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함.

아주 부드럽게, 섬세하게.

by MissP

어릴 때 엄마 친구분이 하시던 도자기 공방에 자주 놀러 갔다. 가면 엄마 친구분이 항상 도자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만드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했다. 나는 항상 실패했다. 그래도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했다. 온몸에 진흙칠을 하고 나서야 다 했다고 히히하고 웃었다. 그러면 엄마 친구네 아저씨가 데려가서 세수시켜 주고 흥흥하고 코도 풀고 나면 툇마루에서 과일과 우유를 먹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한숨 코 잤다. 엄마랑 엄마 친구도 옆에서 말씀을 나누시고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흙이 비쌀 텐데도 매번 그렇게 만지게 해 준 걸 보면 참 감사하다.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시는 분이셨기에 아무리 아기라도 장난치고 만진 흙을 재사용하진 못하셨다. 아마도 혹시 모를 불순물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감촉이 매우 좋았다. 부드럽고 몰랑하고 끈적해서 모래랑 또 다른, 갯벌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는 어린아이가 하기 어려운 세심함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다. 나는 결국 못했지만 말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자기를 빚는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섬세한 작업인 만큼 좋은 것을 만들겠다는 제작자의 마음. '작품'이지 않은가.


사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붕어빵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어르신들 얘기를 나누는데 할머니가 어쩌고 할머니가 어쩌고 하시길래 내가 여기에 할머니가 어디 있어요? 그랬더니 어리둥절하시면서 여기 있잖아 하시길래 할머니가 어디 있대, 언니지. 그랬더니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냥 하루, 잊히겠지만 어느 순간 웃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랬다.


아무 관계가 아닌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것. 그것이 웃음, 그리고 사람이 가진 힘이다.


그래서 나는 장난이 너무 좋다. 재미있고 행복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한동안 엄청 많이 힘들었다. 완벽히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조금 더 세심하게 돌봐주려고 한다.


인생이란 스스로가 빚어내는 한 폭의 그림이자 도자기이다. 물론 많은 불순물이 섞여있을지도 모를 테지만, 결국에는 완성될 하나의 작품이다.


여유는 곳간에서 나온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자신도 남도 보살핀다. 요즘에는 그걸 느낀다. 나의 마음의 곳간이 다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혼숙려캠프를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저기서 저러지 말았어야지, 그럼에도 이해는 되네, 노력하는 모습이 참 다행이다 같은 감정을 말이다. 신기하게도 매 기수마다 아주 약간씩은 비슷한 경향이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작진이 얼마나 많은 신청자를 인터뷰하고 취재하며 분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이니 당연히 자극이나 재미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내용 특성상 참여자들이 스스로 서로 거울 치료나 영향을 받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괜스레 유추해 본다.


분명 그분들도 알고 있지만, 스스로조차 돌볼 여유가 없으니 그러는 것이 아닐까. 사람마다 한계점이 다르고, 여러 가지가 부대끼면서 마찰을 일으키며 삶을 괴롭게 한다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부싯돌에서 일어난 불이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모조리 태워버린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딘 것이 아니기에 강도가 다르고, 조절하는 방법이나 소모시간도 다르겠지만 말이다.


고온의 가마 속에서 달궈진 도자기들은 모두 하나같이 단단하다. 예술가는 그것이 작품인지 아닌지 하나하나 구별할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모두 제기능을 할 수 있는 예쁜 도자기일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삶 속에 고난을 헤쳐 나와 달궈진 단단한 도자기는 어떤 것은 흠집이, 어떤 것은 균열이, 어떤 것은 쓸모없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박물관에 보관된 채, 평생을 유리막 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좀 더 세심하게 다뤄주자. 부디 보다 온전한 형태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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