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후 보이는 것들
결혼한 지 1년을 갓 넘겼을 무렵,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었다. 답답한 마음에 애는 네가 재우라며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늦여름 밤이었다. 화가 나서 일단 나오긴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당시 신혼집이 있던 동네는 남편이 나고 자란 곳이었다. 그와는 달리 내겐 낯선 동네였다. 더군다나 나는 결혼과 동시에 생긴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디에 가면 뭐가 있는지, 이런 날 혼자 찾을 단골 가게 하나 만들지 못한 이유였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서성거리면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들을 뒤적거렸다. 이 친구는 너무 멀리서 살고, 또 이 친구는 한창 애 재운다고 바쁠 시간이고…. 그렇게 하나둘 지워나가다 보니 당장 연락해 불러낼 친구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운전이라도 할 줄 알면 이럴 때 자동차 키만 챙겨 나와 혼자 드라이브하면 될 텐데 하는 생각에,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보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젊었던 엄마 아빠는 의견 차이가 생기면 종종 큰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대체로 아빠의 승리로 끝난 싸움에서 엄마는 휑하니 집을 나가는 것으로 나름의 복수를 했다. 사실 가출이라기보다는 몇 시간의 짧은 외출에 가까웠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아빠를 따라 새로운 발령지인 제주로 향했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한 동짜리 관사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리 단위의 작은 마을이라 교통수단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빠와 크게 다툰 엄마가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날은 어두워 가는데 엄마는 쉬이 돌아오질 않았다. 점점 초조해진 나는 버스가 올 시간이 되면 베란다로 뛰어갔다.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내밀면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기대했다 실망하기를 여러 번, 마침내 멈춰 선 버스가 엄마를 내려주고 떠났다.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어오던 엄마를 보면서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엄마, 어디 갔다 왔는데?”
“그냥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 왔다.”
내 물음에 엄마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친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쇼핑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다녀오는 게 엄마가 감행한 일탈의 전부라니. 어렸던 나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무작정 집을 나와 아파트 단지 안을 서성이던 어느 날에 나는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가 왜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종점까지 다녀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엄마는 직업군인이었던 아빠를 만나 의정부에서 부산으로 시집을 왔다. 아빠는 고향인 부산에 정착하기 위해 군복을 벗고 원양어선을 탔는데, 한 번 배가 나가면 몇 달씩 집을 비워야 했다. 동네에서 성질 고약하기로 유명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때였다. 다행히도 아들조차 제 어머니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던 덕에 합가 생활은 몇 년 만에 청산할 수 있었다.
결국 꼬물꼬물한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혔던 아빠는 배에서 내려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지역으로의 전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를 따라 가족 모두가 정기적으로 이사 다니는 바람에 엄마는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마음이 답답할 때 찾을 자신만의 아지트도 갖지 못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엄마가 할 수 있는 일탈이라곤 그저 버스에 앉아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달래는 일이 아니었을까.
가끔은 내가 모르는 시절의 엄마가 궁금하다. 중학교 때는 정구 선수였던 엄마, 고등학교 때는 응원단장이었던 엄마, 처녀 때는 조합장 딸이라고 선볼 남자들이 줄을 섰다는 엄마. 땀 흘리며 뛰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남자들에게 퇴짜 놓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때의 엄만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의 삶을, 시어머니의 냉대와 남편의 잦은 부재 속에서 자식 둘을 키우는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었겠지.
요즘은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을 종종 그려본다. 갈 데도 없었을 텐데 그날 집을 나간 엄마는 뭘 하고 왔을까, 만날 사람도 없었을 텐데 가족들이 집을 비운 시간에 엄마는 뭘 하고 있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마지막에 꼭 이런 생각에 이르곤 한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땐 엄마와 딸이 아닌 친구가 되어, 내가 잘 몰랐던 엄마의 시절을 함께 걸어보고 싶다고.