 여행을 떠올려 봤다.


아일랜드는 누군가와 함께 와도 좋고, 혼자 와도 충분히 좋은 여행지다.
누군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 좋은 펍과 카페, 예쁜 상점이 많고, 이렇게 혼자 와서 맥주 한 잔을 하고 있어도 누구도 이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공존한다.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여행은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여행 중 유일하게 목적이 없는 여행이었고, 그래서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비가 곧 그칠 거라는 믿음, 낙관이 나라 전체에서 느껴진다.

비가 자주 오지만 오더라도 곧 그치는 날씨의 특징이 아일랜드 특유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비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칠 것이다.

비가 내리는 동안 잠시 비를 피하며 맥주 한 잔 하고 흥겨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이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흐르고 있고, 그 시간을 우중충하게 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일상은 어떤 시기에도 소중하다. 목적을 이루는 그 순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고 나아가는 모든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삶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 그 걸음을 걷는 것만 잊지 않고 이어 나가면 된다.


아일랜드 여행을 계기로 무언가 변할 것이라고, 아니 이미 나는 또 다른 시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여정의 시작점 같은 곳이 이번 아일랜드 여행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브가 시작되려는지 갑자기 가게 안의 음악이 바뀌었고, 나의 상념도 끊어졌다.

아일랜드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템플바로 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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