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파트에 대한 기억
얼마 전 새 아파트로 이사한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집들이 겸 공동육아를 하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모인 자리였다. 웅장한 아파트 문주를 지나 공동현관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어쩐지 긴장이 됐다. 지어진 지 20년이 훌쩍 넘은 구축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겐 어색한 것도 부러운 것도 많았다. 나는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에, 아이들은 신기하고 깨끗한 놀이터에 시선을 빼앗겼다. “여름에 물놀이터 개장하면 다시 놀러 오라”는 친구의 말에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찔린 듯했다.
내가 태어난 집은 승학산 아래에 자리한 5층짜리 맨션이었다. 아파트가 흔하지 않던 1985년이었다. 분양 직전 건설사가 부도를 내면서 인부들에게 임금 대신 집을 나눠줬고, 아빠의 친구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그곳에 신혼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아파트 구경이나 하자며 따라나선 엄마는 한눈에 그 집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연탄을 갈지 않아도 되는 집, 언제라도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집, 집 안에 화장실과 주방이 있는 집, 성별이 다른 아이들에게 방을 하나씩 내어줄 수 있는 집. 우암동 주택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엄마에게 이제 막 지어진 새 아파트는 꿈의 집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유별난 시어머니는 대신 관리해준다는 명목으로 아빠의 월급을 받는 족족 다 가져갔다. 엄마는 슈퍼에서 빵 하나 사 먹는 것도 사치라 느낄 만큼 빠듯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해, 원양어선을 타고 나간 아빠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왔다. 아파트값에 달하는 800만 원을 벌어온 것이었다. 엄마는 이를 두고 “이 집이 내 집이 되려고 그랬나 보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그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그 집에서 20년 넘게 살게 될 줄 몰랐다는 것뿐.
2001년, 우리 가족은 아빠의 발령지였던 제주에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4년 만에 돌아온 동네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약수터가 있던 바로 옆 공터에는 1천 세대의 주공아파트가 들어섰고, 반대편으로는 유명 브랜드의 고층 아파트가 올라와 있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파트를 떠났다. 오르막길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학교나 직장이 멀어서. 엄마가 첫눈에 반해버릴 만큼 세련됐던 아파트는 어느새 동네에서 가장 낮고 오래된 아파트가 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작은 평수였다. 네 식구가 살기에 15평의 아파트는 너무 작았다. 내 방은 집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는데, 책상을 두고 이불을 깔면 꽉 찰 만큼 작은 방이었다. 부모님은 1인용 간이침대를 구해다 그 위로 천장용 행거를 걸었다. 자려고 누우면 걸려 있는 옷들이 눈앞에 아른아른거렸다. 거실 겸 주방에는 가족들이 모여 밥 먹을 식탁 하나 놓을 여유가 없었다. 그 무렵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겪은 다른 집들이 싱크대를 베란다로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은 인부를 불러 싱크대를 베란다에 옮겨 설치했다. 그렇게 엄마의 일터는 베란다가 되었다. 새벽이면 엄마는 두꺼운 패딩 위에 앞치마를 겹쳐 입고 베란다로 출근을 했다. 패딩을 입고도 샷시 문을 뚫고 들어오는 한겨울 칼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조별 숙제를 하러 같은 반 친구 집을 찾았다. 문을 열자 중문으로 막힌 커다란 전실이 나를 맞이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들어선 나에게 친구는 집구경을 해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 집 크기에 맞먹는 널찍한 거실, 커다란 식탁이 놓인 주방,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이 딸린 안방, 침대와 책상을 놓고도 여럿이 둘러앉을 자리가 있는 친구의 방. 이런 집은 TV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조별 숙제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내가 나갔던 그대로였지만, 내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15년 된 낡은 아파트가, 친구를 불러도 앉을 곳 하나 없는 내 방이, 베란다에 엉성하게 자리한 주방이 부끄러웠다. 어린 마음에 다시는 우리 집에 친구를 부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대한 부끄러움은 성실했지만 계산적이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라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그때의 부모님 나이가 되었다. 단지 내에서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비록 새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대단지에 지하철이 가까워서 좋았다. 한때는 동네에서 제일 살기 좋은 아파트였으나,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아파트가 되었다.
어른으로 살아보니 사는 게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때론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이 악수가 되기도 하고, 남들에겐 쉽게 찾아오는 것 같은 행운이 번번이 우리를 비껴가기도 했다. 어쩌면 그날 아이들의 들뜬 표정이 나를 찔렀던 것은 어렸던 나에 대한 반성이자 후회일지도 모르겠다. 철없던 마음은 다시 돌아와 이제 나에게 묻는다. 넌 원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